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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은 스스로 에마를 자기 말고는 누구도 그리 좋아하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한다. 기우는 아니었다. 「에마」는 재밌는 소설이었지만, 주연들 중에 호감을 주는 인물은 솔직히 없었다. 「에마」는 철저히 푼수들의 이야기다. 오지랖 넓은 에마, 철저히 휘둘리기만 하는 해리엇, 꼰대 나이틀리, 로봇 같은 제인,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우드하우스 씨, 품행이 가벼운 프랭크, 프랭크보다 더 가벼운 엘턴, 마지막으로 앞서 말한 모든 인물들의 단점을 다 갖고 있는 엘턴 부인까지. 제인 오스틴은 늘 그랬듯 훌륭한 솜씨로 이들의 생활상을 발랄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읽는 동안에는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막상 책을 덮고 이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꺼림칙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여하튼 「에마」를 읽는 것은 독특한 체험이었다.
나는 「에마」를 좋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간 읽은 제인 오스틴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인물들이 다소 수동적으로 움직이고, 결말은 내 주관으로는 너무 작위적이었다. 두꺼운 분량에 비해 흐름도 아쉬운 편이었다. 무엇보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캐릭터들이 비호감이다. 그간 읽은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난관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운명을 개척하는데, 에마는 자신의 설익은 소신을 남에게 강요하면서 이를 타인을 위한 뜻깊은 행동이라고 여긴다. 이 경거망동을 눈치채는 것은 나이틀리 한 명 뿐이고, 그도 말로만 에마를 비판할 뿐 행동력이 있지는 않아서 그의 훈계에서 신랄함보다는 당혹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결말을 생각하면 그런 태도에 이유가 있는 듯 보이기는 하지만…) 에마가 자유 연애 사상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에마는 철저히 계산적이어서 사랑보다는 신분에 더 큰 무게를 둔다. 마틴이 받는 부당한 처사는 읽으며 답답할 지경이었다. 일이 잘 풀려서 망정이지! 마지막으로 에마가 사건들을 겪으며 성숙해가는 티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안 들었다. 에마의 실수는 매번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에마는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오판을 반성한다. 하지만 고비가 생겨도 결국 일이 잘 풀리다 보니 에마가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인물들과의 오해를 풀 때마다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며 화해에 접어들기는 하지만, 자기 혼자 해낸 추리로 사람들을 오해했으면서 편지 몇 통을 읽고 태도가 갑자기 돌변한 셈이니 에마의 마음이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좀 과격한 표현이지만, "모자란 머리에 허영심이 깃들면 온갖 해악을 저지르게 되는 법이니까."
단 「에마」를 읽은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안 좋게 말하면 인물들이 하나같이 푼수떼기지만, 좋게 말하면 인물들이 하나같이 개성적이다. 사건과 대화 속에서 사람들의 특색이 어우러져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벌어지는 것이 재밌었다. 명작이건 범작이건 700쪽이 넘는 책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에마」는 일단 손에 쥐기만 하면 시간이 금방 갔다. 이야기꾼으로서의 기량이 절정에 달한 제인 오스틴의 솜씨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에마」로부터 배운 점도 있다. 우선 누구의 마음도 내 마음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해리엇은 에마에게 마음을 맡겼다가 휩쓸리는 신세가 된다. 프랭크는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자신의 마음을 감추다가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일이 쉽건 어렵건, 자신이 원하는 바는 스스로 결정하고 거기에 당당히 인생을 걸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결정에 따르다 보면 자아를 잃게 된다. 일이 스스로 해결될 기회를 기다리자면 평생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누구도 마음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내 마음을 스스로 알아가며 내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둘째로 솔직함과 다정함이야말로 가장 큰 재산이라는 것을 배웠다. 에마는 편견, 심지어는 정황들을 모아서 만든 조잡한 추리로 남을 판단해 차별적으로 대우했다. 에마가 기본적으로 악인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도 대체로 착한 사람들이어서 망정이지, 만약에 에마의 그런 태도에 정면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면 큰일났을 것이다. 베이츠 양이 에마에게 원한을 품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여하튼 진실이 드러나기 전부터 상대를 이해했다고 자부하면 제인 오스틴의 다른 소설처럼 '오만과 편견'에 잠식되고 만다.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평화로이 지내려면 신중하고 다정해야 한다. 다정히 상대를 대하면 마음이 열려 진실을 터놓을 수 있게 되고, 막연히 불쾌했던 상대에게 어느새 호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오해를 일으키는 상대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다정히 다가오는 상대를 밀쳐내지 않고, 호의에 솔직함으로 보답하면 분명 돈독한 인연이 맺어질 것이다. "당신이 그 끔찍한 것들에 상처받은 감정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난 당신이 더 좋아질 거야."라는 에마의 푸념처럼 말이다.
"다정한 마음처럼 매력적인 건 없어.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에 정이 넘치는 솔직한 태도까지 더해지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머리보다도 매력적일 거야. 정말 그럴 거야." 에마는 스스로 뱉은 이 말에 충실하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결국 행운과 그녀 나름의 노력이 좋은 결말이 오도록 도왔다. 나도 이렇게 「에마」에서 배운 점을 글로 쓰고 있지만 여기에 충실하지 못할 때도 많을 것이다. 다만 「에마」를 읽으며 등장인물들과 함께 마음고생을 했던 기억은 오래 갈 것 같다. 그 기억을 이어나가며, 다정함과 솔직함을 무기로 삼고, 스스로의 마음을 스스로 돌보며 관계를 개척해나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우결충 에마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