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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을 보니까 대부분의 단편이 청탁 받아서 요청사항에 맞춰서 쓴 거더라... 그래서 뭐 쩔 수 없지 않나 싶은 부분도 있긴 함.
하지만 그걸 감안 사유로 삼을지 말지는 각자의 판단 몫인 것 같음. 마지막 단편인 비구름을 따라서는 다른 앤솔로지에 실었던 작품이니 패스해서 이 3작품 리뷰로 김초엽 단편집 리뷰는 끝. 총집편은 따로 없음.
소금물과 주파수는 김초엽이 나름대로 '반전'이란 걸 주려고 쓴 작품이었다.
그러니까 기묘한 돌고래인 '나'가 알고보니 해양 연구소에서 만든 돌고래랑 똑닮은 로봇?! 이라는 반전이었었는데,
문제가 있다면 반전이 중반부에 밝혀지는데, 그 중반부까지 '나 반전 있어요'를 온 몸을 비틀면서 표현한다는 점......
어찌 보면 정석으로 복선을 심고 회수했다...라고 볼 수도 있지만 미스터리로서 체급은 순수하게 바닥을 기고 있다......
심지어 이 반전이 그리 충격적이지도 않은 마당에 반전이 어떤 의미가 있냐고 하면 그건 또 애매해진다.
로봇의 서사인 줄 알았던 게 반전이 밝혀질 즈음엔 그 로봇을 만든 할머니의 손녀 이야기로 넘어가선 조손 서사를 푸는데 올인해버렸기 때문이다.
일종의 이중 반전인 거지. 로봇 돌고래 화자를 1인칭으로 내세워서 오옷? 비인간 화자를 내세우나? 싶었던 것조차 페이크였던 거라고.
그래서 서사가 좀 붕 뜬 느낌이다. 유턴까지는 아닌데 거의 45~90도를 꺾어버리니까 하려던 이야기가 조금 엉성해진 느낌......
(외)할머니-딸-손녀로 이어지는 여성 서사에 남자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었는데 그에 대한 반동인지 연구1원(이름 안 나옴) 정도는 남자로 나왔다.
근데 이렇게 툭 던져줄 바엔 그냥 다 여자로 도배해놓는 게 읽기 더 편했을 텐데 좀 아쉬웠음... 의식하게 되잖아. 디폴트값을 지키라고.
대충 환경을 지키자~쯤으로 받아들여도 될 듯.
고요와 소란은 사물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리기 시작했다가 끊긴 걸 두고 펼쳐지는 추론의 장이라고 해야 할지......
진동새와 손편지처럼 일종의 아이디어 전개 위주인 단편인데, 그 아이디어 전개를 사실상 최후미에 배치하고 그걸 위한 빌드업을 후반부까지 내내 쌓는 단편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유신론(어리석은 대다수) vs 무신론(명철하지만 소수) 구도를 '쇼가나이나~' 태도로 제시하는 게 꼴받지만 뭐 그러려니 해야지.
장편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단점인 '현상에 대한 묘사를 나중에 서술'이 두드러지는 작품이었다.
사물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 난 처음에 사물이 진짜로 떠들게 되나 싶었더니 그건 아니고 그냥 사물이 내는 소리를 말하는 거였다.
그걸 작품 중반이 넘어가고 나서야 겨우겨우 알게 됨.
아니 좀...... 장편에서 이러는 건 그래도 후반부 분량이 넉넉하니까 적당히 참고 넘어가주는데(물론 어이없긴 함), 단편에서도 이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심지어 그 '목소리'를 듣게끔 유도한 배후에 대한 추론도...... '그냥 있어보이는 과학 용어를 때려박으면 SF겠지?' 같은 느낌이 들어서 상당히 별로였다.
와이더닛에 대한 추론은 그럴싸해서 나쁘지 않다 싶었는데, 하우더닛에 대한 추론은 엉망진창이었다.
이건 진짜 어떻게 수습할지 몰라서 적당한 용어 때려박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
그래서 이건 솔직히 소금물과 주파수보다 더 안 좋았음. 소금물과 주파수는 그냥 엉성해서 그렇지 미스터리 플롯 자체는 착실히 따라가는데...
이건 SF인 척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렸음...... 차라리 비구름을 따라서처럼 SF이길 포기하고 판타지처럼 쓰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지.
달고 미지근한 슬픔은 양자 컴퓨팅 시뮬레이션 세계로 이주한 신세대 인간들의 이야기임.
통 속의 뇌에서 현존감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걸 탐구하는 내용인데...... 그 결론이 결국,
"큐비트 신체에 대한 이해와 그걸 효율적으로 다루고 설명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로 끝난다.
큐비트 신체에 대한 이해가 어떤 것인지, 그 도구는 어떤 것인지 일언반구도 없음.
진짜로 이 결론 하나 내려고 60페이지의 빌드업을 쌓는데...... 굳이?
김초엽의 상상력은 고작 이런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새롭지는 않은' 말 한 마디 내려는 수준에서 끝나는 건가?
하지만 이런 건 이미 이전의 단편들에서도 충분히 나온 얘기의 반복이다.
김초엽은 '다른 기준'을 제시할 수는 있는데, '그 기준이 보편화된 삶'에 대해선 놀라우리만치 다루지 않는다.
그나마 수브다니의 여름 휴가가 그걸 파편적으로 다루지만, 그마저 그 삶에서 벗어난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상당히 파편적이고 피상적이다.
이 작품에서도 나름대로 '몰두의 규칙'이라느니, 현존감을 잃은 사람들이 집단 자살을 했다느니 고찰을 선보이지만,
그 결론이 결국 작품 속에서 나온 '2025년 현재와 크게 다를 게 없는 삶'을 그려낸단 점에선 결국 새로운 상상력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그걸 뛰어넘는 자기만의 의견, 자기만의 상상력, 과감한 개진이 있었으면 한다.
그게 없는 '안전한 결론'만 내는 소설은...... 솔직히 말해서 재미가 없음. 흥미롭지도 않고.
뭐, 김초엽 감성이 맞는 사람들은 이런 거에 불만을 가질 리 없겠고, 오히려 토론 주제로 삼으며 자기들끼리 즐겁게 상상할지 모를 일이다.
이 작품에서 제일 신경 쓴 부분이 큐비트 설명하는 비유 파트이지 않을까......
결국 4년 전과 비교해서 김초엽은 문장이나 장르(SF 한정)로서나 숙달되고 발전한 건 맞다.
근데 사상이나 내용적인 측면에선 4년 전과 다를 게 없음.
그러니 김초엽을 즐겁게 읽었었다면 이 작품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고,
김초엽 감성이 안 맞았다면 그 반대일 것이다.
적어도 김초엽 입문으로는 우빛갈보단 이게 더 나음. 우빛갈은 폐급 단편이 껴 있었는데, 이번엔 폐급은 없었으니까.
4년 동안의 발전이 이 정도니까 이제 36년 뒤면 한국SF의 종말이 빠를지 모른다는 납븐말은ㄴㄴㄴㄴ 자랑스러운 K-SF의 거장다운 실력을 갖추지 않았을까?
나는 이로써 단편은 우빛갈-양면조개, 장편은 지구 끝의 온실-파견자들로 김초엽의 발전상을 다 본 셈인데,
진짜로 더 사서 볼 일 없을 듯함.
갑자기 김초엽이 역작을 써내서 K-SF의 두 번째 부흥기를 이끄는 게 아닌 한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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