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함께하면서 힘을 받는다는 말도 그 자체로는 이해가 잘 안 가고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할 때의 공허가 전혀 이해가 안 가서 어떤 느낌일지 책으로라도 찍먹해보고 싶음..
그 이유를 풀어서 말로 들으면 뭔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와닿지가 않음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힘을 받는다는 말도 그 자체로는 이해가 잘 안 가고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할 때의 공허가 전혀 이해가 안 가서 어떤 느낌일지 책으로라도 찍먹해보고 싶음..
그 이유를 풀어서 말로 들으면 뭔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와닿지가 않음
프랑켄슈타인 봐라. 괴물이 외향적인 성격 같던데 다른 사람과 함께하지 못할때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줌.
울트라소셜
의외로 외향성 자체는 사회적 관계나 사회성과 큰 관련이 없다는 연구가 많음. 가령 외향성이 높은 사람이 내향적(저외향성)인 사람보다 사회적 활동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내향적인 사람도 외향적인 사람보다 덜할 뿐이지 당연히 고독보단 사회적 활동을 좋아함. 또한 외향적인 사람은 같이 있을 때 행복하고 혼자 있을 땐 불행하다거나 반대로 내향적인 사람은 혼자 있을 때 행복하고 같이 있을 때 불행하다는 편견과 달리 외향적인 사람은 혼자 있을 때도 내향적인 사람보다 더 활기차고 행복함. 외향적인 사람은 넓고 얕은 관계를 맺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좁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경향이 있고, 외향적인 사람도 사회적 활동에 여러 심리적 자원을 사용하고, 따라서 심리적 자원이 고갈되면 불필요한 사회적 활동을 피하는 경우도 많음.
행복의 기원의 저자인 연세대 서은국 교수가 지적하듯 모든 사회적 관계는 사랑과 이별과 같은 양면성이 있음. 즉 사회적 관계는 누구에게나 소중하기 때문에 누구나 사회적 관계에 많은 노력을 쏟지만, 그렇게 사회적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행복을 느낄수록 힘들게 쌓아 놓은 사회적 관계가 망가질 땐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됨.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양면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기에, 장대익 교수는 울트라 소셜, 공감의 반경과 같은 책을 통해 정서적 공감과 사회성의 한계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함.
나는 쿠르츠케작트에서 Loneliness 를 보는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봄. 나도 걍 혼자가 편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이지만 그냥 배고픔이랑 비슷한 감각신호의 영역이구나 그래서 불안과 비스무리한 불쾌감을 느끼는거고 그걸 해소하면서 안정감을 얻는구나 그런 느낌으로 받아들임. 누군 더 허기지고, 누군 덜 허기진 감각을 느끼잖아
근데 내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해도 완전한 고립이란걸 상상할 수나 있을까? 동굴 속에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음식들이 보장된다고 해서 그러한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동굴 속에서 푹신한 침대와 무한히 읽고 볼 수 있는 책과 유튜브가 있다는건, 본질적으로 그것을 만드는 타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거고 모든게 사라졌을때,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결국 지루함이라는 그 감정을 해소하는데 타자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데서 온다는 점에서도 연결되어있지 않을까?
우주에서 혼자 고립되어 떠돌아 다니기만 한다고 할 때 우리가 그 고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혼자서 그러한 우주의 공간을 탐험할 수 있는 육신의 한계를 초월했다면 신비로운 경이를 목격하는데 한동안 재미를 붙일지도, 그러나 본질적으로 공허할거같음.
<클래식 파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