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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 전기 3부작을 읽었다.

산시로 - 그 후 - 문으로 이어지는 3부작인데, 이를 전기 3부작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전기가 있다면 아마 후기 3부작도 있을 것 같은데 후기 3부작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세 작품이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작품은 아니지만, 각각 20대 초반, 30대 초반, 30대 후반의 인생을 다룬다는 점에서 삼부작은 연속성을 지닌다.
더구나 산시로와 다이스케, 다이스케와 소스케의 관계를 보다보면, 정말로 이 인물이 몇년 뒤에는 이렇게 되어있겠구나, 싶은 구성이라, 사실상 이름과 세부사항만 몇 다를 뿐, 거의 한 인물이라고 봐도 좋겠다.

<산시로>가 그려내는 20대 초반은, <고리오 영감> 이래 이미 클리셰가 된 플롯이지만, '사랑을 통한 시골 소년의 도시 적응기'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산시로>에서 세상 물정 모르던 갓 상경한 시골 소년 산시로에게 세상은 동경할만한 위대한 사람들 투성이이다.
히로타 선생부터 미네코까지, 따라서 산시로의 첫사랑은 동경의 형태를 띤 사랑일 수 밖에 없다.
<고리오 영감>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사랑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지만, 동시에 그 실패는 동경을 넘어서서 성숙한 도회인이자 어른으로 나아가는 길목이 된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나 30세의 다이스케는, 꼭 그가 동경했던 히로타 선생처럼,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은둔하는 무직자가 된다.
그러나 그 무직자의 삶은 가족들의 결혼 권유와 친구의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무너지고, 불확실한 '그 후'로 나아간다.

마지막 <문>은 그렇게 부유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한차례 무너지고 난 뒤 고립된 부부의 삶을 그린다.
책 말미의 '해설'에서 평자는 책의 결말에 대해, <산시로>나 <그 후>와는 달리 이들 부부가 결과적으로 새로운 시간의 '문'을 열지 못했다고 말한다.
책은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듯, 봄이 지나고 여름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듯, 부부는 하나의 어려움을 넘어갔지만 언젠가 다음의 어려움이 올 것을 암시하면서 끝나며, 주인공 소스케는 결국 초월자로부터 이러한 연쇄를 초극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결말이 부정적이고 '답을 찾지 못한' 결과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렇게 겨울을 견뎌냄이란 성숙기에 들어간 한 인간의 삶의 방식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산시로>와 <그 후> 모두 그 결말은 세상으로 출사표를 던지는 청년의 모습이었지만, <문>의 소스케는 더이상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약한 인간이며, 그렇다고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탈속의 세계로 향하기에는 너무 이지적이고 그렇기에 다시 약한 인간이다.
소스케는 더이상 바깥으로 발을 내딛는 대신 다시 둘을 의지해 세상을 견뎌내는 체념적 태도를 갖고 아내에게로 복귀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태도 또한 약한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각오라고 생각한다.
탈속의 세상으로 훌쩍 떠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라는 라스티냐크적 테도를 견지할 수도 없는 평범하게 약한 인간으로서, 세상사의 불운에 어찌하지 못하고 다만 피해다니려고 노력하는 것,
대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
그 역시 소시민으로서 가능한 최선의 삶이고, 행복한 삶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말하듯, 그것을 되풀이하게 하는 것은 하늘의 일이며, 그것을 피해 다니는것은 소스케의 일이라는..

쓰다보니 <문>에 대한 감상이 제일 많은 것 같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그 후>였다. 아마도 <산시로>의 유쾌함이 잘 맞지 않았고, 그렇다고 <문>을 완전히 공감하기에는 너무 젊은 탓일 것 같은데, 따라서 <그 후>의 주제가 가장 공감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그 후>의 고백 장면은 정말 좋았어서, '달이 아름답네요'의 살아있는 예시가 아닐까 싶었다..
그것이 잔혹한 것임을 알고, 또 그것이 자신과 상대의 삶을 모조리 어그러뜨릴 것을 알면서도, 그러지 않고는 더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되어 하는 고백이라는게 정말 아름다웠다..

"저는 이제 와서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잔혹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이 당신에게 잔혹하게 들릴수록 뜻이 이루어지는 셈이니 어쩔 수 없어요. 게다가 나는 이렇게 잔혹한 말을 털어놓지 않고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멋대로입니다. 그러니 용서를 비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