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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 슬라보예 지젝

 다시 적기를 들 때인가?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 슬라보예 지젝


 오늘날 우리는 지젝이 말하는 '무조음의 세계' 를 살아가고 있다. 1989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함께 '역사의 종언' 이 울려퍼지고, 자본주의의 헤게모니가 전지구를 덮치면서 과거 대의를 위한 어떤 행동도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역사의 종언 이후의 역사란 그저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할 뿐 더 이상의 다채로운 화음은 사라진 무조음의 세계 가리킬 뿐이었다. 정치적 무관심의 확산, 포르노그래피의 범람, 디지털 사회로의 도피 등, 이 밖에도 포스트 모던한 우리 사회를 가리키는 징후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계급투쟁과 공산주의의 전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는 낡아빠진 근대의 산물로 간간히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고질적이게 되버린 무조음의 세계 속에서도 미세한 틈새는 나타난다. 자본주의와 함께 전 지구를 강타한 생태적 재앙,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한 디지털 공간의 출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나타난 윤리적 난제들, 그리고 사회로부터 배제된 '목 없는 자들' 이 주거하는 슬럼의 확산까지, 역사의 종언 이후 자본주의의 완전한 승리는 아직 실현되긴 커녕 도리어 자본주의 체제의 역동성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결과물들이 도리어 자본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역사적 통찰이 떠오르지만 그럼에도 그에 맞선 과거의 대의를 내세우기에는 그 실패가 너무 적나라하다. 로베스피에르의 자코뱅 집권, 레닌의 10월 혁명, 마오의 문화대혁명, 그 밖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던 공산주의 운동의 참담한 결과들은 우리가 다시 대의를 주장하기 주저하게 만든다.


 지젝은 오늘날 상식처럼 되어버린 자본주의 헤게모니의 확산 속에서 다시 과거의 대의들을 불러온다. 그가 분석의 틀로 제시한 것은 맑스주의와 정신분석이다. 이 두 이론의 역사란 실패의 역사나 다름아니다. 프로이트의 임상보고서는 대분분의 실패와 아주 부분적인 성공만을 보여줄 뿐이다. 맑스주의는 아마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너무 쉽게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두 이론은 실패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더 가치있다고 지젝은 말한다. 역사 속에는 실패뿐만 아니라 실패함으로써 실현되지 못한 다른 가능성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가능성들 역시 실패할 지도 모르나 그럼에도 우리는 자본주의의 불확실한 승리보단 다른 가능성들에 대한 믿음으로 더 잘 실패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지젝의 요점이다.


 자코뱅의 집권, 파리 코뮨, 레닌의 10월 혁명, 마오의 문화대혁명등과 같은 폭력적인 혁명의 분출 속에는 분명 폭발적인 해방의 가능성들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이 혁명들이 실패로 끝난 이유는 그것들이 너무 급진적이었기 때문이 아닌, 오히려 덜 급진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지젝의 판단이다. 혁명 속에서 진정 급진적인 것은 단순한 폭력적인 행동이 아니다. 바로 기존의 지배적인 경제적 일상생활의 근본을 뒤바꾸는 변화에 있다. 자코뱅의 '여성의 자치 조직화에서부터 모든 늙은이이가 평화와 존엄 속에서의 말년을 보내는 공동체 가족까지 불과 2~3년 사이" 에 이루어진 일상의 재조직화와 문화대혁명 속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한 상하이 코뮨이 당과 국가의 완전한 소멸을 요구하는 등 단순히 정치적 외관을 바꾸는 것 뿐만 아니라 일상의 근복적인 지점을 뒤흔드는 행동들이야 말로 진정 급진적인 변화이다. 폭력은 오히려 진정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날 때 도리어 그 변화에 대한 반동으로써 결국 본질적인 변화를 이뤄내는데 실패했다는 점을 은폐한다.


 과거의 혁명이 실패한 경제적 변화를 우리 시대에 이뤄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지젝은 다시 정치로 돌아간다. 그는 정확히 '프롤레타리아 독재' 를 주장한다. 자본과 국가권력과 거리를 두며 비-자본주의적 삶을 추구하거나 그들에게 요구하거나 설득하는 식의 운동은 지젝이 보기에 카페인 없는 커피처럼 '혁명성 없는 혁명' 의 추구하며 가짜 혁명을 소비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경제적 변화는 혁명적이고 평등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지젝의 글은 매우 현학적이고 어려운 걸로 유명하지만 이번 책을 다양한 영화, 문학, 역사적 사건들을 예시로 난해한 철학이론들을 설명하기에 다른 저작들 보단 쉽고, 심지어 재밌다고까지 느꼈다. 아마 이런 글쓰기 스타일이 지젝이 유명해지는 데  한 몫 했을 것이다. 그의 주장들이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순 없겠지만 오늘날 자본주의가 전례없는큰 승리를 구가하는 세상 속에서'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 가 들려주는 새로운 가능성들은 한 번 귀기울여 들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