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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의 글에서 나타나는 아프리카 대륙의 이미지는 야생과 야만, 그리고 문명 이전의 원시가 지배하는 곳이다. '어둠'은 문명상태의 유럽인이 아프리카를 정복하러 갔으나 오히려 그 야생과 야만에 의해 굴복하게 되며, 이를 통해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야만성과 식민지배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글이기도 하다.

'어둠'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과 유사하게 문명인의 내부에 감춰져있는 야만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이와 함께 식민지에 파견된 자들이 아프리카에서 행하는 폭력에 대한 비판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당대의 시민들에게 식민지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비판을 전달하는 역할로도 작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둠'의 식민지 비판은 아프리카를 묘사하는 방식과 미묘한 논점 회피를 통해 식민정책에 대한 비판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이 지배구조를 정당화하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어둠'에서 아프리카는 야만과 야생으로 장소로 이해 불가능한 타자임과 동시에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비문명적-비이성적인 태도를 지닌다. 이와 대조적으로 나타나는 서구 백인의 문명성은 이러한 야만성과 싸우기 위한 수단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몇몇 어리석은 서양인과 야생에 대한 숭배적 표현해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의 야만성과 포악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아프리카는 이해의 대상이 아닌 적이자 굴복시켜야 할 대상임이 드러나며 독자의 감정이입을 한쪽 방향으로 몰아넣는다.

또한 콘래드가 영국으로 귀화했음을 감안할 때, 벨기에의 식민 통치를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영국의 식민 통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작중에 등장하는 러시아인이 영국 담배에 대한 긍정적인 평을 하는 점, 아프리카의 지도를 보며 영국령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는 '문명적인' 영국의 식민 통치와 다르게 특정 나라의 식민통치에만 집중적인 비판을 하게 만든다.

'어둠'에서 나타나는 식민 통치에 대한 비판은 개인의 양심의 가책에 기반한 죄책감에 가까우며, 아체베의 말을 빌리자면 '야만적인 아프리카에 대항하는 백인을 응원하게 되는' 구조는 명확하게 이 글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풍부한 묘사와 개인이 느낄 수 있었던 체험을 심도 깊게 묘사한 점에서는 매우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대상의 타자화를 기반으로 성립된 글이라는 점에선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기 힘든 글이기도 하다.

이보다 앞선 시기에 쓰여진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에서 나타나는 허크와 짐의 관계가 상대를 무언가에 속해 있는 대상이 아닌 개별적 인간으로 본다는 점과 비교해 볼 수도 있을텐데, 이 부분에 있어 '어둠'은 그 비판적 서술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식민 통치에 대한 정당화가 얼마나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였는지를 느끼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