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갤 자주 들어오지는 않고, 가끔 해외문학 읽고 싶을 때 어디 번역이 괜찮나 찾으려고 눈팅만 하다 문득 일이랑 상관 없는 글이 쓰고 싶어져서 씀.

제목처럼 나는 문학 전공했다가 웹소설업계에 뛰어든 사람임. 순문 준비하다가 현실의 한계에 부딪혀 펜을 꺾고... 이 지랄은 아니고 원래 학부생 때도 국문학에 취미는 없었음. 철학이나 사회과학 전공할 걸 후회하면서 레비스트로스, 푸코,  라투르 이런 거 읽었음. 그래도 전공이 전공이니 광장이나 당신들의 천국 같은 건 어쩔 수 없이, 하지만 재밌게 읽음.


그러다 어쩌다 웹소설을 접하게 됨.

다들 그렇듯이 나도 이 '저급한' 문학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었고, 솔직히 경멸감도 느꼈음. 제목 꼬라지ㅋㅋㅋ 같은 반응을 하면서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시간 떼우기용으로 읽어간 게 전부였음.

그러다 읽은 웹소설이 10질을 넘어서고, 20질을 넘어서니까 대강 웹소설의 문법이란 걸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됨. 그리고 웹소설 독자들이 교양 측면이나 지적인 측면에서 열등하거나 덜 교육받은 인간들이라 이런 걸 좋아한다는 착각도 깨짐. 오히려 웹소설 독자들은 자신들의 욕망과 요구, 시장 상황, 작가와 작품이 사용 가능한 테크닉 등등에 대해서 아주 정확하게 통찰하고 있었음.

뭣보다 이렇게 웹소설의 시장 환경, 읽기 환경의 구성, 그로부터 정립되는 장르 문법에 빠삭한 독자들은 놀랍게도 더 좋은 작품을 열망함.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서 위쪽에 있는 작품을 찾길 바람.

자기들끼리 논쟁하면서 어떤 것이 좋은 웹소설인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려고도 노력함. 판타지란, 무협이란, 대체역사란, 기업물이란, 스포츠물이란 어떻게 해야 더 좋아질 수 있는가에 대해 이 사람들은 정말 명철하게 파악하고 있었음. 심지어 뇌 빼놓고 본다는 노피아 TS버튜버나데나데물에 있어서도 다들 나름의 가치 기준을 세워놓음. 그 기준 위에서 명작 리스트를 만지작거리고 나름 자신들의 계보를 정리하거나 비평을 행함.

이게 뭐 '웹소설도 문학성이 있다!' 같은 이야기는 아님. 나도 동료 작가들도 심지어 다수 독자들도 그런 인정에 큰 관심이 없음.

솔직히 우리 업계는 순문업계를 적대시함. 동경을 느끼기에는 솔직히 소위 문단문학은 규모 면에서 좆도 아니고 그쪽 시장이 건전하게 돌아가고 성장하는지도 모르겠음. 문화적 권위에 대한 미묘한 동경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보다도 '자체적인 시장 생태계도 못 만드는 주제에 감히 이쪽에 도정제 빨대 꼽으려고 오는 능력도 인성도 나쁜 새끼들'이라는 인식이 커서. (그리고 그 인식은 꽤 잘 들어맞는 것 같기까지 함) 그래서 딱히 문단의 인정을 구걸할 생각은 없음. 우리는 순문계의 '인정'이 이익이 되기는커녕 목줄이 될 걸 알고 있고, 원래 인정과 승인이란 권력의 주체가 하는 일이라. 순문업계와 웹소업계가 수직적 권력 관계에 놓이기에는 둘이 너무 별세계 아닌가?

그리고 '문학'이야 정과리 센세가 90년대에 이야기했다시피 뭐라 정의내릴 수 없는 성질의 것이고 '문학성'이란 모든 예술의 판단 기준이 그렇듯이 어떤 공동체에서 갖고 노는 게임의 규칙, 또는 산정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걸 따지는 건 무의미하잖음? 그런 걸 논의하려고 시도하는 자체가 그 사람이 해당 주제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증명이라 봄.

한 가지 더하자면 나는 웹소설이 지금까지 존재해 온 문학 양식 중에서 두드러지는 무언가라 보지 않음.

웹소설은 일반 문학과 달리 순수 도파민 추구다? 문학적 '정전'의 계보 바깥에 놓인 지난 200여 년 동안의 대중 문학들은 그럼 안 그랬나? 그중 운 좋게 정전의 권위 속으로 포섭된 이들이 과잉으로 의미화된 건 아니었나? 러브크래프트와 다른 여러 작가들은 뭐가 달랐지? 50년대, 60년대, 70년대의 신문 연재 소설들은? 좀 더 연재 기간이 촘촘히 쪼개지고 독자와 작가의 거리감이 줄어들었다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이전 시대의 문학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형성했다고 보지는 않음.

우리는 한때 장한몽과 별들의 고향이 차지했던 그 위치를 차지했을 뿐임. 그게 매일 하루 최소 5000자씩 연재되고,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릴 뿐임.

웹소설의 독자-작가-업계 공동체가 사회 보편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다고 하기에는 근대문학의 형성 기반인 민족국가의 균질한 민족어로 이뤄진 단일한 시장이 바닥부터 붕괴된 지 너무 오래되지 않았음? 순문학이 여전히 (창비식으로 얘기하자면) 근대적 민족국가의 형성을 위한 민족 보편의 근대적 예술 양식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나? 그것도 아니잖음.

물론 '일반 대중'이라는 모호한 집단에서 대체로 웹소설을 저급한 하위문화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집단의 대다수가 문학 자체를 향유하지도 않고 웹소설이 아무튼 점점 대중화되고 있기도 하고.... 생각해 보니 이 부분은 애매하고 무의미한 것 같긴 한데 지우지는 않겠음.


아무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냥 웹소설은 그것 자체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거였음.

작가로서 이 업계에 오랫동안 굴러먹다 보니 나는 이 업계를 좋아하게 됐고 이 문학적 형식을 좋아하게 됐음. 누구나 쓸 수 있어서 쓰레기가 많다고? 니 양질 전화 모르나. 원래 명작을 만들려면 무수한 쓰레기가 밑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업계는 결국 괜찮은 소설이랑 작가는 귀신같이 붙잡아서 위로 올라감.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히려 쓰레기의 범람(과 그 원인인 낮은 문턱)은 시장에 생명력을 가져다줌.

아무튼 나는 웹소설이 좋음. 여기서 가치 있는 글들이 생산되고 읽히고 다시 그 독자가 작가가 되고 하는 생태계가 구축된 게 좋음.

너희도 좋아하란 말도 아니고 딱히 좋아할 필요도 없음. 그냥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 알면 됨.

그러라고 이렇게 횡설수설한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