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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국과학문학상은 무려 3명의 작가, 3개의 단편, 3개의 에세이밖에 싣지 않았기 때문에 책값이 1만원을 넘어가지 않았고, 그래서 하나하나 리뷰할 것도 없이 단편 3개를 호로록 읽어버렸다. 그래서 한 번에 리뷰한다. 덤으로 난 에세이는 그렇게 큰 관심이 없으므로 간단하게 언급만 하고 넘어갈 예정이다.



카나트(고선우)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뽑은 사실상의 대상작. 사막화가 심해져서 지하수로 '카나트'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해진 시대가 배경이며, 수로를 독점 운영하는 기업 오아시스가 나오는 일종의 포스트 아포칼립스+사이버펑크라고 할 수 있다.


작중 전개는 투 트랙으로 전개가 되며, 첫 번째 트랙은 할아버지가 우물에 빠져 익사한 것부터 나오는 '나'의 시점이고, 두 번째 트랙은 오아시스의 물 배달라이더 '아이작'의 시점이다.


실질적인 주제의식은 두 번째 트랙인 아이작에게 몰빵돼 있다. 오아시스가 장거리 라이더를 위해 물 사용을 줄여주는 사이보그화 시술을 제공하는데, 이로 인해 인간성을 차츰 잃어가고 끝내 회사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되어 어린 시절 추억조차 잊어가는 아이작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황폐화된 지구, 자원을 독점하는 기업, 잃어가는 인간성, 다 좋다. 좋은데......


뭐랄까, 따지자면 큰 단점은 아닌데 신경 쓰이는 단점이 있다. 오아시스의 사이보그 기술에 관한 것이다.


작중에서 '사이보그화를 통해 물 소비량을 줄여 장기간 배달도 가능하다'라고 하는데, 진짜로 이걸로 설명이 끝난다. 심지어 아이작이 사이보그화를 거쳐 기억을 잃는 것도 사이보그화의 부작용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버린다.(정확히는 인과관계 자체는 나름대로 엮어서 설명하지만 그게 그래서 왜 물이랑 엮여야 하는 건지는 의문이 남는다)


물을 쓰지 않으면 다른 걸 쓴다는 얘기인데, 그 다른 연료에 대한 건 일언반구도 없다. 기계 신체는 공짜로 돌아가나? 석유나 배터리는 넘쳐나서 괜찮은 건가? 이게 좀 많이 신경 쓰였다. 이런 걸 신경 쓰지 않으면야 앞서 언급했던 대로 자원 고갈과 인간성 상실을 적절한 서사와 나쁘지 않은 배경 묘사를 통한 분위기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사이버펑크를 단편 하나에 욱여넣는 과정과 투 트랙 전개가 불필요하게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이건 각자 판단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쁘지 않은 단편이었다. 만장일치 할 정도인지는 모르겠음.



옛 동쪽 물가에(이연파)


고전문학 전공을 살린 타임리프물이다. 내용은 26세기 학자가 신라 시대로 가서 불간섭 원칙을 지켜가며 조사 활동을 이어가던 중, 23세기 인공위성이 왕궁으로 낙하하는 걸 막으려고 역사에 재치 있게 개입해 역사에는 '노래를 불러 혜성을 물리쳤다'고 남게 되는 이야기다.


뭐,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고, 수작 라인에 든다. 본인 전공을 잘 살린 데다가 마지막 고전의 인용은 적절한 쾌감까지 선사해준다. 적절한 수상작이라고 할 만은 한데.......


진짜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면, 40년 전에 나왔으면 정말 혁신적인 작품이었겠지만, 지금에 와선 40년 전 작품의 하위호환 현지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리뷰에 코니 윌리스의 화재 감시원을 언급한 바가 있어서, 어느 정도로 유사한 지 확인해보려고 이 작품을 읽자마자 코니 윌리스의 화재 감시원을 찾아 정독했다.


읽고 나니까...... 아... 정말 쉽지 않다. 진짜 농담 안 하고 화재 감시원이 이 작품의 상위호환이다. 이 작품에서 다뤄지는 요소 중 화재 감시원에 나오지 않는 건 딱 하나, 한국이란 배경 뿐이다. 그마저 분량은 화재 감시원의 절반이라 화재 감시원에서 적절한 반전으로 넣어둔 스릴과 서사는 이 작품에 없고, '미래의 과거 개입 윤리'에 대해선 화재 감시원이나 옛 동쪽 물가에나 큰 차이가 없다.(오히려 빌드업 측면에선 분량을 적절히 할애하고 있는 화재 감시원이 훨씬 몰입하고 공감하긴 더 좋았다)


물론 고전과 신인 작가의 작품을 두고 비교하는 게 옳은 처사냐! 라고 반문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는 입장이긴 하다. 하지만 읽는 독자 입장에서 이 작품이 화재 감시원의 완벽한 하위호환이란 걸 알아버린 이상...... 돌이킬 수 없어졌다. 잘 썼고, 수상할 만하긴 한데(어디까지나 K-SF 규격에서), 40년 전 작품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작품이 수상되어 칭찬받는 모습을 보면 뭔가... 뭔가임......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비교란 걸 알면서도 느낄 수밖에 없는 뭔가가 있다. 굳이 따지자면 문제를 해결하게 된 경위에서 화재 감시원은 '오인'이라는 재치를 넣었고, 옛 동쪽 물가에는 '고사의 당사자'라는 재치를 넣었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고사의 인용이란 측면에서, 한국을 배경으로 했단 점에서 현지화 단편은 분명 메리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야 이런 게 그렇게까지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는 요소지만(화재 감시원의 런던 대공습이나 옛 동쪽 물가에의 혜성 고사나 내겐 또이또이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에겐 전혀 다를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적어도 이 작품을 좋게 읽었다면 코니 윌리스의 화재 감시원 역시 읽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이걸 알고 썼냐 모르고 썼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40년도 된 작품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둘째 치고 이 작품이 다루는 주제의식은 시간 여행이란 소재에서 누구나 충분히 뽑아낼 수 있는 질문과 답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심사위원이 언급하지 않는 건 좀......


여러모로 작품보단 작품 외적인 문제로 작품의 인식이 뒤바뀌어버린 케이스라 안타깝단 감상도 있다. 역사와 SF를 섞는다는 점에선 김필산의 엔트로피아도 떠올랐고.


물론 쓰는 걸 보면 김필산 같은 방식으로 고전과 SF를 섞진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창조 엔진(최장욱)


좋게 말하면 아이디어와 재치가 뛰어나단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작문 레벨이 높지 않은 편이다. 문장을 못 쓴다는 개념보단 구성과 전개가 상당히 아쉬웠다.


창조 엔진은 APC 버그를 이용해 모드를 개발하던 한 개백수를 주목한 회사 보안 직원이 그를 이용해 정식 버전 출시까지 달리고 성공하다가 몰락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근데 창조 엔진이 멀티플 가능한 우주판 문명이고 민덴 엔진 개발이 모딩이라는 걸 눈치채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왜냐면 설명을 안 하거든......


작중 전개는 주인공 '브란'의 회고로 일관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브란이 그나마 재치 있게 풀어내서 가독성이 좋았다. 가독성마저 나빴다면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정말 힘겹게 읽었을지도 모른다.


게임 개발과 관련해, 게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창조 엔진의 서사가 상당히 익숙할 것이다.(특히 스팀을 좋아한다면 더더욱)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생략되어버린 설명 덕에 열심히 머리 굴려가며 파악하면 이게 게임과 모드 이야기라는 걸 모르고도 즐길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음... 역시 초중반의 서사 파악이 좀 진입장벽이긴 하다.


APC 버그가 어떻게 모드 개발로 이어지는지, 그 모드가 어떻게 정식 버전으로 출시되고 성공가도를 달렸는지, 그것의 몰락이 어떻게 예고되고 그대로 몰락하는지까지.


실베에 가끔 올라오는 '싱글벙글 한 게임 모드 개발의 역사.txt'로 올라와도 손색이 없는 재미난 글이다. 거듭 말하지만 익숙하면 재미있게 읽지만, 익숙하지 않으면 초중반이 고비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러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글이 좋았다. 물론 여기에 필력과 센스까지 받쳐주면 그게 김필산이고 조서월이고 최우준이겠지...


하지만 회고로 일관된 서술이나 설명을 안 해서 생긴 진입장벽은 충분히 신경 쓰면 고칠 수 있는 문제다. 적어도 어디서 보고 또 본 주제의식, 사람 생각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드는 아이디어들 보단 훨씬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최장욱의 에세이가 이번 한과상에 실린 모든 글 중에서 제일 재미있다. 햄버거를 가지고 음모론을 펼치는 이야기인데, 제법 그럴싸하게 전개한단 점에서 최장욱 작가가 앞으로 성장만 한다면 꿀잼 SF를 써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총평


이번 한과상은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3명 밖에 뽑지 않았고, 응모도 1편 이상이 아니라 2편 이상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신인과 기성을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뽑힌 3명은 안다무, 기존 K-SF의 경향성과 대조할 때, 그렇게까지 중심에 있는 편이 아니다. 매년 한 작품 이상 K-SF의 정석을 뽑았다는 걸 생각하면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단점은 3명 밖에 뽑지 않는 관계로 서사와 재미 TO가 아예 사라져버렸다는 것. 최장욱이 그 TO를 먹은 게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기엔 김필산, 조서월, 최우준의 수상작 만큼의 임팩트와 재미가 있었냐고 하면 거기엔 또 살짝 갸우뚱하는지라...(일단 창조 엔진은 구조에서 카나트나 옛 동쪽 물가에보다 명백하게 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김희선 심사위원의 심사평에서 찾을 수 있었다. 김희선 심사위원의 언급에 따르면 심사위원들과의 토론과 회의를 거쳐서 SF라는 정체성과 (문학성을 충분히 챙기고 난 다음에) 재미 있는 작품을 뽑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기 때문이었다.


후자에 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뭐, 이해가 안 가는 이유인 것도 아니므로... 쨌든 그렇기에 '소행성이 등장했단 이유만으로 SF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탈락시킨 작품도 있다고 할 정도이니. 이번 한국과학문학상은 2022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 외연의 확장보다는 정체성을 좀 더 곤고히 다지자는 쪽이었을까.


어쨌든 그 결과물은 카나트, 옛 동쪽 물가에, 창조 엔진으로 각각 장단이 있을지언정 '나쁜 작품'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수상할 만하냐고 하면 수상을 부정할 이유는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과상의 변화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하는 편이다. 이런 방식으로 가작을 주더라도 더 뽑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건 허블 사정이니 쩔 수 없는 부분.


그러나 한과상의 제일 치명적인 문제는 다른 게 아니라 에세이를 넣었다는 점이다. 작가노트를 빠방하게 넣은 거면 차라리 이해라도 하겠는데, 굳이 'SF와 삶'이란 주제로 에세이를 쓰게 한 다음 실었다. 출판 계약을 소설마다 해서 단편 두 편을 싣는 건 부담이라는 이유에서였을까? 아니면 애당초 1편만 실을 생각인데 3편으로는 분량이 도저히 안 나와서 급하게 에세이로 땜빵한 것일까?


허블의 뒷사정은 알 길이 없지만, 솔직히 그렇게 궁금한 사안은 아니다. 그걸 안다고 해서 2025 한과상이 '만족스럽냐'라는 질문에 '그렇다'라는 답을 끌어내진 못하니까. 변화는 긍정적이더라도 구성은 별로 긍정하고 싶지 않다. 최장욱 에세이가 재미있어서 망정이었지, 고선우는 진짜로 할 말 없어서 쥐어짜낸 느낌이었고, 이연파도 거진 샤라웃으로 끝냈고......


어차피 한과상 고지할 때도 3편에게 수상한다고 하지 않고 3인에게 수상한다고 했는데, 줄 상금 반반씩 해서 각 단편마다 계약하고 실으면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다 부질없는 IF 회로 아니겠는가? 현실은 3편 단편에 3편 에세이가 실린 2025년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변화가 장편에게까지 미쳤다면, 장편 수상작 역시 조금은 기대해봄직하다. 사실 2024년 장편 수상작도 썩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2022년이 최악이라서 그렇지) 장편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아님 말고. 어쨌든 읽고 리뷰하면 될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