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는 어쩌고 근대가 어쩌고
스스로를 현대인이라 규정하는 사람들이 본인의 믿음을 이성으로 착각하고
중세인들의 사유의 한계에 대해 주제넘은 소리를 자주 합니다만
신곡은 신을 위한 기계가 아닙니다
uno incognito를 이어받는 셰익스피어가 그것을 어떻게 증언하는지 알아봅시다
셰익스피어는 0의 철학적 의미를 탐구한 사람입니다
그는 리어왕에서 nothing에 대해서 말하고
햄릿에서 silence 를 말하고
맥베스에서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라는 문장으로
silence 와 nothing 을 동시에 정의합니다
이것은 0이 맥락을 갖는 것을 의미하고
맥락이 있는 0이란 애초에 0의 개념이 끝없는 다양성을 보장하는 부재임을 드러내는 것이고
단테의 '지적 태만' 비판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응답인 것입니다
단테의 uno incognito e indistinto가 다양성을 정복하여 하나의 입장으로 수렴시키는 폭력적인 통제였다면
코딜리아의 Nothing은 그 하나의 입장(sound로 증명된 사랑)을 거부함으로써 진정한 사랑의 다층적이고 설명 불가능한 본질이자 끝없는 다양성을 보장합니다.
코딜리어의 Nothing은 리어왕의 자의적인 '사랑의 정의'에 포획되기를 거부합니다 이 0 은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진실을 담을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며
이것이 바로 Guardat을 통해 능동적으로 탐구해야했던 그 하나의 cosa인 것이죠
그리고 리어왕의 Nothing은 셰익스피어가
thing이라는 집단 의사 결정 기구를 오래 유지했던 스칸디나비아 왕국들(덴마크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햄릿을 썼던 이유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왕 앞에서 모두가 자신의 이해를 말하는 형태의 Thing에서 자의적으로 유일한 결정자가 되면서 이것이 더 이상 Thing이 아님을 고지하는 Nothing이자
그 당시 영국의 현실 엘리자베스가 수장령을 선포하고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정통성을 제공한 의회를 점점 더 배제했던 상황을 풍자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코딜리아의 Nothing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진정한 Thing이 부재하다는 선언이며 합의와 진실이 제거된 왕의 강압적인 Thing에는 참여할 가치가 없다는 윤리적이자 동시에 정치적인 침묵입니다
이렇게 맥락을 갖는 0이 바로 silence 인 것이지요
또한 햄릿은 이런 대사도 합니다
Why, then, 'tis none to you, for there is nothing either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
“good or bad”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인식이 부여하는 것이라는 통찰은 이미 중세적 신학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심지어 셰익스피어는 단순히 철학 교리를 읊은 게 아니라
이 말을 뱉은 햄릿이라는 인물이 처한 정치적 상황 즉 덴마크가 감옥처럼 느껴진다는 햄릿의 불만에 로젠크란츠가 반박하자
거기에 대해 “그건 네겐 감옥이 아닐 수 있지. 왜냐하면 어떤 것도 그 자체로 선이나 악이 아니고, 생각이 그것을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야”라고 답한겁니다
말하자면 세계의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고 경험하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드러내는 것이죠
중세든 현대든 경험하는 주체에 따라서 그 세계는 다르다고요
말하자면 신은 죽었다고 호들갑떠는 포스트모더니즘이 현대인의 독점적인 인식체계는 당연히 아니고요 오히려 그걸 그리스도교에 과민한 자들이 떠는 꼴값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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