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백인일수 필사는 잠깐 그만두었지만
가을비 오는 날씨에는 또 백인일수를 안펼쳐볼수가 없어서
가을비에 잘 어울리는 시 몇개 가져왔음
비가 오는 가을의 심상은 사실 쓸쓸함과 맞닿아있는 경우가 많기에
그래서 가을의 쓸슬함을 표현해주는 시들로 추려봤음
각각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좀 넣어봤고
백인일수에서 비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시는 사실
오노노 코마치의 9수긴함
아쉽게도 봄비여서 넣진 않았지만 정말 좋으니 한번 ㄱㄱ
백인일수의 장점 자체가 간단하다는 점이기도 해서
가끔 생각날때 한번 쫙 읽어주면 좋음
사루마루노 다이호의 5수
奥山おくやまに 紅葉もみぢ踏ふみ分わけ 鳴なく鹿しかの
聲こゑきく時ときぞ 秋あきはかなしき
깊은 산 속 낙엽 헤치며 짝 찾아 우는 사슴
슬픈 울음 들리니 가을은 구슬퍼라
와카에서 수사슴이 암사슴을 부르는 소리가
연인을 그리는 마음을 뜻하는만큼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말하기도 하는 시고
낙엽 밟고 우는 소리만 무상한 가을밤이 연상되는
분위기가 좋은 그런 시기도 함
당시 가을을 생명이 꺼져가는 계절이라고 해석해서
이런 시들이 많다는 추론도 있음
오에노 치사토의 23수
月つき見みれば 千々ちぢに物ものこそ 悲かなしけれ
わが身み一ひとつの 秋あきにはあらねど
달 바라보니 수 천 가지 상념에 서글퍼지네
이 내 한사람만의 가을은 아닐텐데
한가위나 그럴때 하얀 달을 가만히 보고있노라면
처음엔 다른 생각 없이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보면볼수록 연상되는 그리움, 쓸쓸함, 고요함에 물들어
어딘가 서글퍼지는 가을밤의 무상함을 표현하는 시임
이 시는 이백과 두보, 그리고 한유와 함께 언급되는
당거이라는 시인의 한 소절을 번안해서 차용한 작품이기도함
에교 법사의 47수
八重葎やへむぐら しげれる宿やどの さびしきに
人ひとこそ見みえね 秋あきは来きにけり
우거진 넝쿨 무성한 초가집에
홀로 외로이 찾는 이 조차 없이 가을만 찾아왔네
백인일수엔 생각보다 승려가 많은 편인데
이름도 특이한 에교 법사의 작품임
이 작품에선 초갓집이라는 요소를 잘 봐야하는데
14수의 가와라의 좌대신이 건축한 화려한 건물인
가와라인이 어느새 황폐해져버려 초갓집이라 부를만큼
몰락해버렸기에 그 성쇠를 표현하는 말이기 때문
법사가 이렇게 글을 잘쓰면 왜 승려를..
후지와라 모토토시의 75수
契ちぎりおきし させもが露つゆを 命いのちにて
あはれ今年ことしの 秋あきもいぬめり
쑥 이슬 같은 허무한 약속
목숨처럼 믿고 의지했건만
올 가을도 허망하게
이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재밌어서 넣어봤음
시를 쓴 작가인 모토토시는 일본의 유명 공신 가문
후지와라 가의 사람으로써 당시엔 영광스러웠던
불법을 설파하는 강사 자리에 아들을 앉히고 싶었음
그렇기에 뒤에 이어지는 76수,
'넓은 바다로 배 저어 나가보니 흰 구름인가
하얗게 일렁이는 저 멀리 흰 파도' 를 쓴
후지와라노 다다미치에게 부탁을 했는데
아들이 그러한 뛰어난 이의 도움에도 실패를 해버리니
억울해서 한탄하듯 이 시를 지어서 썼다고함
사이교 법사의 86수
嘆なげけとて 月つきやはものを 思おもはする
かこち顔がほなる わが涙なみだかな
슬퍼하라고 달이 떠있는 건가
그렇지 않네 달을 탓하는 내 마음 흐르는 눈물이여
사실 이 시를 소개하고싶어서 이 글을 썼음
달이 떠있음을 헛되이 탓하는 스스로를 제지하며
제 애달픔을 씹어삼키는 절렬한 감성이
흐르는 눈물로 승화되어 담겨있는 이 시는 개인적으로
많디 많고 수준 높은 백인일수 중에서도 탁월한 감성을 자랑한다고 생각하는 편임
작가인 사이교 법사는 무사로서 활동하다 승려가 된 이로,
다양한 사랑 노래를 부르고 다니다 자기가 쓴 시처럼
'바라옵건대 활짝 핀 벚꽃 아래 죽고 싶네
부처가 입적했던 보름달이 뜬 이월에'
실제로 그렇게 석가모니가 돌아가신 2월 16일에 죽었다고 전해짐
이외에도 1수, 26수, 69수, 79수등
백인일수엔 가을에 관한 좋은 시들이 많으니
호기심이 든다면 한번 쭉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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