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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죽한연은 한번 더 읽고 있어서 단편을 먼저 쓰는게 맞나 싶긴한데


어쨌든 생각난 김에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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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륭이 연작의 마무리 격 작품인 유리장에서 언급한 것을 토대로하자면


장돌뱅이 연작은 총 6부작이여야함


쿠마장, 산동장, 산남장, 산북장, 아마 산서장, 그리고 유리장


근데 전집에서조차 산서장에 대해선 찾아볼수 없었음


과연 다섯번째 작품이자 장돌뱅이의 마지막인 산서장의 내용은 뭐였을지..


여튼 이 소설도 박상륭이 항상 집착해오던 이미지 순환의 형태로 이루어진 작품임


첫번째 작품인 쿠마장에서 흘러가던 핏덩이가 유리장에서 도마뱀이나 도식으로 표현되는등


박상륭 특유의 끈적이고 질척이는 변주가 잔뜩 들어가있는데


무용함의 가능성, 꼭 마른 늪에서 고기를 낚는 과정을 제시하는듯한 모습으로


결국 이 소설은 박상륭이 당시 '요나기' 로써 언급해오며 써왔던 죽음의 한 연구와


주제 면에서 상당히 비슷한 면모를 보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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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데 재밌어서 계속 읽게되는 작품임..


너무 길어지면 유리장은 따로 뺄수도


박상륭이 언급하듯 나름 구분되는 작품임 유리장은




1. 쿠마장


쿠마장에서 주목할만한 이야기는 남편의 회귀 실패와


퉁소를 통한 노인의 분만 두개정도가 있을듯함


이 작품에서 나오는 장의 감독관은 어릴적 겪은 일과 노쇠를 겪으며


육체를 과거로 회귀하길 간절히 소망하는 인물임


마음속에 있는 아기를 태어나게 하고 자기는 썩어졌으면 좋겠다.


라고 표현해오던 모습에서 그 의지를 엿볼수있는데


아이가 굴러떨어져 죽1어버리니 희망이 없어져버린 그는


즉시 머리를 땅바닥에 내리쳐서 자1살함


턱을 괴면서 그를 묵묵히 바라보았던 자신이 잘못되었냐고 묻는 감독관의 아내의 한탄에


깊이 공감하며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주인공 장돌뱅이는


이런 회귀 의지에 공감하며 그의 신기를 빼내는 장례식에 동참함


이 신기는 항아리 안에서 살고있는 노인에게 중요한 요소인데


신기를 통해 무의미한 삶을 연장하고 만족감을 얻는 그에게


주인공은 퉁소를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 죽1음을 통해서 삶을 얻는게


진정으로 장독대 밖으로 나와 삶을 느끼고 불길 같이 타오르다 죽는 것이


그런 무의미한 연장보다 중요하다는걸 설법하며 노인을 감동시킴


이제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난 노인은 죽1음을 맞이하며 주인공에게 감사를 전하고


주인공은 노인의 죽음을 묵묵히 바라보다 그를 축복하며 다시 길을 떠남


구조 자체가 감독관의 죽1음 - 노인의 죽1음 - 노인의 회귀 - 재생으로 이루어지게 되며


박상륭 특유의 재치있는, 생의 재생이라는 주제로의 전이가 눈에 띄는 작품이였음



2. 산동장


이번 장에서 주인공은 선생이란 작자에게 끌려가며


문둥이나 절름발이 같은 못난 이들과 어울리게되는데


이 선생이란 작자는 다른 이들과 달리 굉장히 잘생겼기에


이상함을 느끼던 주인공은 선생의 비유를 통해 그 원리를 깨닫게됨


온갖 쓰레기들도 들어간 국밥도 끓여내면 압도적인 향을 자아내는데


절름발이 같은 쓰레기들의 좋은 부위만 이끌어내면


혼돈 같은 잡동사니에서 하나씩 모아 멀리서 들어보면 가락이 되듯이


신이라 불릴만한 나 같은 이가 탄생한다는 그의 말에 깨달은 주인공은


백치 여자에게 연정을 느끼며 정착을 잠깐이나마 고민하지만


뜻과 운동에 관한 선생의 말에 깨달은 주인공은


왈패들에게 선생이 지니고 있는 그들 고유의 부족함을 떼서


다시 그 바랑에 채우라고 지혜를 베풀고 언청이를 살1해하며


결국 내일의 장은 오늘의 장에서 피어나는게 아니겠냐며 다시 길을 재촉한다


선생이란 인물이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였는데


오만한 태도를 고수하면서도 장돌뱅이의 행위에 감탄을 내뱉기도


죽어가면서 내뱉던 '장돌뱅이가 내 피에 혼을 적시겠구나'. 라는 말은


죽한연에서 사조 촌장과 외눈승의 살해와 비슷한 구도적 살1해로도 읽히지만


이후 언청이에게 씨를 심고 다시 떠나갈적에 선생의 강론인 퇴화를 생각하며


그녀에게 뜻과 운동이 없다는걸 확인하게 되는 모습에서


주인공마저도 저 문둥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며


선생의 피를 혼에 적시고 일종의 세례로도 느껴지는 말을 통해


다시 장돌뱅이를 다른 장으로 떠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제법 흥미로운 말이였음 


선생이 말한 뜻과 운동, 퇴화와 질서에도 또한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데


순댓국에 비유하자면 재료를 넣고 끓이는 것이 뜻과 운동


퇴화는 그 사이에서 발생하여 결과를 이끌어내는, 뜻과 운동으로 가는 과정


질서는 그 결과물이라고 볼수있음


선생은 질서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둔 반면 장돌뱅이는 뜻과 운동 자체에 주목했기에


살불살조같은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음



3. 산남장


이번엔 문둥이들이 모여사는 장에 들리게된 주인공은


왕 행세하며 저를 박대하는 노파를 보며 설전을 벌이게됨


노파는 외관이 깨끗한 이는 천국에 들어설수없고


외관이 문둥이인 이들만이 속이 깨끗하기에 그리 되야한다며


대속물로 사용하기 위해 소녀를 희생시키려들지만


정작 그리 말하는 노파는 겉이 완전히 더럽지 못했기에 


주인공은 그를 지적하며 싸우다가 잡혀들어감


십자가에 매달리게된 장돌뱅이는 이제 문둥이 한 명을 택하여


그에게 돌을 맞고 싶다는 말을 통해 문둥이를 감화시키며 그를 대속시키고


장돌뱅이가 가지고 있는 수천의 죄 중 하나로 그에게 세레를 배푼다


소녀 또한 장돌뱅이의 모습에 반하여 대속하고 싶음을 천명하자


노파는 벌벌 떨며 세례를 배푸는 자인, 예수와도 같은 장돌뱅이에게


퉁소 불어 깨우치게 만드는 그에게 떠나달라 부탁하고


주인공은 그저 늘 그랬듯이 다음 장을 향해 걸음을 내딛으며 끝남


장돌뱅이의 예수적인 면모가 많이 부각되는 작품임


말고는 크게 모르겠다만 의식의 흐름 기법같은 그런


작품 내적인 요소가 눈에 띄는 편이였음



4. 산북장


산북장에서도 주인공은 또 사람들을 분만시키는 역할을 맡음


아이가 태어났을때 쓰는 금줄에 숯과 고추를 메달아 몸에 이고 다니는 광인을 만나


이제 주인공이 장을 옮겨다니며 자기 말씀을 전하라고 설파하는 그는


정작 자기 말을 들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 죽어가게되고


그를 목숨만 살린채로 불 켜진 대장간에 들어간 주인공은


생산이 불가능한 노부부와의 대화를 통해 이들도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다는걸 깨닫고


또 많은 이들을 감화시켰던 퉁소를 한자락 불어줬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소리 자체도 많이 희미해진터라 광인은 죽게됨


우울한 눈치로 무엇을 만들어주냐고 묻는 노인의 말에


생의 끝을 뜻하는 창을 만들어달라고도, 생의 시작을 뜻하는 보습을 만들어달라고도 하며


결국 끝에 이르러서는 그 둘을 합친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 요구하는데


이는 주인공인 장돌뱅이가 예수, 생과 죽1음을 함께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행동임


이에 깨달은 영감은 이제 죽음으로 달려나가지만, 그 아내는 영감이 죽는게 두려워 주인공을 말리려 들지만


생산 한번 하지못한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던 영감과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마음에


결국 생의 시작과 끝이 같다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며 다시 윤회를 시작하고


그리고 또 장돌뱅이야 다음으로 향해갈 따름이고, 또.


산북장은 삶의 시작과 끝이 연결된 우로보로스의 형태와 같다는걸 보여주는 작품임


박상륭이 맨날 그려놓는 기괴한 도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점인데


여기선 사람을 살1해하는 창과 생명을 불어넣는 보습을 한데로 엮어놓고 싶다는


생명 순환의 원리를 퉁소로 불어내던 주인공을 통해 표현함


사실 박상륭의 도식과 주인공은 모두 한데엮어저있는편인데


이건 따로 쓸 유리장에서 설명하면 될것같음



5. 산서장?


없어서 모르는데 아마 남동북이 나왔으니 서가 아닐까함


다음 작품인 유리장에서 언급된 바로는 


장돌뱅이가 사복에 의해서 죽1음을 맞이하고


그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인것같음


주인공의 퉁소 소리도 희미해진만큼 관련된 내용도 있을텐데


전집에서조차 없어서 아는분은 말좀..


논문들 찾아봐도 애는 언급이 없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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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박상륭 너는 단편마저도 최강이란 말이냐


글을 워낙 잘써서 정말 재밌게 읽었음


이런걸 보면 박상륭은 불교를 완전히 받아들인건 아닌것같음


생의 윤회를 긍정하고 받아들이며 재생시켜야함을 강조하는데


윤회를 끊어내야함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불교랑은 상당히 거리가 먼것같지만


결국 죽한연에선 다시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는게 신기함


여튼 술마시고 쓴거라 이상하거나 궁금한게 있다면 질문 부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