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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의 꿈 이후 돌아온 '레트로토피아'
레트로토피아 - 지그문트 바우만
2017년 1월 7일, 향년 91세의 나이로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 곁을 떠났다. 폴란드 태생 유대인으로써 영국으로 이민 가 사회학 교수로 활동하다 퇴임 후, 90년대부터 여러 저작들을 통해 현대성을 탐구하며 현실의 변화를 촉구한 실천적인 지식인었던 그는 '유동하는 현대' 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모든 견고한 것들이 녹아내리는, 마치 액체와 같은 유동하는 현대세계에서는 예측조차 불가능하며 불확실성으로 불거진 불안감만이 지배한다. 견고한 지반이 무너진 우리세계에 바우만은 유동하는 현대라는 개념을 통해 조종을 울려주었디. 이제 그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생각만큼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쉬기에 안심하며 그를 떠나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레트로토피아> 는 바우만 사후의 출간된 유작으로써 그가 마지막에 우리에게 전하려 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레트로토피아' 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레트로' 와 '유토피아' 를 합친 이 단어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약진한 극우정당들 등 점차 과거로 회귀하려고 하는 이 시대의 예사롭지 않은 풍경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 회귀의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바우만은 점차 우리세계가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홉스는 자연적 상태의 인간은 언제나 만인에 대한 만의 투쟁으로 점철되어있고,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 안정감을 얻기 위해 인간의 폭력적인 성향을 억누르며 국가. 곧 '리바이어던' 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모든 견고한 것들이 녹아내리는 '유동하는 현대' 속에서 리바이어던은 구성원들에게 인간의 폭력적인 성향을 억누르고 안정감을 제공하는 역할에 실패하고 도리어 폭력적인 성향을 부추기면서 리바이어던은 점차 분열되어간다.
리바이어던이 해체되면서 사람들은 부족으로, 과거로 눈길을 돌린다. 미래는 견고하게 더 나아진 인류의 청사진을, 과거는 무질서한 혼돈으로 가득 차 있다는 예전의 인식은 이제 정반대로 바뀌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그 자리를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이 지배하자, 사람들은 과거로 눌길을 돌리며 이제 그것을 조작해 질서잡히고 풍요로웠던 과거의 향수를 재현한다. 이렇게 과거에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우리' 와 '그들' 을 구별하기 위해서다. 세계화로 말미암아 등장한 유동하는 '이방인' 들은 우리에게 견고한 지반 상실의 상실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예고하는 것만 같기에 그것을 무서워하며 눈 앞에서 치워버리려 한다. 이방인들을 쫓아내기 위해선 '그들' 과 구별되는 '우라' 의 정체성을 만들어 '그들' 에게 대항해야 한다. 오늘날 다시 등장하고 있는 장벽. 철조망과 같은 구분선들은 스스로가 만들어 낸 '레트로토피아' 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보여준다.
과거의 귀환과 함께 다시 돌아온 불평등, 나르시즘에 빠지는 현대인 등 바우만은 우리와 함께 유동하는 현대세계를 함께 여행하며 같이 고민에 빠질 시간을 준다. 적과 동지를 가르는 구분은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전례없는 전지구적인 세계화는 더 이상 적과 동지를 가르는 구분을 사라지게 했다. 적이 사라진 우리는 마침내 전지구를 동지로 삼아 미래의 '유토피아' 로 전진해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과거로 돌아가 다시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레트로토피아' 로 돌아가게 될까? 해답은 바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오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