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스크롤 해주세요.

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만두이미지

이번에 읽은 책은 을유문화사의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완독을 목표로 순서에 따라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검색을 통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원작임을 알게 되자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술술 넘어가는 편은 아니었다. 콘래드의 폴란드계 배경에서 비롯된 독특한 영어 문체 탓에 한글 번역본임에도 몽롱하고 모호하게 다가왔다. 마치 독자인 내가 정글이라는 환경에 들어가 직접 그 모호한 여정에 참여하는 듯했지만, 책을 덮고 난 후 가져다주는 사유는 필자에게 많은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1885년, 유럽 열강의 승인 아래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가 콩고를 자신의 개인 사유지인 '콩고 자유국'으로 인정받았다. 이에 레오폴드 2세는 미개한 이들에 대한 문명화 사명이라는 거짓된 목적을 내세워 공공군을 창설하여 콩고 국민들을 강제 노동으로 착취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게다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목을 절단하거나 대규모 학살을 서슴치 않는 그의 잔혹한 참상은 후대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위에서,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투영된 주인공 말로가 상아 교역소장인 커츠라는 인물을 만나러가는 만나러 가는 여정 단순한 탐험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어두움. 즉, "어둠의 심연"에 대한 여정이다.

여타 다른 모험 소설과 달리 모험에 대한 테마보다 주인공의 내적 변화에 더 주목했다. 주인공인 말로는 원주민들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것은 다른 유럽인들과 똑같은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콩고 강을 거슬러 오르며 마주친 원주민들의 고통과 공포정치의 현실은 그의 타자화된 시각을 깨고 그들 속에서 보편적인 슬픔과 인간성을 인지고 다른 백인들을 순례자라는 표현을 써서 비꼬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말로 역시 안전하지 않았다. 그는 커츠를 잡으러 가는 잠깐 정글이라는 이름에 본능과 동화하는 낯선 충동을 느끼고 문명에 대한 개념을 잊어버리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는 말로 또한 커츠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인간이며, 커츠의 약혼자에게 거짓을 고하는 장면은 문명의 연약한 이상에 대한 보호와 동시에 문명의 껍데기가 얼마나 얇은지 보여준다.

어찌 보면 주인공보다 더 중요한 인물인 커츠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고상하고 능력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작 중에서는 주인공이 만나는 인물마다 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고 내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쯤에 드디어 만난 그는 소문과 달리 잔혹하게 원주민들을 학살해 지배하여 상아를 바치게 하고 본사의 귀국 요청을 거부하고 정글에서 계속 머물며 악신으로 군림하길 원함과 동시에 이상 대신 광기와 본능에 전적으로 항복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열병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결국 강제로 송환되는 처지가 되어 배에 탑승하게 된다. 귀국 도중에 죽음이 가까워지는 커츠의 마지막 절규는 "THE HORROR! THE HORROR!"라는, 자신이 행한 만행과 내면의 파멸을 본 자기 인식의 깨달음과 말로에게 도덕적 생존을 돕게 된다.

결국 <어둠의 심연>의 진정한 가치는 이 두 인물의 상반된 여정에서 발견된다. 커츠는 문명의 허상을 믿고 야만에 투항한 결과를 보여주었다면, 말로는 그 광경을 목도하고 간신히 도덕적 생존을 택한 증인이다. 콘래드가 묘사한 것은 콩고라는 대륙 자체가 아니라, 문명의 통제가 사라졌을 때 드러난 인간 내면의 허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작품을 둘러싼 비평적 논란을 피할 수 없지만, 이 책의 진정한 주제에 대한 사유의 문을 열어준다.

이 책과 관련해서 주된 비판 중 하나는 치누아 아체베의 "An Image of Africa: Racism in Conrad's Heart of Darkness"라는 에세이를 통해서 예술적 가치는 별개로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를 유럽 문명의 대척점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필자는 이 의견에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 지역에서 식인을 즐기는 부족이 있었지만 그것이 콩고라는 나라를 전체 대표하는 것처럼 표현이 되었고 작 중 표현이 인간의 본능과 야만에 대한 것일지라도 콩고 전체를 어둠의 근원지처럼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흑인들을 같은 인물에 대한 타자화(他者化)는 작가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와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제에 대한 설득력이 다소 떨어져보이기도 한다. 이런 시대적 한계에 부딪혀서 강력한 비판을 받았지만 작품에 대한 주제에 관점을 바꿔서 커츠처럼 똑같은 환경에 던져진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인간의 내재된 본능에 대한 탐구와 문명의 허상에 대한 것에 더 초점을 맞춘다면 또 다른 이야기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