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읽은 소감.


하루키의 <1Q84>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에 대한 소설이다. 


하루키는 옴진리교 사건에 대한 두 편의 논픽션 <언더그라운드 1, 2>를 집필하면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 거기에서 그는 '인간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라고 했고, '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오랜 구상 끝에 <1Q84>를 완성했다.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열풍을 일으켰다. 매년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에 오르는 대작가의 작품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사실 그렇게 쉽게 이해가 되는 소설은 아니다. 표면에 흐르는 이야기를 따라갈 수는 있지만, 그 아래로 흐르는 주제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은 소설이다. 


<언더그라운드 1, 2>를 읽고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하루키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내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리틀 피플이 공기 중에서 실을 뽑아내어 '공기 번데기'를 만들어 내듯이. 


삶은 '수도고속도로'의 위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삶은 도로의 아랫면에서도 진행된다. 위가 논픽션의 세계라면 아래는 픽션의 세계이다. 인간은 과연 논픽션의 세계에서만 살고 있는가? 


아오마메가 수도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내려가듯이 삶의 진행 평면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뒤틀어 보면 누구나 비현실의 세계, 픽션의 세계, 이야기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 한번 이야기의 세계로 진입한 후에는 다시 아오마메가 했던 것처럼 비상계단의 위로 거슬러 올라와, 뫼비우스의 띠의 다른 면으로 올라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다시 모호해진다. 어떤 것이 진짜 현실의 세계였는지, 허구의 세계였는지는 알 수도 없고,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지도 않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지금 나아가는 시간이 어떤 공간에서 진행되는 것이든 그 안에서 이야기를 지어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고, 그것이 의미를 갖는다. 

(평행세계, 메타소설)




<1q84>는 스타벅스에서 인증샷 찍는 패션템 용도로 쓰이기에는 좀 어려운 소설이었다. 하지만 아주 많은 분석과 연구의 '꺼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평론가나 연구자, 교수들이 좋아할만한 소설이다. 책을 읽고 관련된 <1q84>와 관련된 논문을 검색해 보았다. 소설이 나온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이 소설 하나만을 가지고 상당히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연구의 꺼리가 많다는 건 동시에 읽는 사람이 저마다 아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위에서 책 읽고 소감으로 뻘 소리 했다고 공감 안된다고 비난하지 말기~) 심지어 이 소설에 대한 비평서가 나올 정도로 소설의 안팎으로 읽어낸 꺼리가 많다는 점에서 대단하다 할 수 있다. <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책이 일본에서 출간되었고, 심지어 한국에도 번역되어 나왔다. 단순히 소설이 많이 팔렸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책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 밖에 소설에는 상당히 많은 장치들이 들어가 있는데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골라내는 건 전문 연구자들이 이미 많이 하고 있을테고, 단편적으로 내가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들은...


1. 신화적 구성

소설은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3권에서는 이시카와의 장이 등장한다. 마지막에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장이 합쳐진다. 여기에 대해서는 레비스트로스의 신화분석의 입장에서 박규태 교수가 쓴 논문이 있다. 


2. 비유와 상징

아오마메는 '완두콩'이다. 靑豆. 그녀는 육체와 물질의 존재이다. 신체의 근육을 이용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한다. 

덴고는 한자로 天吾라고 쓴다. 하늘천에 나오. 그는 수학강사이면서 소설을 쓴다. 숫자, 논리, 언어, 추상의 세계이다. 

아주 작고 구체적인 물질인 완두콩과 아주 거대하고 추상적인 존재인 하늘. 개인과 시스템(국가, 종교)

두 개의 달이 뜬다. 둥근 두 개의 달. 후카에리에게는 유독 둥글고 봉긋한 두 개의 젖가슴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아오마메에게는 상실되어 있다.

수도고속도로는 뫼비우스의 띠와 비슷하다. 윗면과 아랫면이 있(었)다. 아오마메는 윗면(현실, 1984년, 하나의 달)에서 아랫면(비현실, 이야기의 세계, 1Q84년, 두 개의 달)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다. 두 개의 세계는 어떤 것이 진짜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뫼비우스의 띠에서 어떤 것이 바깥면이고 안쪽면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소설에서 아오마메는 수도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빙글빙글 돌아내려간다. 

NHK는 국가제, 선구의 리더는 천황의 모습과 비슷하다. 국가와 종교는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요일 아침(주일 아침 예배일) 덴고의 아버지인 NHK 수금원이 수금을 다니는 모습과 아오마메의 어머니(어머니였나?)가 증인회 선교를 하러다니는 모습. 

리틀 피플의 존재는 시스템의 유지에 봉사하는 국민, 신민과 닮았다. 리틀 피플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라고 했다. 행위 자체가 선도 악도 아니지만, 행위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 시스템을 유지시킨다. 선악을 판단하는 몫은 리틀 피플의 임무가 아니다. 전체주의에 봉사했던 일본인은 결과적으로 악을 행한 셈이 되지만 스스로 그 행위에 대한 선악을 판단한 것은 아니다. 일본인의 선악관은 서구의 선악 이분법의 논리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련하여서는 박규태 교수의 <일본정신의 풍경> 참고)

그 밖에 아주 많았는데 지금은 이것만 생각난다..


3.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소설 안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야기 안에 다시 이야기가 들어가는 구조이다. 

안톤 체호프의 '사할린 섬'이 나오고 그 섬의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양이 마을 이야기도 나온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살짝 바꾼 것도 나온다. (이건 아예 친절하게 그렇게 했다고 설명도 해준다)

그 밖에 아주 많은 작품들이 소설 안에 등장한다. 일일이 다 쓰지는 못하겠다.


4. <언더그라운드>로부터

사실 나는 <언더그라운드 1,2>를 먼저 읽고 이어서 <1q84>를 읽었다. 언더그라운드 1, 2의 프롤로그, 에필로그, 대담 등에 <1q84>에 대한 구상(에 대한 힌트)에 대한 언급이 있다. 

'사람은 이야기 속에 산다'라는 것과 '악이란 무엇인가'가 <1q84>를 구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고, 나도 그걸 떠올리며 읽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느낀 점은 단지 이 두가지로만은 압축할 수 없는 하루키의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내가 하루키를 많이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고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