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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내가 아는 나는 누구인가>, 윤순식.원당희 옮김, (주)교학도서, 2022, 457면.)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두 번째 논점은 롤스가 주장하듯이 정의가 사회에서 실제로 지배적인 요인이냐 하는 문제이다. 원시상태의 으뜸이 되는 자리는 자유가 차지하고, 자유는 제2위의 자리에 있는 정의에 의해 제한되는데, 정의는 기회균등과 사회적 평등에 의해서 규정되고, 제3의 순위에 효율성과 복지가 자리한다. 정의를 높은 자리에 앉혔다는 점에서 롤스는 많은 존경을 받았고 그의 이론도 호감을 얻었다."



독일어 원문은,


(Der zweite Punkt ist, ob es stimmt, dass Gerechtigkeit wie bei Rawls tatsächlich ein so beherrschender Faktor einer Gesellschaft ist. Das Ranking im Urzustand setzt an die erste Stelle die Freiheit. Die Freiheit wird, an zweiter Stelle, eingeschränkt durch die Gerechtigkeit. Die Gerechtigkeit wird bestimmt durch Chancengleichheit und durch den sozialen Ausgleich. Und an dritter Stelle kommen Effektivität und Wohlstand. Der hohe Stellenwert der Gerechtigkeit ehrt Rawls und macht seine Theorie sympathisch.) 

<Precht, Richard David. Wer bin ich – und wenn ja, wie viele?: Eine philosophische Reise. München: Goldmann Verlag, 2007.>



(상기 한국어판에서 '원초적 입장'(Urzustand)을 "원시상태"로 번역한 건 번역 문제니까 넘어가자.)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건,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라는 저자가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능력', 즉, '철학을 하기 위한 기본적 자질'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롤즈의 <정의의 원칙>의 제1원칙은 <양립가능한 최대한의 평등한 자유의 원칙>으로 


애초에 그 원칙 내에 '평등 규범'이 들어가 있는 원칙이다.


걍 달랑 '으뜸이 되는 자리에 자유를 뒀다'라고만 하는 건, 그 자체로 내용적으로 틀린 거다.


최대한 좋게 해석을 해서, 그 말이 "<평등한 자유의 원칙>을 제1원칙으로 뒀다"라는 뜻이라고 해석해준다고 쳐도,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유는 제2위의 자리에 있는 정의에 의해 제한된다(Die Freiheit wird, an zweiter Stelle, eingeschränkt durch die Gerechtigkeit.)라고 하는 부분이다.


자유(Freiheit)가 정의(Gerechtigkeit)에 의해서 제한된다고 했는데


여기서 자유를,


(A) <평등한 자유의 원칙>에 의해 보장되는 구성원들의 평등한 '기본적 자유'로 봐도 문제이고,


(B) <평등한 자유의 원칙> 자체라고 봐도 문제다.


(A) 라면, 그 '기본적 자유'가 정의(justice)에 의해 제한된다는 게 도대체 뭔 소리인지 그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만약, '평등한' 기본적 자유이기 때문에, 정의(Gerechtigkeit)라는 말을 '평등 규범'을 뜻하는 말로 사용한 것이라면,


제1원칙 자체가 '평등한 자유의 원칙'이라는 점도 모르고 있는 거다.


롤즈는 '으뜸이 되는 자리'에 '자유'만 달랑 얹어 놓은 게 아니라, '평등한 자유의 원칙'을 올려놓은 거다.


다시 말해, 첫 번째 자리에 자유를 놓고, 두 번째 자리에 있는 평등으로 제한을 한 게 아니라,


애초에 첫 번째 자리에 <평등한 자유의 원칙>을 둔 거다. 즉, '평등 규범'은 첫 번째 자리에 이미 들어가 있다.


(B) 라면,


애초에 으뜸이 되는 자리에 <평등한 자유의 원칙>을 둔 것 자체가 <정의의 원칙>의 한 부분이요, '정의'(justice)라는 규범에 의해서 정해진 순서인데,


어떻게


이미 정의(justice)에 의해 첫 번째 자리에 두는 게 옳다고 판단하고 으뜸이 되는 자리에 둔 원칙에 대해 "제2위의 자리에 있는 정의에 의해 제한된다"라는 말을 할 수가 있는가?


(정의가 제2위의 자리에 있다는 소리는 또 뭔 소리인가?)


총체적 난국이다.


도저히 해독이 불가능한 헛소리다.


이는


길동이가 서울대학교를 방문해서 여러 단과대학, 도서관, 연구실, 운동장을 둘러본 뒤에


"그런데 대체 '서울대학교'는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는 거랑 비슷한 헛소리다.


여기서 길동이는 단과대학, 도서관 등이 속한 범주와 '서울대학교'라는 범주가 서로 다르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그러한 개별 건물들, 시설들과 같은 종류의 또 다른 건물, 시설이 아니라, 그것들을 몽땅 포함한 전체 체계 자체다.


(이것이 길버트 라일이 <마음의 개념>에서 지적한 범주 오류다.)


프레히트는 <정의의 원칙>을 구성하고 있는 한 원칙인 제1원칙을 정의(justice) 자체와 대립시키면서 범주 오류를 범한 것이다.


이어서 프레히트는


"정의는 기회의 평등과 사회적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 (Die Gerechtigkeit wird bestimmt durch Chancengleichheit und durch den sozialen Ausgleich.)라고 하는데


이것도 외계어다.


정의가 기회의 평등과 사회적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는 게 대체 뭔 소리냐?


<기회 평등의 원칙>은 롤즈의 <정의의 원칙>에서 제1원칙 다음의 우선 순위를 갖는 원칙이다.


즉, 한 사회의 권리와 의무를 '정의롭게' 할당하고, 이득과 부담을 '정의롭게' 분배하는 '정의의 원칙'은,


첫 번째 우선 순위 원칙으로 <평등한 자유의 원칙>, 두 번째 우선 순위 원칙으로 <기회 평등의 원칙>을 두어야 한다고 롤즈는 말한 거다.


왜? 


그렇게 순서를 정하는 게 정의로우니까!


즉, '사회정의'라는 규범에 의해서 그러한 순서가 정해진 거다.


그런데 정의가 도리어 제2원칙에 의해 결정된다니? 이게 뭔 소리니?


정신을 산란하게 하는 이런 글 대신에


철학 여행은 <철학적 분석은 어떻게 하는가> 이 책으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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