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도연명의 사언시 <멈추어 선 구름(이치수 역주 도연명 전집)>에서, 도연명은 비가 우수수 떨어지는 날 처마에 앉아 술을 마시며 연락이 끊어진 친구를 떠올린다. "멈추어 선 구름 어둑어둑/봄비는 부슬부슬 내리네(...)/한가로이 동창에서 마시노라니/그리운 사람 생각나지만/배와 수레로도 갈 수 없구나" 이미 비가 쏟아져 길이 물로 넘치는 지금 상황에서 도연명은 그리운 사람을 찾아갈 수 없다. 아니 비가 없더라도 그를 만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외로이 있다. 이 시의 1연과 2연에서는 이 고독 속에 구경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친구에 대한 쓸쓸함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어조로 결합되어 도연명의 주변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그런 이미지는 3연에서 응축된다.

"동쪽 뜰의 나무는
가지마다 무성해지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자태 서로 뽐내며
나의 정을 불러일으키누나
사람들은 말하나니
세월은 쉼없이 흘러간다고.
어찌해야 가까이 마주 앉아
살아온 이야기 나눌까."


가지가 무성해지는 동쪽 뜰의 나무, 그것의 생명력은 시인에게 아름다운 자태인 동시에, 끊임없이 흐르며 이별을 운명지우는 시간의 무상함을 형상화한다. 미와 아픔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시발 미시마도 이 정도까지는 못했다


중요한 건 이것이다. 도연명은 여기서 고독에 대한 깊은 심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그것을 미와 엮는다. 미와 엮인 것은 무엇이든 끈적끈적하고 잘 사라지지 않는 것이 된다. 고통에 미를 바르면 가슴 속에서 계속 타들어가는 것이다. 따뜻함을 느끼면서. 그런데 마지막 연에서 그는 이 아픔을 어떻게 처리할까?



"훨훨 날던 새
내 뜰 나뭇가지에서 쉰다.
한가로이 깃을 거두고는
고운 소리로 화답하누나.
어찌 다른 사람이 없을까마는
그대 생각 진실로 간절하다오.
생각나지만 만날 수 없으니
한탄을 한들 어쩌겠소."

끊어진 관계를 애달파하던 도연명에 새가 날아들어온다. 새는 "화답한다". 도연명은 친구에게 건넬 법할 말을 한다. 대체 이게 무엇인가? 도연명은 새의 형태로 친구를 만난 것인가? 그렇다면 건네는 말이 여전히 이별의 상태를 전제하고 있지 않을 텐데? 애초에 새에게 건네는 말이기는 한 건가? 새는 대체 무엇에 화답한 것인가? 



도연명은 끊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없으며 그를 가로막는 장벽이자 그가 살고 있는 터전은 비구름과 자라는 가지들인 생명과 세월의 자태이다. 새가 날아온다. 그것은 화답하고, 도연명은 그에 말 걸지만, 이 말 검은 새를 향해 있지 않으며 그럼에도 새에 의해 말 검이 발생한다. 도연명은 새를 단지 새로운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도연명은 말 걸 이의 부재에게 말을 건다. 부재는 화답한다. 무엇으로? 한가로움과 쉼으로. 그는 도연명과 같이 살아 날뛰던 창공을 통과하여 이 고독과 고요의 공간에 머무른다.



그것은 도연명의 부재이다. 도연명과 세계가 끊겨진 바로 그 자리. 그 텅 빈 곳에 도연명은 말을 건다. 애달파 하는 말, 간절해 하는 말. 당초 모든 갈망의 말은 갈망의 대상이 아닌 부재에게 걸어지는 말이다. 그러나 한탄은 포기된다. 어째서인가? 그는 한탄을 함으로써, 갈망의 말로써 이미 갈망을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충족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정동을 고요하게 한다. 끊겨짐이 그 자체 미가 됨으로써, 한 편의 시가 되고 질서가 됨으로써 한탄은 포기된다. 혹은 해방된다. 부재는 부재로서 그렇게 존재한다. 끊겨진 관계는 끊겨진 채로 그렇게 관계 맺는다. 


도연명의 은둔이 가진 힘은, 그가 속세를 전혀 무가치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데서 온다. 그는 오히려 매우 자주 바깥을 희구한다. 고독을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갈애와 고통을 시 지으며, 자신의 부재마저 일부로 만드는 거대한 변화(그가 <육체, 그림자, 정신>에서 경건히 따르고자 했던 것)의 기(氣)를 우리에게 보내온다.



이에 관해 우리에게는 수많은 귀띔이 들려온다. 


"숲은 heimlich이다. 이것은 반대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독일어 단어 중 하나다. 비밀은 친밀하고, 잘 보호된 집이며, 안전의 장소다. 하지만 이것은 위장되어 있지는 않으며, 그런 점에서 unheimlich를, 이질적이고 기이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러한 뿌리에 닿을 때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의 거대한 대립-그리고 그보다 더한 대등함-이, 해결책이 오랫동안 의문으로 부쳐졌던 이 대립이 그들 안에서는 고요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에른스트 윙어, <숲 속 보행> (Thomas Friese 역의 <forest passage>를 자체 번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