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키오 미시마와의 인터뷰
장-클로드 쿠르디
프랑스 / 1966 / 10분 21초
출연: 유키오 미시마
1966년 도쿄의 유키오 미시마 자택에서 당시 일본 특파원이었던 장-클로드 쿠르디가 진행한 인터뷰.
필름 원본은 감독의 딸인 케이코 쿠르디와 프랑스 시네마테크가 16mm 네거티브 필름과 자기 테이프를 바탕으로 재발견하고 복원했다.
ORTF(프랑스 국영방송) 아시아 지국장이었던 장-클로드 쿠르디는 1960년대 대부분을 도쿄에서 보냈다. 그가 유키오 미시마를 처음 만난 것은 공식 업무였지만, 이 영화는 비공식적으로 촬영되었으며, 최근 그의 딸인 영화감독 케이코 쿠르디의 도움으로 필름이 발견되고 복원되었다.
1966년, 『금각사』, 『가면의 고백』, 『연회 이후』의 번역본들이 이미 프랑스에 미시마의 재능을 알렸다. 이 작가는 또한 영화감독이 되어, 앙리 랑글루아의 열정적인 초청에 응답하며 샤이요의 프랑스 시네마테크에서 자신의 영화 『우국(憂國)』(원제)을 처음 상영했다. 장 콕토에 매료된 미시마는 상상력의 무한한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영화로 이끄는 이미지 시인의 대열에 속하기를 원했다. 1953년부터 미시마는 콕토에게서 “전류처럼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은유들, 이미지가 벗겨지도록 하는 변형들”을 찬양했다. 자신의 단편소설을 절제된 방식으로 각색하며 카메라 앞과 뒤를 오간 미시마는 예술가이자 모델이었다.
유키오 미시마의 범상치 않은 개성에 흥미를 느낀 장-클로드 쿠르디는 이 문학계의 만능인이 정기적으로 강도 높은 보디빌딩 훈련을 하는 체육관에 등록했다. 개인적으로나 지적으로 서로를 존중하게 된 두 사람은 영상 인터뷰의 필요성에 합의했다. ‘슈퍼스타’의 하루를 제안하는 이 귀중한 기록은 그의 기상 장면으로 시작되며, 이어 그는 기자가 던진 질문에 프랑스어로 답한다. 침실 벽에는 천재 요코오 타다노리의 팝아트 작품들 옆에 잠든 또 다른 미시마가 있다. 이것은 『장미형(薔薇刑)』이라는 사진집에서 가져온 오소에 에이코의 사진이다. 몸에 꽃이 꽂힌 신화 속 미시마의 죽음을 표현한 것이다. 자신의 반영 속에 빠져들며, 예술가는 도발적인 순교자 이미지와 자신을 혼동하는 놀이를 한다. 오사무 다자이에서 야스나리 가와바타에 이르는 동료 작가들은 얼굴 표정에까지 병을 드러내는 허약하고 병약한 체격만을 보여주었다. 스스로를 ‘정신적 노출광’이 되기에는 너무 수줍다고 여긴 미시마는 자신을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 작가”라고 자칭하며, 일상의 장면들을 재연하면서 보디빌딩으로 재구성한 자신의 육체를 드러낸다. 자살부터 동성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질문에 답하며, 미시마는 미시마 역을 연기한다. 그는 검술 연습을 하면서 예술과 사회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거침없이 펼친다. 1970년, 장-클로드 쿠르디는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해 일본을 떠날 것이다. 몇 달 후, 미시마는 이번엔 진짜인 할복 자살이라는 극적인 방식으로 불멸에 이르게 된다.
클레망 로제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