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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유적 평등의 정치

그렇다면 이 자유적 평등이라는 정의 이론은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쓰였을까. 앞서 조세 제도와 복지 정책으로 예시를 들었듯이, 1950-1960년대의 서구권 국가에서의 복지 정책은 당시에는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지상주의 사이의 타협점 정도로 간주되었으나, '70년대에 이르러 롤즈와 드워킨의 이론으로 이러한 복지 국가의 이론적 틀이 세워진 셈이다.

그럼에도 복지국가는 세 가지 이유로 위기를 맞았다. 하나는 앞서 확인한 것처럼 현실의 정책은 사후적 재분배에 가까우며 사전적 평등을 이루기 위한 이론은 현실적인 정책을 내지 못하거나 많은 논란을 만들고 있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복지 정책의 재정건전성 문제와 복지 정책의 실효성 문제로부터 불거진 신 우파New Right의 부상, 마지막으로는 자유적 평등주의가 조장할 수 있는 불리한 계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복지국가는 복지 정책을 통해 사후적 평등을 이루지만, 자유적 평등주의는 사전적 평등에 기반한 정의 이론이기 때문에 이 이론이 복지국가의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없으며, 또한 자유적 평등주의는 복지국가를 통해 이루어질 수 없다. 롤즈는 오히려 이런 점에서 사전적 평등이 사후적 분배에 비해 더 나은 점으로, 노동의 분업 내에서 지배와 굴종의 관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전적인 평등이 이루어진 후에 직업을 결정한다면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사회적 위계 차이나,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위계 차이, 자본가와 노동자의 사회적 위계 차이를 예방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유적 평등주의의 제도적 공약의 다수는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현실적인 경제적 문제와 얽혀 있다. 복지국가는 재분배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 성장경제를 필요로 하지만, 성장을 위한 정책은 복지를 위한 정의 원칙과는 부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는 '70년대 석유 파동에 의한 경기 침체와 재정 건전성 문제, 그리고 복지 정책의 실효성 문제로 인해 복지국가의 능력에 대한 신뢰 상실과 그에 따른 레이건과 대처로 대표되는 신 우파의 부상이 있다.

복지국가의 능력에 대한 신뢰 상실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많은 수의 복지 정책이 잘 작동한 것은 확실하나, 몇몇 정책은 빈곤의 덫poverty trap이나 가난한 사람들의 의존성과 오명을 강화시켰으며, 원 의도와는 다르게 부유한 사람에게 혜택을 더 크게 주는 경우가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기존의 중공업 기반 경제에서 지식기반 경제로 패러다임이 변화해가면서 관리직과 노동자 간의 격차나 교육 수준에 따른 격차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신 우파의 부상은 동시에 복지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강한 의심을 제기하여 불리한 계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올렸다. 신 우파는 앞서 들었던 "재능있는 사람의 노예화" 지적처럼, 복지 정책은 복지혜택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동을 보조하기 위해 부유한 자들의 선택을 부당하게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울프Jonathan Wolff는 자유적 평등주의가 철학적으로는 최선의 정의이론일 수도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평등에 대한 잘못된 에토스를 조장한다고 시사한다. 다시말해, 복지 정책이 불리한 계층의 시민을 잠재적 사기꾼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불신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즉, 불리한 계층의 시민은 불리한 여건에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며, 이는 시민 상호간 유대를 저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롤즈나 드워킨의, 급진적인 이론에 비해 보수적인 현실적 제안을 이해할 수 있다. 자유적 평등주의자들은 복지국가를 급진적으로 확장하기보다는, 신 우파의 공격으로부터 기존 제도를 방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