일단 난 슈미트 정치신학을 본 이후로 카프카 작품 중에서 소송, 유형지에서, 법 앞에서가 제일 재밌어졌음. 그래서 유형지에서를 좀 논할건데, 문동 소송 해설 상으로는 카프카가 유대계로서 유대교에 관심을 점점 보였다고 적혀있고, 또 그 주석들에는 유대교를 암시하는 문장들이 분명히 있었음 그럼 이걸 읽으면서 종교에 대한 생각을 좀 굴려볼 수는 있겠지


종교와 그 경전, 그리고 교리를 보면 그 자체는 투박할 정도로 별로 안 난해해보이는게 대부분임. 난해하더라도 보통은 진짜 이 저술자의 저의가 그게 맞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만, 사실 바로 그래서 종교는 난해하고 또 난해해지는거고. 그러니 해석과 교리 실천을 위하여 원본에 수많은 주석과 해설본을 달고, 그렇게 늘어나는 신학서, 주해서, 탈무드 뭐시기저시기 등등.


장교가 신들린듯 보여주는 도면을 가릴 정도로 덕지덕지 달린 보조선들이, 바로 원본을 이해시키긴커녕 가리는 해석이겠지.

근데 어쨌든 경전은 건재하고 종교는 잘 작동하고 교리는 실행됨ㅇ 마찬가지로 써레도 작동함. 단지 명령이 없어서 작동을 안하는거고. 이제부터 슬슬 문제일거야 


장교는 써레 작동이 불가하고 그 보수가 힘들어진다고 찡찡거림ㅋㅋ 근데 웃기지 않음? 종교과 경전과 교리, 아니, 설계도와 그 설계도의 산물인 써레는 건재하는데 왜 써레가 작동을 안하냐? 근데 사실 좆도 안 웃김ㅇ 왜냐면, 신임 사령관이 써레 처형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으니까 당연히 써레를 못 움직이지...ㅋㅋ


그리고 이게 핵심임ㅇ 결국 종교와 교리와 경전은 그냥 체계이자 글뭉치에 불과함. 신성을 명령하는 신이 있어야 그게 종교 교리 경전이지


그리고 슈미트는 정치신학에서 뭐라고 했느냐? 법은 그냥 일반상황에서나 작동할 뿐이고, 이 일반상황이 일반상황이 아님을 판단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라고 했음. 슈미트는 이런 식으로 법실증주의를 논하는 켈젠을 논한 뒤, 정치신학을 논함. 그렇게 종교는 정치와 결합함. 그리고 사령관의 명령으로만 써레는 처형을 위해 움직임. 그렇게 종교와 정치는 서로 긴밀히 관계함. 써레는 사령관의 권위를 위해 사람을 찌르고 사령관은 써레를 돌리라고 명령함


물론, 이 써레 처형은 더럽고 효율적이지도 않고 야만적임ㅇ 침내 잔뜩나는 입 앙무는 막대도 갈아야 하고 피로 얼룩진 솜도 갈아야 하고 쌀죽도 마련해야되고... 그래서 언뜻 보면 신임 사령관이 잘 한 것처럼 보임. 사실 그런 것 같고. 그렇다면 미개한 종교는 쇠퇴했고, 계몽의 시대가 온듯 ㅇㅇ


그런데 을유 카프카 단편집에서는 이를 두고 계몽이 승리한 것일까? 글쎄? 식의 모호한 답을 던짐. 확실하고 분명히 그럼. 왜냐하면 정치와 종교가 합리적 정신 체계라는 걸 주장하는 슈미트의 로마가톨릭교와 그 정치적 형식을 상기하면, 장교가 써레에 탄 건 합리성의 편인 계몽의 승리가 아니라 합리성의 자폭을 은유한거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데, 써레가 돌아가든 안 돌아가든, 죄수 당사자들은 결국 섬을 나가고 싶어함.


이쪽 전공자도 아니다 보니 이런저런거 엮어서 누더기나 기울 뿐인데, 확실히 기록상 카프카는 법학 박사가 맞음. 그래서 이렇게 그 작품에 슈미트의 헌법관과 끼워맞추는 생각을 했는데, 카프카가 법학을 배우면서 뭔 글을 남겼는지도 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