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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 문학을 가장 좋아한다.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해주기 때문이다. 프랑스 문학도 좋아한다. 사랑과 자유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국 문학도 좋아한다. 이야기의 재미로만 치면 영국 문학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참신한 문학, 가장 기발한 문학을 찾는다면 앞에서 말한 것들은 제쳐두고 스페인어권 문학, 특히 남미 문학에 이르게 돼있다. 세르반테스에서 시작해서 로르카, 보르헤스, 마르케스, 푸엔테스.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남미 문학을 파고들다 보면 어떻게든 '후안 룰포'라는 이름과 마주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 사람은 일생동안 낸 소설이 단 두 권밖에 없다. 그러나 두 권의 작품으로 그는 거장이자 남미 문학의 토대를 닦은 위인으로 평가받는다. 광고 문구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이다. 정말로 그럴까? 나도 그 호기심에 「불타는 평원」을 읽어보았다. 즉 그가 평생토록 낸 소설의 50%를 읽은 셈이다. 장난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단 한 권만으로 룰포가 왜 추앙받는지 알 것 같았다.
「불타는 평원」은 단편소설집이다. 조그만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의 규격으로도 각 작품은 보통 10쪽 내외다. 가장 긴 것이 22쪽이다. 그만큼 서사가 풍부하지는 않다. 그러나 두 가지 선명한 매력을 느꼈다. 우선 이야기가 뻔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매력적이었다. 끝까지 진실을 감추고, 그나마 짧은 이야기들도 조각내어 콜라주처럼 만들어서, 나중에야 모든 그림이 보이고 진실을 알게 되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아니라,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퍼즐을 풀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반전 자체도 충격적인 것들이 많아서, 퍼즐을 다 맞추고서 실망한 일은 없었다. 둘째로 기교들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룰포가 시점을 잘 다룬다는 생각이 들었다. 룰포는 정보를 불균등하게 흘리기 위해 화자를 계속 바꾼다. 짧아서 매력이 충분히 우러나지는 않았지만, 의식의 흐름 기법도 적극적으로 선보인다. 물론 오늘날에 상술한 요소들을 차용한 작품들은 흔하면 흔하지 드물지는 않다. 하지만 「불타는 평원」이 룰포의 첫 작품이고 1953년에 발표됐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당장 그 「백년의 고독」이 1967년 작품이다.) 그는 데뷔작부터 실험적인 면모를 유감 없이 드러냈으니, 귀감이라고 부를만하다.
이제 내용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내용은 기교들에 비해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불타는 평원」에서 짧은 글에서 풍부한 생각을 들려주는 솜씨까지는 발휘되지 못한 것 같았다. (사실 이런 쪽으로는 보르헤스가 너무 괴수이기는 하다.) 다만 모든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정서만큼은 기억에 남는다. 「불타는 평원」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들에게도 소박한 기쁨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모두가 폭력의 희생양 혹은 뻔뻔한 가해자고, 그렇게 죽고 죽이며 이야기들은 허무하게 끝난다. 정치인들은 자기 잇속만 챙기고 아무런 실속도 없다. 민중은 저항조차 못하고 죽거나, 저항하다가 괴물이 되거나, 애꿎은 서로를 해치며 욕망을 푼다. 입으로는 예수와 성모를 부르면서 서로에게는 사랑 대신 총탄을 나누며 힘겹게 생존해나가는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소설은 문제를 제시할 뿐,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의무는 없다. 룰포도 자신이 체험한 대로 멕시코를 그렸을 뿐이고, 해피 엔딩을 겪은 적은 없었기에 일관적으로 어두운 작품들이 나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멕시코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하는 만큼 이들의 문제에 대해 깊게 파고들 수는 없다. 다만 멕시코의 참상은 룰포의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자주 언론에 나온다. 매우 뿌리가 깊은 문제인 것 같다. 깊은 뿌리를 하루아침에 없앨 수는 없으니, 피상적으로라도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특히 인상 깊었던 소설들을 꼽아보려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땅을 주었다」는 피상적이고 위선적인 약속이 끼치는 민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너무 가난하답니다」는 제목에서부터 시작해서 끝에 이르기까지 탄식이 나오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딸빠」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소설이다. 짐짝을 치우듯 형제를 치우니 다음으로는 자신이 짐짝이 되는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를 죽이지 말라고 해!」는 긴장감이 마음에 들었다. 「마띨데 아르깡헬의 유산」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이야기여서 유독 기억에 남는다.
이것으로 「불타는 평원」의 이야기는 마치려 한다. 곧 추석인데, 될 수 있으면 연휴 동안 후안 룰포의 다른 50%인 「뻬드로 빠라모」를 읽으려 한다. 요즘에는 「페드로 파라모」로 제목이 바뀌어 팔리는 것 같던데, 중고 서점에서 싸게 사려면 된소리를 감수하고 「뻬드로 빠라모」를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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