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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소설 속의 배경 뿐만 아니라 소설의 형식은 물론 주인공들의 말투나 행동들까지 달라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적과 흑》은 1830년 출판된 소설로 이전에 읽은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에 비하면 30여 년 정도 뒤인 소설이다. 두 소설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에 비해 그 표현 양식의 차이는 문화 조류의 변동이라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소설 첫 장의 도시 정경 묘사에서부터 우리가 새로운 땅으로 건너온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소설들은 하나의 명확한 시대, 확고한 지역이라는 현실에 발이 묶이게 되었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겹겹이 쌓인 묘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그들에게는 오랜 전통과 선명한 과거가 생기게 되었고 우리의 눈에 보이는 옷을 입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외모를 갖게 되었다. 마치 역사 속 인물처럼, 이들에게는 각자의 세세한 설정이 부여된다.

그들이 생활하는 장소는 언제나 유럽에 확고히 존재하는 어느 곳이다(설령 존재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이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곳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들은 지면에 달라붙은 장소의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소설사가 써내려간 소설은 이제 독자의 눈높이와 비슷한 위치로 내려왔다.

물론 스탕달이 이전 소설들의 형식을 완전히 벗어던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작가는 종종 끼어들기를 시전하며 상황에 대한 논평은 물론 독자에게 전개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또한 전개에서 우연적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지만 이는 그저 소설 예술의 운명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아무튼 소설 중간에 등장하는 이러한 모습은 18세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소설사의 연속성을 드러낸다.



돈키호테는 드넓게 펼쳐진 대지를 앞에 두고 자유로운 여행을 떠났다. 자크와 그의 주인 또한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모험을 하였다. 스탕달의 소설에서는 인물의 삶이 더 이상 모험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확고해진 시간과 공간에 따라 인물의 주위에는 울타리가 쳐지게 되었다. 인물을 둘러싼 울타리는 그 크기가 조절될 수는 있으나 존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인물의 삶을 제한하는 울타리는 한 인간에게 그의 인지 범위에서 바깥이 존재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쥘리앵은 평범하고 자그마하던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 장소를 옮기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때마다 넓어진 울타리와 울타리 너머 숨어있는 존재 들을 깨닫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존재인 것은 아니다. 이렇듯 소설에서는 언제나 깨달음의 연속이다.

스탕달에게 인물의 내면은 더 이상 비밀스러운 장소가 아니게 되었다. 리처드슨으로부터 유래하는 심리 묘사라는 기법은 더 구체화되고 자연스럽게 소설에 녹아들었다. 인물의 심리는 화자를 통해 마치 겉으로 드러나는 대사처럼 우리에게 들린다. 내면의 목소리는 겉으로 울리는 목소리와 아무 차이가 없고 단지 그걸 들을 수 있는 대상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소설 속에서 내면과 외면은 충돌한다. 겉으로 드러낸 상냥한 모습과는 다르게 내면은 칼을 갈고 있는가 하면 억지로 사납게 행동하는 사람의 심리는 그러한 상황에 슬퍼하기도 한다. 내면과 행동의 차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상황 만으로 파악하는 행위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타인의 내면을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추측과 가정을 하는가? 소설 속 상황도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을 바라보는 방식은 자신의 생각에 기반을 둔 추측 뿐이다. 그렇게 소설에서는 추측과 오해가 겹쳐나가고 이는 인물들의 관계를 형성한다.



소설의 인물에게 행동의 양식을 제공하는 가장 원초적인 내면적 요소는 감정이다. 물론 흔히 감정과 연관되는 즉흥적이라는 말처럼 소설의 인물들이 고양이 마냥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생각하고 쌓아올린 촘촘한 사고의 밑바탕에는 그들의 행동을 조종하는 감정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쥘리앵이 그토록 냉철하게 행동하며 철저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 행동력은 상류 사회에 대한 열등감과 반감이다. 사고에 앞선 감정이 그를 이끈다.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에 따른 행동들은 심화된다.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성적이라고 인정받기까지한 주인공의 삶을 뒤흔들 마지막 사건이 감정에 의한 즉흥적 태도라는 점은 아니러니하다.



바야흐로 19세기이다. 인간의 지성이 쌓아올린 수많은 학문들이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폭발하기 이전의 시대이자 18세기의 마지막 유산들이 희미한 의미를 갖춘 끝자락의 시대이다. 인류사를 조망할 때 가장 이성으로 가득하고 평가할 수 있는 그런 시대를 두고 스탕달은 감정 과잉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가 그려낸 인간은 역사서 속 인간과는 다르게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에 휘둘리기 일쑤인 어린아이와도 같다. 나에게는 이런 점이 인간의 가장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다가온다. 당장 오늘날만 봐도 감정에 휘둘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우리들 아닌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스탕달은 인간의 삶을 현실에 고정시키려 한 최초의 소설가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가 쓴《적과 흑》은 지성의 공에 가려진 은밀한 움직임을 포착하려한 , 다시말해 학문에게 결여된 인간 존재 이면의 요소를 폭로하는 뛰어난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