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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이반이 현재까지는 실질적 주인공임(물론 악마들이 진주인공). 거장은 짧게만 등장했을 뿐 아직은 온전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니. 이반의 이야기 중에는 항상 빌라도가 등장하는데, 볼란드가 얘기를 꺼내거나, 정신병원의 시간이 넘어가는 장면에서 항상 빌라도의 얘기로 넘어감.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 같음. 이반은 카라마조프의 이반과 동명이인인데, 이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것 같음


시간: 11시는 이반이 정신병동에서 일어난 시각이자 빌라도가 예수와 만난 시각. 11시 20분은 스툐파가 실종된 시각. 11시가 계속 강조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음.


림스키: 제일 머리가 똑똑한 새끼. 아마도 이 새끼 캐리로 소설이 끝나지 않을까 싶음. 악마들이 들이닥쳤을 때 수탉이 세 번 울어서 간신히 살았는데, 이는 베드로와 연결되는 것 같음.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누가복음 22장 중



악마들: 사실상 진주인공. 이 새끼들 깽판 내용이 소설의 주된 내용임. 그러나 그 속에 있는 소련의 부조리함도 꽤나 무시를 못하겠음. 외화를 보유했다고 끌려가고... 신을 부정하려고 하고...


볼란드: 악마 중에서 유일하게 다루고 싶음. 소설 초반에 신이 있는가에 관해 베를리오즈와 대화를 나누는데, 카라마조프가 생각나는 대목임. 카라마조프에서 이반이 신도 없고 악마도 없다고 얘기하잖음. 근데, 여기서는 카라마조프와는 다른 관점으로 신을 그림. 부조리. 갑자기 뒤질 수도 있는 부조리. 마치 V2처럼 갑작스레 닥치는 죽음. 신이 없다면 이것들은 단순한 개죽음이 될 따름이니까. 이에 신을 필요로 하는 모습.


성경: 여기서의 예수는 모습이 상당히 다름. 일종의 철학자처럼 보이기도 함. 그리고 여기서 12 제자는 없고(마태오만 등장하고, 그나마 유다가 있지만, 베드로나 그런 제자의 모습은 전무함), 어린 나귀를 타고 오지도 않음.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1)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ㄱ)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마태복음 21장 중



십자가에 매달릴 때에도 가시관이나, 이런 유명한 것도 없음


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ㄴ)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태복음 27장 중


이는 어쩌면 성경의 신화적인 모습을 부정하는 것 같기도 함. 이는 도스토옙스키가 떠오르는 대목임


만일 누군가 내 앞에서 그리스도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면, 나는 진리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편에 서겠다.

—도스토옙스키



뭐 일단 여기까지가 현재 드는 생각임. 스포는 ㄴ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