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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기술은 자신을 매끄럽게 감싸는 외골격을 만들어낸다. 마치 동물처럼, 자신의 내부에서 빠르게 요동치는 울퉁불퉁한 내장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피부를 만들고 그 너머에서 신기할 정도로 유능한 성능을 보여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안전하고 편리해 보이는 자동차의 보닛을 열어보는 순간 우리는 마치 사람의 배를 째서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복잡한 수수께끼 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기계가 하나의 생물이라는 유비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 굳이 유비라고 한다면 생물을 각 용도에 맞게 하나의 기계처럼 분석할 수 있다는 흔한 연구용 모델에 가까울 테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의 친근한 인상이 그 세부사항을 숨기는 만큼, 기술이 실제로 현실의 무엇을 보고 본따거나 구현하고 싶어했는지, 그 수많은 스케치와 시제품들은 한 줄기의 곧은 직선으로 간단하게 요약될 때가 많다. 그러나 기술과 생물의 유비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유효한데, 생물의 다양한 변이 및 진화 과정이 특별한 방향성 없이 무작위적으로 보일 정도로 비비 꼬이고 변화를 다시 되돌려놓는 식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기술의 '발전' 과정 역시 복잡한 실타래 속에서 진행되며, 실타래 바깥으로 삐져나온 한 가닥의 실이 이 모든 실타래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실타래 속에서는 또 다른 실들이 일종의 잠재태로서, 언젠가 삐져나와 마찬가지로 모든 서사의 '완성형'으로서 추앙받을 나날을 기다리고 있다.



갤러웨이는 디지털 시대의 여러 실가닥을 주제 삼아, 이 실가닥이 삐져 나오기까지 있었던 여러 시도와 발전, 그리고 그것이 디지털 시대에 갖는 의의를 약간은 두서없이 그러모아 <계산할 수 없는>에 담았다. 사진, 네트워크(직조), 디지털, 오토마톤, 게임 알고리즘, 블랙박스, 여섯 개의 주제가 이 한 권에 모여 있으며, 당연히 핵심 주제는 모호하다. 다소 두루뭉술하게나마, 이 계산 기술이 포획하고자 했던 현실의 수많은 "계산할 수 없는" 듯한 문제들이 어떻게 포획되어갔는지가 주제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포획하는 동시에 놓치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또 주제라면 주제일 수 있기에 그리 그럴듯한 주제는 아니다. 반대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이 계산할 수 있는 것으로 디지털 시대에 포획되며 변화하는 사회 속 변화하는 개인이 일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등, 제목 <계산할 수 없는>은 계산할 수 없는 X를 표현하는 말로 생각하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디지털이라는 방법론 자체가 보여주듯, 어쨌든 계산은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것이 사진의 발전 과정처럼 수식보다는 장인의 섬세한 조정을 이야기하든, 예술을 위해 자의적으로 수정되며 수학적이지만 수학적이지 않은 생산 활동을 이야기하든.



<계산할>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 챕터인 블랙박스인데, 제2차 세계대전 중 말 그대로 내부를 들여다보려는 모든 시도가 분석 대상을 파괴하는 트리거가 되는 상황 속에서 이 블랙박스를 분석하기 위해 온갖 외부 상호작용만을 사용하는 방법론이 점차 기계, 특히 디지털 기계의 특성이 되는 과정에는 얄궂은 역사적 매력이 있다. 디지털 챕터에서도 논하고 오토마톤 챕터에서 예시를 보여주듯, 디지털 기술은 기본적으로 0과 1의 신호를 구분하는 것처럼 내부 세부사항을 뭉개고 규격화시킬 수 있는 융통성을 확보하는 데에서 시작하고, 이것만으로도 다양한 오토마톤처럼 기이한 자기조직화 현상을 충분히 구현해낼 수 있다(물론 그 상수를 잘 조정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만). 일종의 디지털 미학이라고도 할 수 있을 포장, 혹은 "캡슐화"의 미학이 전자제품의 단추처럼 컴퓨터 프로그램의 API로 나아가는 과정은 프로그래밍의 무정부적 대중참여와 맞닿아 마치 규격 잡힌 틀에 들이붓는 젤라틴처럼 꽤나 그럴듯한 효능을 낸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점점 익숙한 것이 될수록, API 내부의 동작은 더욱 더 천편일률적인 것으로 여겨져 숨겨진다. (굳이 뻔한 이야기를 하자면 AI에 대한 일반적인 논쟁도 결국 이 방향성에 있고, 최근 네이버 블로그 및 카카오톡 UI 업데이트가 분명히 보여주는 플랫폼의 권력도 사용성과 강제성을 매끄러운 표면 아래에 함께 묶으며 디지털 환경이 결코 공짜도, 자유롭지도 않다는 것을 매번 재차 확인시켜준다 - 참 고마운 일이다)



저자가 최근 인문학 연구에서의 데이터 활용에 대해서 그리 밝지 않은 전망을 예상하는 것도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최근 빅테크의 트렌드가 대규모 데이터셋을 확보하고 이 데이터셋의 특성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파악하고 조작하는 데에 있다는 점에서 소규모 학술 연구 속 데이터 분석은 이를 뒤따라갈 수밖에 없다. 프랭코 모레티의 <멀리서 읽기> 같은 정량적인 디지털 인문학은 사실상 LLM의 하위 모델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아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에는 그 정도로까지 학술적 역량-혹은 비전이라고 해야 할까?-이 뛰어나지 않은 것도 현재로서는 사실이다. 물론 클라우드 컴퓨팅이 현실적으로 실용성 있는 수준으로 가능할 수 없다는 학계의 중론은 구글이 이미 예전부터 쓰고 있던 기술을 학술지에 공유하는 것으로 뒤집혔던 것처럼 IT 분야에서야 늘 있는 문제긴 하지만 아예 연이 없는 영역의 학계에서까지 이 불리한 경주를 더 뒤쪽에서 따라가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고전적인 연구가 이 시대에도 과연 통할 만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이건 디지털 연구 방법론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다른 영역의 문제일 테니 굳이 논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읽으며 아쉬운 구석이 좀 많은 책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지만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되는 내용이 많았고, 기술 전반과 그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가볍게 읽을 만한 에세이집에 가까운 책이라고 할까. 갤러웨이의 책 중에서는 <프로토콜>이 가장 유명한 것으로 아는데, 이 책의 정치성이나 <계산할>의 부제 "장기 디지털 시대의 유희와 정치"가 보여주듯 갤러웨이는 디지털 시학의 정치성을 논할 때 가장 빛나는 사람인 듯하다. (어쩌면 기 드보르의 <게임 오브 워> 보드게임을 다루며 기 드보르의 노년을 논하듯, 사이버네틱스 포스트마르크스 집단 티쿤Tiqqun을 단지 지나가듯 언급하는 걸로 그치지 않고 길고 자세하게 썼다면 더 흥미로워졌을까?) 실제로 <재현불가능한 것이 있는가?>(링크) 같은 글을 보면 대체로, <계산할>에 수록된 글보다 좀 더 흥미롭다. <계산할>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쁘지만 않다. 읽어볼 만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