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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초에 몰리에르의 희곡들(「타르튀프」, 「동 쥐앙」, 「인간 혐오자」)을 인상 깊게 읽었다. 그 연장선 상으로 열린책들에서 발간한 또 다른 선집을 읽게 됐다. 이전에 읽은 선집에서 보였던 날카로운 매력이, 특히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독창적인 캐릭터가 잘 부각되는 작품들이었다. 가벼이 읽은 작품들인 만큼 가벼이 글을 써보려 한다.


이번에 읽은 세 작품들 모두 부덕(不德)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몰락하는 악역들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이 숭상하는 가치에 눈이 멀어, 타인들을 마음으로써 대하지 않고 자신의 미덕을 실현할 도구로 이용하던 사람들이 그 부메랑을 고스란히 얻어맞는 이야기들이다. 「수전노」의 아르파공은 제목처럼 지독한 수전노다. 누구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말이 너무 아까워서 '인사를 드린다'라는 말마저 '인사를 빌려 드린다'라고 하는 괴인이다. 그런 주제에 돈 욕심만큼 애욕도 뚜렷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실패하고 만다. 「남편들의 학교」의 스가나렐은 사랑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사랑을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남녀 사이의 주종 관계처럼 생각한다. 결국 스가나렐은 (당연한 얘기지만) 남성과 동등한 지성을 지닌 여성들의 계략에 완패한다. 「아내들의 학교」의 아르놀프는 스가나렐과 비슷한 사상을 지녔지만, 훨씬 교활한데다 자신이 남들에게 하던 비난을 자신을 그대로 감수할 깜냥도 없는 작자다. 그래도 교활한 수완 덕분에 성공하기 직전까지 갔지만, 하늘이 그를 좌절시킨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권선징악의 플롯이고, 현실에서는 부덕이 매번 심판받지는 않지만, 아무튼 자신이 모욕하던 존재들에게 모욕을 고스란히 돌려받는 악역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의 행동에 경계심을 갖게 만드는 효과는 충분하다. 결국 세 작품의 주요 악역들 모두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할 수단으로 취급했다가 그 역풍을 고스란히 맞는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동등한 위치에 서서 사랑을 주고받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항상 다른 것, 이를테면 자존심이나 욕심을 우위에 두면 상대는 내게 질리는 것을 넘어 나를 무너뜨리려 들 것이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거창한 가르침을 따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남에게 발견한 부덕이 실은 자신의 부덕한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의심할 필요는 있다. 부덕은 불명예로 환원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십상이다.


이런 진지한 가르침을 가벼운 형식으로 편하게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몰리에르의 최고 장점이다. 특히 「수전노」의 아르파공은 「타르튀프」의 타르튀프보다도 잘 만든 개성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수전노」와 「아내들의 학교」의 결말은 너무 작위적이었다. 이 작품 모두 출생의 비밀을 드러내며 끝내는데, 대한민국의 아침 드라마에서 너무 남발한 나머지 '출생의 비밀'은 유독 진부한 클리셰로 느껴진다. 물론 공정한 비판을 하려면 당대의 시각, 그리고 희극의 고전적인 형식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다만 오늘날의 독자들의 맥을 빠지게 만드는 요소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남편들의 학교」에서는 상기한 단점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작품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단 이 작품은 3막의 짧은 작품이라 아쉬웠다.


그래도 몰리에르의 작품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캐릭터도 독창적이고, 플롯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뼈가 있어서 생각할 거리를 매번 던져준다. 열린책들에서 발간한 그의 선집은 다 읽었다. 도서관에 다른 작품이 있으면 그것들을 나중에 읽어봐야겠다.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를 옮겨보려 한다.


교양인이라면 오쟁이 진 남편의 신세에 대해 좀 더 가볍게 여길 수도 있지 않은가.

어느 누구도 우연의 습격에서는 안전하지 않은 법이네.

이런 사건은 그저 무심하게 대해야 하는 거란 말이야.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든 모든 악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네.

왜냐하면 이러한 어려움들 속에서 제대로 행동하려면

다른 모든 것에서처럼 극단을 피해야 하니까 말이야.

- 「아내들의 학교」 제4막 제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