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을거다.

하루키는 분명 철인과도 같은 달리기와 매일 기계처럼 하는 글쓰기 루틴으로 유명하고,
그것이 그의 소설을 만들었다고 다들 알고 있다.
장인 정신의 요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하루키를 예술가로서 망친건 아이러니하게도 달리기 루틴과 글쓰기 루틴이다.
오히려 그가 본격적으로 달리기와 루틴을 시작하기전 그의 소설은 나름 쓸만했다.


하루키가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썼을 때, 하루키에게는 하루키가 재즈바에서 들었던 수많은 음악과 수많은 손님들과의 대화들이 그의 작품의 재료들로서 존재하였다.

그리고 그는 여행을 좋아했다. 여행에서 영감을 얻고, 그리스의 풍경을 즐기며 그 경치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뒤 글을 쓰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글에는 아름다움이, 새로움이, 예술이 담겨있었다.
하루키가 매 작품마다 섹스 이야기를 도배하는 것은, 부인과의 성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 아닌 나름대로 찐따시절, 미국시절에 어찌어찌 경험한,
많지도 않지만 그래도 경험해본 다른 여자와의 섹스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루키가 책을 내면 "또 섹스 이야기야 ? 또 사정했어?"
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그의 레파토리는 완전히 복사+붙여넣기 수준으로 굳혀졌다.

그렇다 그는 망가진 것이다. 그의 영감은 고갈되었다.


하루키가 예술가로서,문학가로서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하루키가 어느 순간 사람을 만나는 것을 중단하고, 부인 이외의 여자와 스릴있는 섹스라던지 인생에서의 위험을 감수한 모험들을 전부 중단하였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인생에서 더이상 창의성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도 밝힌 바가 있다. 자신은 쌓아가는 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지 천재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스스로 천재가 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바로 달리기루틴으로부터.


매일 행하는 달리기, 영감이 없는데도 그대로 써내려가는 글쓰기 루틴, 사람도 만나지 않고 여행도 중단하고 부인이랑만 있으며 아이도 낳지 않고 단조로운 생활에 고립된 하루키.

결국 그의 모든 소재는 고갈되었으며, 마지막으로 나온 장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경우는 아예 아주 옛날에 쓰다가 중단한 소설을 가지고 재탕을 하고 혹평을 듣게 되었다.

하루키 소설 비판 요소중 하나가, 섹스얘기 패턴이 항상 같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루키 본인이 섹스 경험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더 많은 섹스를 했어야 했다.
하루키는 유명작가가 되어서도 더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교류를 했어야 했다.
하루키는 계속 똑같이 뛰기만 하는 달리기를 할게 아니라
런닝크루에 가입해서 젋은 여자한테 껄떡도 거려보고 자신의 소설처럼 사정을 했어야 했다.

하루키는 한국에와서 삼겹살과 김치도 먹어보고 한강에서 라면을 먹으며 새로운 영감을 얻었어야 했다.

자신의 소설의 팬이라고 접근하는 한 여성과 뜨거운 하룻밤을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키는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는 똑같이 같은 시간에 글을 쓰고, 글을 쓰고나면 운동화 끈을 묶고, 그저 달린다.

그렇다 하루키는 글쓰는 기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기계가 쓰는 글들은 더이상 영감을 주지 못한다.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위해 칼로 자신의 배를 가를 때,
하루키는 운동화 끈을 묶고 그저 달린다.

그것이 천재와 범부의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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