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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브래드버리 글, 조애리 번역.

2009년 2월 6일 황금가지 출판.


《화씨 451》과 《화성 연대기》로 잘 알려진 미국의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SF 외에도 수백 편에 이르는 중단편을 썼다.


《민들레 와인》은 브래드버리가 나고 자란 일리노이 주 워키건을 바탕으로 만든 1928년 가상의 마을 그린 타운에 사는 어린 소년 더글러스와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고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모조리 지칠 때까지 느끼고 싶어 하는 더글라스. 과거를 기억하게 해주는 것들을 수집하는 늙은 벤틀리 부인. 아버지가 새로 직장을 구해 갑작스럽게 친구와 이별하게 된 존. 《민들레 와인》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평범하기에 더 공감이 되는. 어디에서나 볼 법한 소년, 주부,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은 레이 브래드버리가 칠한 파스텔 색에 더욱 아련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가진 순진함과, 또 그 순진함이 있기에 할 수 있는 행동과 생각들을 생생하게 살려낸 레이 브래드버리의 글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기도, 슬픔에 잠기게도 만든다.


살며시 더해진 마법이나 환상은 이야기에 동화 같은 느낌을 더한다.


시대와 문화의 차이 때문에 가깝게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민들레 와인》에는 이런 차이를 넘어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따스함이 가득 담겨 있다.


초반부에 나오는 인상적인 글귀

「난 느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모조리 느끼고 싶어. 지치도록 느낄 거야. 자, 지치도록 느낄 거야. 잊으면 안 돼, 난 살아있어. 살아 있다는 걸 아는걸, 오늘 밤이나 내일이나 모레가 되어도 잊으면 안 돼.」


「민들레 와인.

이렇게 말하는 순간 곧 여름이 되었다. 와인은 병에 가둔 여름이었다. 더글라스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절감했다. 세상을 보고 만지고 싶었다. 그래서 새로운 지식 중 일부, 와인을 만든 이 특별한 날을 밀봉해 따로 떼어 두었다. 그것은 옳은 일이었고 또 적절한 일이기도 했다. 1월 어느 날, 줄기차게 눈이 와 몇 주고 몇 달이고 해가 뜨지 않을 어느 날 그 와인 병을 열어 볼 것이다. 아마 그때쯤에는 기적 중 일부는 이미 잊혀져서 다시 되살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측하지 못한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여름이 와인 병에서 살아날 것이다. 그는 이 병들을 한데 모아 이름을 붙여 두고 싶었다. 그러면 언제든 해 질 녘에 살금살금 지하로 내려와 만질 수 있을 것이다.」


「"샌더슨 씨, 운동화를 느껴 보세요. 그 신발을 신어 보시면 제가 얼마나 빨리 뛰어다닐지 짐작하실 거에요. 안쪽에 있는 스프링이 느껴지세요? 저절로 달리는 느낌이 드세요? 발을 단단히 감싼 운동화가 움직이라고 부추기는 게 느껴지세요? 거기 가만히 서 있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느껴지세요?"


샌더슨 씨는 운동화 속 깊이 발을 넣고 유연하게 발가락을 굽혔다 폈다 한 후 발목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운동화는 조용히 카펫 속으로 파묻혔다. 마치 정글의 풀이나, 부드러운 흙이나, 탄력 있는 진흙 속에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는 이스트로 부푼 빵 반죽처럼 그를 환영하며 받아들이는 땅에 대고 경건하게 발 뒤꿈치를 튕겨 보았다. 마치 다양한 색의 등불이 켜졌다 꺼지듯이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인생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첫 번째 사실은 우리가 바보라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배워야 할 사실도 우리가 여전히 바보라는 거예요."」


번역

을유문화사에서 출판한 제인 에어,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등 많은 작품을 번역한 조애리 번역가가 번역했다.

우선 아래 예시를 보자.


조애리 역 《민들레 와인》, 53~54쪽

"나머지 반은 뭐야?"

"우리가 처음 해보는 일."

"올리브 먹는 것?"

"그보다 큰일이지. 할아버지나 아빠가 이 세상 일을 모두 아시는건 아니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

"아빠와 할아버지는 모두 아시는걸. 잊었어? 잊으면 안 되는데."

"톰, 대들지 마. 나는 이미 발견과 계시 칸에 적어 놓았어. 아빠나 할아버지라고 모두 아시지는 않아. 그건 범죄가 아니야. 또 새로운 사실도 발견했어."

"거기에 써 놓은 것 중 또 뭐가 새로운 건데?"

"나는 살아 있다."

"쳇, 전부터 살아 있었잖아."

"그걸 깨닫게 된 거야. 그건 새로운 일이야. 너는 그런 일을 하면서도 관찰하지 않잖아.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을 하는지 의식하게 되면 그건, 정말이지, 처음 있는 일이 되는 거야. 난 여름을 두 부분으로 나눌거야. 이 종이의 첫 부분의 제목은 '의식과 예식'이야. 그해 처음으로 루트 비어의 마개를 딴 일. 그해 처음으로 잔디밭을 맨발로 달린 일, 그 해 처음으로 거의 호수에 빠질 뻔한 일, 최초의 수박, 최초의 모기, 최초의 민들레 수확. 그러고 나선 이 모든 일을 생각 없이 되풀이하지. 이제 뒤쪽을 보면, 내가 말한대로 '발견과 계시'라고 써 있다. '각성'이라고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좀 과장된 단어지. 아니면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민들레 와인을 담는 것처럼 오랫동안 해 온 익숙한 일을 했으면 그것을 의식과 예식 칸에 써넣으면 돼. 그러고 나서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생각난 것을, 미친 생각이든 아니든, 발견과 계시 칸에 써넣으면 돼. 여기 내가 와인에 대해 생각난 게 있어. '와인을 병에 담을 때마다 1928년을 몽땅 안전하게 모아 두는 것이다.' 이런 표현은 어때, 톰?"


원서 Dandelion, 24~25쪽

"What's the other half?"

"Things we do for the first time ever."

"Like eating olives?"

"Bigger than that. Like finding out maybe that Grandpa or Dad don't know everything in the world."

"They know every dam thing there is to know, and don't you forget it!"

"Tom, don't argue, I already got it written down under Discoveries and Revelations. They don't know everything. But it's no crime. That I discovered, too."

"What other new crazy stuff you got in there?"

"I'm Αlive."

"Heck, that's old!"

"Thinking about it, noticing it, is new. You do things and don't watch. Then all of a sudden you look and see what you're doing and it's the first time, really. I'm going to divide the summer up in two parts. First part of this tablet is titled: RITES AND CEREMONIES. The first root beer pop of the year. The first time running barefoot in the grass of the year. First time almost drowning in the lake of the year. First watermelon. First mosquito. First harvest of dandelions. Those are the things we do over and over and over and never think. Now here in back, like I said, is DISCOVERIES AND REVELATIONS or maybe ILLUMINATIONS, that's a swell word, or INTUITIONS, okay? In other words you do an old familiar thing, like bottling dandelion wine, and you put that under RITES AND CEREMONIES. And then you think about it, and what you think, crazy or not, you put under DISCOVERIES AND REVELATIONS. Here's what I got on the wine: Every rime you bottle it, you got a whole chunk of 1928 put away, safe. How you like that, Tom?"


글쓴이 번역

"나머지 반은 뭔데?"

"우리가 처음으로 해보는 것들."

"올리브를 먹어 보는 것 같이?"

"그것보다 의미 있는 거. 할아버지나 아빠가 세상 모든 걸 알고 계시지는 않다는 것 같은 거."

"할아버지랑 아빠는 알 수 있는 건 다 알고 계셔, 까먹지 마!"

"톰, 내 말 좀 들어. 벌써 발견과 깨달음에 적어 놨다고. 두 분이라고 다 아시지는 않아. 그게 잘못은 아니야. 그것도 깨달았지."

"거기에 또 어떤 이상한 게 있는데?"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아니, 그건 익숙한 건데?"

"그걸 생각해 보거나, 알아차린 건 처음이지. 우린 무언가를 해도 살펴보지 않아. 그러다가 갑자기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 처음으로 정말 하게 되는 거야. 난 여름을 두 기간으로 나눌 거야. 노트 앞 제목은 의식과 예식이야. 그해 처음으로 루트 비어 따기. 그해 처음에 맨발로 잔디밭 위를 달리기. 그해 처음으로 호수에서 거의 익사할 뻔한 일. 첫 수박. 첫 모기. 첫 민들레 수확. 그런 것들이 우리가 계속 반복하고 생각해 보지 않는 일이야. 뒤 제목은 내가 말했던 것처럼 발견과 깨달음 아니면 각성, 그건 좀 거창하고, 아니면 느낌이라고 하자. 알았지? 그러니까, 민들레 와인을 담는 것처럼 익숙한 일을 하면 의식과 예식에 적는 거야. 그리고 생각해 보고, 자기 생각을 이상하거나 말거나 발견과 깨달음에 적는 거지. 이게 내가 와인을 생각하고 느낀 거야. '와인을 담을 때마다 1928년을 몽땅 담아 두는 것이다, 안전하게.' 어떻게 생각해, 톰?"


*


위에서 볼 수 있다시피 번역이 다소 거친 편이다. 당시 사정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민들레 와인》의 번역은 아쉬운 편이다. 아이들이 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어투가 딱딱하기 그지없거나, 한국어 사용자가 이해하기 어렵게 번역된 문장과 읽으면서 울퉁불퉁한 자갈밭을 거니 듯 흐름이 끊기는 문장이 꽤 많다.


그렇다고 해서 황금가지에서 나온 《민들레 와인》에 읽을 가치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위에서 인용한 문장처럼 레이 브래드버리의 서정적인 문장은 거친 번역을 뚫고 나와 독자에게 와닿기 때문이다. 삶에 지쳐 메말라 간다고 느껴진다면 《민들레 와인》으로 마음을 적셔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