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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다
제목만 보고 '사이버리아드' 처럼 우스꽝스러운 아이러니로 가득찬 블랙 코미디를 연상했지만
막상 펴보니, 처음부터 '솔라리스' 처럼 시리어스, 다크, 호러, 스릴러 등의 수식어가 어울리는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스포를 피해 초반 전개를 대충 적어보자면
레기스3 이라는 변두리 행성이 있다
지적 생명체도 없고 특별한 자원도 없는 별 쓸모 없는 이 행성에, 지구 과학력의 총체를 담은 우주선, 콘도르 호가 방문했다
갈 이유도 없는데 왜 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강력한 우주선과 거기 탄 우수한 인원들이 모두 행방불명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콘도르 호와 같은 사양인 무적호가 레기스3을 방문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고 수준의 경계를 유지하며 조사를 시작한 무적호의 인원들은
거의 깨끗한 상태로 방치된 콘도르 호와, 끔찍하고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죽어있는 콘도르 호의 선원들을 발견한다
콘도르 호를 수습하고 조사를 이어나가자
이내 요상한 건축물 같은 무언가를 행성의 지표에서 발견하고 그 쪽으로 가게 되는데
그것은 덩굴처럼 엮인 식물과 비슷하게 생긴 금속질의 무언가였고, 그와 동시에
막을 수도 없고 정체도 알 수 없는 검은 구름이 그들에게 다가온다...
아래로는 필연적으로 스포가 있다. 최대한 피하려고 했지만.
'솔라리스' 에서 렘이 다룬 것은
인간은 똑바로 인지할 수 없는 것과 마주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라고 할 수 있겠다
솔라리스라는 별과, 그 별이 만들어낸 물리적 환영이 그 '인지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분명히 눈 앞에 있고, 그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데도, 무엇인지 규정할 수 없고, 또 통제할 수 없다는 불편함, 공포... 그런 감정들은 나아가 인간 존재를 뒤흔들기 까지 한다
그런 감정과 그 감정의 작용은 제대로 묘사됐고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인간들이 보이는 모습은 조금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껴졌다
일단 작중 전문가들이 세운 가설이 너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부분이 좀 작위적이라고 느껴졌다
게다가 작중의 인물들이 세운 가설이 맞다면, 얼른 도망치는 게 맞다
선장과 과학자 일단은 굉장히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실상은 너무나 비이성적인 모습으로 일관한다
주인공격인 인물 로한은 그들에게 휘둘리고 검은 구름에 휘말려 자신의 의지랄 것이 없이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하나의 아이러니가 만들어진다
무적호는 한낱 개인이 거스를 수 없을만큼 거대한 장벽 혹은 하나의 세계 자체로 그려진다
선장과 과학자 일동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무적호가 상징하는 인간 세계의 규칙만을 따른다
즉 인본주의다. 인간이 모든 사상의 중심에 있으며 그것을 따르지 않는 대상은 배제해도 좋다는 뜻의 인본주의 말이다
그 거대한 규칙 때문에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는 가장 올바른 선택을 작품 끝까지도 자의로 선택하지 못한다
구름은 인본주의를 무화하는 자연의 법칙이다, 말하자면 자연의 간지 라고도 할 수 있으려나
그렇게 봤을 때 로한은 무자비한 자연의 법칙과 그만큼 무자비한 인간 세계의 법칙 사이에 끼어 고통받는 젊은 개인을 뜻한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젊다는 건 나이만으로도 그렇지만, 인간 세계의 법칙에 무지성으로 동조하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구름에 당한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보면 작위적이고 비이성적인 묘사들은 모두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더라도 역시... '솔라리스' 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솔라리스는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무적호' 도 나쁘지는 않지만... 초중반의 쫄깃한 분위기에 비해 후반부가 조금은 아쉬웠다고 해야겠다
뭐 어쨌든 스타니스와프 렘은 이번에도 훌륭했다
저번에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를 반쯤 읽다가 어지러워서 때려쳤는데 나중에 꼭 마저 읽어봐야겠다
개추와바박
무적호는 안봤는데 본문에 쓰신것처럼 솔라리스는 자연현상을 인간의 관점에서, 개인의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하면서 생기는 비극이 ㄹㅇ 재밌는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