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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카포티의 최고의 논픽션 소설로 상당한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만든 작품이다.
물론 그 이전에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작품이 있긴 하지만 논픽션이라는 것에 대하여 볼 때 티파니보다는 더 많은 논란이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005여년에는 트루먼 카포티의 '진실성'라는 측면에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소설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피해자인 클러터 씨의 가족에 대한 묘사는 '그 어느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만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다.
가장인 클러터씨는 자수성가하여 큰 농장을 운영하며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자기 영역을 넘어서면서까지
남을 비난하지 않는 사람이다.
결혼을 하거나 약혼하여 타지로 가있는 두 딸이 있으며 같이 살고 있는 아들과 딸 그리고 약간의 정신쇠약 증세를 앓고 있는 부인이
있으며 모두들 클리터의 지도에 의해 훌륭하고 존중받으며 살고있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캔자스 주 홀컴마을 사람들 모두 그들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했다. 살인자들 중 하나인 페리 스미스도 1시간 동안밖에 알지 못했지만 그들을 맘에 들어했다고 진술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난 느낌은 안타까움과 슬픔 그리고 공허함 뿐이다.
어느 한국 작가가 tv에서 이 책을 여름에 읽길 추천한다고 하면서 짐짓 무서운 책인 듯 설명했지만 개인적으로 너무나 웃긴 소리다.
물론 중후반의 범인의 진술 과정이 꽤 섬찟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이다. 이 책의 모든 부분은 책에서 언급하는 '인디언 썸머'의 날씨처럼
높아진 하늘 아래 가을 해가 지는 서글픔을 담고 있다. 아름답고 싱그러운 존재들이 채워나간 동화책 부분이 한순간에 찢겨나간 것처럼
찢겨진 인생 속에 몸부림치다 끝내 지쳐버린 휴식처럼 가슴아픔만이 가득했다.
카포티가 정말 철저하게 사실만을 따라서 저술했다면
그 가족들이 그렇게 인간적으로 아름다운 존재였다면
왜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야 했었나 하는 운명의 잔인함을 책을 읽어내리는 내내 생각했다.
클리터 가족은 더욱이 기독교를 믿고 있는 (더 자세히는 감리교)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던 신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그렇게 죽었다.
위험한 사상으로 생각 될 순 있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누군가에게 나쁜일이 생긴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라고 생각 할 때가 있다.
'업'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 사상으로 세상에 만일 시스템이 있다면 아니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면 그런식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단순히 눈에는 눈 식의 시스템이 아닌 철저하고 계산된 '처벌 시스템'이 있어서
처벌받는 이가 자신이 처벌받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그렇게 돌아가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누군가의 가슴아픈 불행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취급될지도 모르는 이 잔인한 생각이
때론 옳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처벌받을 '업'을 쌓기도 어려운 시간을 가진 나이어린 어린아이가 죽고
순수한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소녀들이 그 꿈을 펼치지도 못하고 접어버리게 만드는
사건들이 비일비재로 일어나는 세상에서 저런 사상을 유지하긴 힘들다.
말 그대로 누군가에 불행이 올 때는 그 어떠한 이론도 법칙이나 진리도 없는 것처럼 다가온다.
그 다가옴이 너무나 잔인해서 세상이 잘못된 건 아닌지 의심도 해본다. 이 책의 제목처럼
냉혹하다.
두 살인자에 대해선 동정심이 별로 가진 않았다.
특히 페리 스미스는 인생 자체가 너무나도 가혹하게 불행했지만 살인행위가 정당화 되지 않음을
그 누구라도 알고 있다.
어느 누구도 나름대로의 불행 안에서 버틴다.
페리는 단지 버티고 버티다가 자신의 계절을 버티지 못하고 지쳐버렸을 뿐이다.
포기와 같은 휴식 속에서 다른 이보다 더 많은 걸 놓아버린 건지도 모른다.
죄가 명확하다면
가해자는 가해자일 뿐이다.
그 어떤 사연도 변명이 될 수 없다. 변명이 되는 건 그 변명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뿐이다.
클러터 가족 중 낸시의 죽음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죽은 후의 아픔도 진하게 흘러들어온다.
그녀는 마을 사람 그 누구에게 사랑받고 있었고 그만큼의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었으며
싱싱한 미래를 품고 있는 아이었다.
왜 이렇게 죽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우리나라나 다른세계에서 낸시같은 아이들이 죽어나는 것에
'왜'라는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는지 안타까웠다.
믿고 있지 않는 신에게 묻고싶고 답을 받고 싶다.
꽃이 가득 들어차 있는 작은 방 안에 네 개의 관이 꽉 들어차 있었다. 장례식 때는 관 뚜껑을 닫을 예정이었다.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희생자들의 겉모습을 세삼하게 가다듬어놓긴 했지만, 그 효과는 오히려 동요를 일으킬 만
했기 때문이다. 낸시는 빨간 앵둣빛 벨벳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그 남동생은 밝은 격자무늬 셔츠를 입었다.
(중략) 수전은 즉시 물러섰다. "나는 밖에 나가서 차에서 기다릴게." 수전은 회상했다. "길 건너편에서 어떤 아저씨가
갈퀴로 낙엽을 긁어모으고 있었어요. 나는 계속 그 아저씨를 쳐다봤죠. 눈을 감고 싶지 않았거든요. 눈을 감았다가는
기절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는 그 아저씨가 갈퀴로 낙엽을 긁어모으고 태우는 것을 쳐다봤어요.
쳐다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 사람을 본 건 아니에요. 나한테 보이는 거라곤 그 드레스뿐이었어요. 나는 그 드레스를
아주 잘 알고 있었거든요. 낸시가 천을 고르는 걸 도와줬어요. 디자인도 낸시가 직접했고, 바느질도 직접 했어요. 처음
그 옷을 입었을 때 낸시가 얼마나 들떠 있었는지도 기억나요. 어떤 파티에서였죠. 나한테 보이는 거라고는 낸시의 빨간
벨벳 드레스뿐이었어요. 그리고 그 옷을 입은 낸시도요. 낸시가 춤을 추는 모습이요."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가해자에게 면죄부주는게 불편했는데 흥미있어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