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ced86fa11d02831e41c69f3746fbcbfa1c0f37f99685c3fd860034fcd9116308d1d702900c15f4e0ba4327740ab7b50a48e4d698a93


고딩 때 봤었던 책은 매우 한정적이었음.


95%의 범주에서 문학이었음. 그것도 세계 문학전집에 이름이 올라와 있을 법한


유명하다 못해 말하면 진부하기까지 한.



대부분의 고딩들처럼 일상의 굴레가 학교와 집 그리고 시험 기간 내에 독서실 정도로


봤던 책만큼이나 좁은 생활 반경이었음.


유일하게 운동이라고는 어릴 때부터 키웠던 애완견 두마리 데리고 산책이었음.


둘 다 말티즈였는데 똑똑했음. 어쩌면 비싼 혈통 값과 숙달된 훈련사 덕에 예견되고 교육된 머리였을 듯.



오랫동안 키웠는데 곧 세상 하직할 날이 얼마 안 남았음을 통보받음.


정확한 병명은 기억 안 나지만 노쇠로 간에 구멍이 났었음.


진단하고 치료했지만 몇 달을 겨우 연명하는 수준이었고, 수의사가 말한 기간 내에 당연하다는 듯이 죽어버림.



십수 년 같이 지내면서 직접적으로 죽음이란 걸 처음 느꼈는데 이렇게 당혹스러울지 몰랐음.


죽은 모습이 꼭 역할이 끝난 소모품처럼 가볍게 보였다가, 가여운 생명으로 바뀌었다가


쟤는 죽는다는 걸 알았을까, 가족이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조잡한 상상을 쟤 영혼도 동의할지


막연하고 단편적인 생각만 죽은 개 주변을 떠돌아 다님.



가족들 모두 비통해 하는 게 보였음.


당시는 풍조가 애완견 죽었다고 꺼이꺼이 울거나 시름에 잠길만한 거리가 안 됐음.


지금처럼 유튜브와 각종 사이트로 애완동물과의 교감을 공감하거나


전파로 쏟아내는 내용들이 폭넓게 작용하지 않아서 더 그랬었던 거 같음.


내가 그런 소통에 관심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음.


슬프고 충격적이었는데 주변에는 태연한 척으로 일관했었음.


이런 행동이 나이에 걸맞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라는 어설픈 관념 지향이었음.



어느 날 길거리에서 잡지 단행본 같은 서적을 받음.


불교서적인데 개선문이라는 제목이었음.


그 내용이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개 죽음만큼이나 충격적이었던 문장이 하나 있었음.



'사람들은 지금 죽어가는 내 생명이 지구가 멸망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매일 수천 명이 죽었다고 보도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문장이었는데 한낱 애완견 죽음으로 괴로워하며 부족한 생각이나 하는 내 상황 같았음.


그러고는 과거 회상이 주를 이루던 고민에서 갑자기 모든 생명체의 죽음으로 사고가 바뀌어 버림.


책을 덮고는 계속 중얼거림.


눈에 들어온 후부터, 앞으로 머릿속을 장기간 지배하는


짜증 나는 글귀였음.


역사 속 누군가의 죽음을 공부하거나, 티비 인터넷 어디서든


죽는다는 상황만 보면 저 문장을 대입해서 공식처럼 읊조렸음.


죽기 전 했던 그들의 유언이나 행동들이 문장의 진리를 대변하는 양 바쁘게 보였음.


하지만 고정된 일상과 제도권 교육이나 받는 내 수준으로는 저 이기적인 문장을 가지고 아무리 애를 써도


결론 짓고 잊을만한 답이 나오지 않았음.


그때부터 책에 대한 관심 판도가 문학에서 종교로 급격하게 기울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