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는 도교 복희 삼효 8괘나 유교의 삼재(천지인) 64괘와도 다르고, 기독교 삼위일체설과도 다른 10괘를 전시한다. (수학적으로도) 삼효, 삼재, 삼위는 8(=2의 3승)인 경우의 수를 가지므로 박상륭이 제시한 값은 오류이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더라도 상생상극하는 10가지 변화는 박상륭의 수와는 다르다. 박상륭에게서는 양흑陽黑이 처음과 마지막 수로 일치하지만, 음양오행설에 있어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중값이다. 또한 기독교의 삼위인 神-人神(예수)-人이며, 과거-현재-미래의 시간 중 현재가 중심이고,신의 人現이 중요하다는 그의 허구는 순전히 탄트라 밀교 요니(자궁)에 빠져있다. 밀교의 요니와 남근과 음순을(또는 남성-양성-여성을) 삼요소로 하더라도 경우의 수는 8이며, 복희의 8괘나, 음양오행의 10익을 날조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기독교 예수로 인해 마침내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다신교로 변했다는 허구는 기독교 십계명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전체적으로 사이비교에서나 쓰일 근거없는 말을 퍼트리는 게 이 소설 내용이다. 종교의 일반성을 의미하고자 했다면, 최소한 각 종교의 교리에 대한 이해는 했어야 했다.그래서 박상륭이 근거하는 탄트라 밀교조차 그 교리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문이 든다.
같은 구약을 믿는 유대교와 회교는 같은 종교인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하는 작금의 사태는 정상인가. 나아가서 모든 종교가 유사하다고 주장하는 느슨한 믿음이 타인의 종교를 호도하여 더 큰 난제를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다름의 종교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사는 걸 조장해야 더 올바르지 않는가. 사회문제가 된 ‘내가 메시아다’라고 떠들며 수많은 피해를 양산하는 사이비교주, 해방전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을때 구1원을 미끼로 고통을 더욱 키운 사이비종교는 각 종교의 근거를 무시하고모든 종교의 같음이나 사이비 일반성으로 대중을 현혹시켜 생겨난 비극이 아닐까. 그래서 개인 신앙 자유나 사회 종교의 자유에 기생하는 사이비를 일부러 그는 창작한 것일까. 신수의 게송과 혜능의 게송에는 공통점이 있다.
보리수는 지혜가 자라는 나무인 몸을 의미하고, 거울은 그 지혜를 비춰주는 마음을 의미하는 점에서. 그러함에도 신수를 살해하고 혜능이 인신人神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북종선의 개조 신수를 살해한 남종선의 개조 혜능이라니! 티베트에서 불교가 국교가 될 때 그 유명한 삼예대논쟁이 있었다.당시 인도 탄트라승 연화계와 중국 선승 마하연이 논쟁하여 중국 선승이 패했다. 고기에 의하면 마하연이 북종선 계열이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신수와 혜능의 게송을 비교하면 남종선 계열일 거라는 의심이 생긴다. 그런 북종선 개조 신수를 살해한다는 게 과연 선종 6조일 수 있을까.
부처 재세시에 여성(비구니)도 승가에 가입할 수 있었는데, 그런 승가를 소설은 명칭은 수도부修道府인데, 남성 비구에게 몸을 파는 창녀로 묘사한다. 비구니가 비구에게 몸을 팔아 도를 닦는다고? 탄트라 밀교가 불교의 정통이고, 대승이라고? 십분 양보해 화엄 의상 <법성게> 구,‘구세십세호상즉 잉불잡란격별성’에 나오는 구세는 의식의 대상인 과거-현재-미래 삼세를 세분한 식이며, 십세는 그 의식대상을 의식하는 식을 말한다. 구세인 세간과 십세인 출세간은 서로 즉하지만, 결코 섞이는 법이 없이 분명하다고 한다.
박상륭의 1부터 9까지의 경우를 시간의 전부라고 볼 때, 10은 다시 1로 된다. 세간과 출세간의 구별이 없고 1인 양흑의 경우 과거인데, 그는 또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중첩된 현재라면서 과거로 복귀하는 10인 양흑이니, 설령 10가지 상을 가져도 완전히 다른 것이라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유, 불, 선, 기독, 밀교 모두를 호도한 이 소설은 가히 내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있음직하거나, 없음직한 게 소설의 허구라면, 그의 소설은 내용의 소재가 없어 무가치하다. 그의 표현대로, 그는 소설은 쓰지 않고 잡설만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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