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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돈이 음슴으로 음슴체로 하겠습니다....
돈에 대한 이야기 말고도, 중반 이후부터 소설 작품들이 언급되고 있고, 우중충함과 칙칙함, 무기력함의 페테르부르크에는 병마가 감도는 듯한 느낌을 줬음.
여기서 '가난하다'는 것은 우선 경제적 빈곤을 뜻하겠지만 이에 파생되는 - 또는 역으로 파생하여 가난에 영향을 끼치는 - '병', '질환'에 시달리는 것도 포괄할 수 있겠음. 그리고 마까르와 바르바라가 책에 대해서 나누는 이야기를 두고 생각해봤을 때, 가난이라는 것은 '예술적 감흥' 또는 '작품 감상에 있어서 그것을 바라보고 느끼는 생각'의 성숙도로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음.
작품은 줄곧 두 인물의 편지에 서로가 계속 답장을 하는 형식으로 이어짐. 여기에서 맨 마지막 끝맺음에 대해 내가 받았던 인상을 말하고 싶음. 편지란 것은 하나의 소통수단이고 일반적으로 수신자가 있기 마련임. 그래서 일방향적 소통(마치 무전기처럼)이 전제된 상황이 아닌 이상 수신자에게서 발신자에게 답장이 오리라는 암묵적 기약을 우리는 가지게된다고 봄.
바르바라의 결혼은 순전히 본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닌, 그가 내던져진 상황 속에서 마침내 벼랑 끝에 내몰리고 나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결정이었을 것임. 또, 바르바라와 마까르에게 있어 둘의 서간은 단순한 안부 물음이 아닌,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고 외부의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나마 완화해주는 정신적 교감이 되어주고 있었음. 하지만 바르바라에게 주어진 선택된 강요(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함. 물론 이 강요라는 것을 비꼬프가 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님. 가난한 삶을 살아가게만드는 그 상황을 중심으로 놓고 판단해주셨으면 함.)로 인해 이제 그런 것은 끊어질 위험에 처했음.
그렇기 때문에, 바르바라의 마지막 편지에 대해 날짜 없이 갈겨쓴 마까르의 마지막 답장은 극적으로 큰 비통함을 낳았다는 인상을 받았음.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묘사도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 지점이라고 생각함. 단순히 도시에 대해 그리는 표현만이 아니라 주변 인물이 자신에게 주는 영향을 판단하는 부분을 같이 묶어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봄. 그래서, 마까르가 우연히 높은 지위에 있는 상관에게서 100루블을 받았을 때를 주목했음. 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에 대해 그리고 도시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으며 무언가에 쩔어있는 듯하다는 식의 표현을 했던 그가 큰 액수의 돈을 얻게된 순간에는, 주변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임.
이 부분이 나의 관념을 어떤 곳으로 데려갔냐면, '결국 세상사 문제를 말미암는 것은 돈인 것인가? 경제적 빈곤은 정신적 빈곤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은 맞겠지만, 직결되기까지 하고야 마는 것인가?'라는 것임.
물론 재판에서 돈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나 얼마 안 지나 급사하고만 고르시코프를 보면 느끼듯이, 돈이란 것은 삶의 큰 지분을 차지하면서도 죽으면 딱 그만큼 부질없다는 관념을 무시할 수는 없음. 하지만 이런 것을 항상 느끼는 와중에도 결국 빈곤한 자를 괴롭히는 원인의 시발점은 돈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이 모순적인 상황은 참으로 곤란한 문제라고 할 수 있겠음.
약 150년 전에 태어난 작품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나, 희망을 찾아보도록 하는 걸로 줄이겠음. 그래도 대한민국의 복지상황은 최소한 저런 방관적 상황은 아니리라고 생각함. (우리나라의 복지 예산은 국가 예산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도 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빈곤에 빛을 비추지 못한 사각지대는 존재할테지만, 최소한 의식주를 위협받는 상태에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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