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후 나는 에이드리언에 대해 좀 더 생각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는 언제나 우리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명철한 시각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호강에 받들려 무풍지대나 다름없는 사춘기를 허우적대며 우리의 타성적 불만이 인간 조건에 대한 본원적 반응이라 믿는 동안, 에이드리언은 이미 거기에서 벗어나 멀리, 넓게 앞을 조망하고 있었다. 그는 인생에 대해서도 - 애써 살아봤자 보람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마저도,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 남달리 명징하게 받아들였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언제나 흐리멍덩했고, 인생이 내게 던져 주는 얼마 되지도 않는 교훈에 대해 크게 깨달을 깜냥도 못 되었다. 내 식으로 말하면, 나는 삶의 현실에 안주했고, 삶의 불가항력에 복속했다. 만약 이렇다면 이렇게, 그렇다면 저렇게 하는 식으로 세월을 보냈다. 에이드리언 식으로 말하면 나는 삶을 포기했고, 삶을 시험해보는 것도 포기했고, 삶이 닥쳐오는 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난생처음, 나는 내 온 인생에 대해 한결 총체적인 - 자기연민과 자기혐오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 후회의 감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살아온 어느 하루도 후회되지 않는 날이 없었다.
-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중에서
화자인 주인공 일마가 문제 있긴 함.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문제. 내 해석으론, 토니 기억이 맞고, 베로니카는 천하의 개쌍년, 사라는 토니와 에이드리언에 빚졌다고 느꼈고(유혹이나 사랑이나 성욕이 아님), 마거릿은 쌍년, 에이드리언은 끝까지 토니를 친구로 생각 했고 죄책감에 생을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