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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의 《인간 희극》은 그 자체만으로도 문학사에서 거대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대작이다. 90편의 소설들이 서로 연속성을 가지며 거대한 서사시를 이룸과 동시에 이러한 작품이 한 인간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그런 《인간 희극》 가운데서《고리오 영감》은 독보적인 완성도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동에 발자크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고리오 영감》만은 각종 출판사에서 한 번씩은 출판한 것을 볼 수 있다.
주요 내용은 심플하다. 딸들을 위해 헌신한 한 아버지의 가엾은 비극. 이러한 비극은 아직 순수한 영혼을 간직한 젊은이의 입장에서 주로 서술된다.
비슷한 시기의 스탕달에 비하면 발자크는 내면의 묘사가 적다고 볼 수 있다. 그 대신,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묘사와 장면이다. 소설의 도입부부터 약 40페이지 정도까지는 아무런 대사없이 화자의 서술로만 이루어진다. 그 정도로 세밀하게 배경을 설정하고 인물을 그려내고 나서야 비로소 소설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소설을 읽으면서 잘 눈치채지 못하지만 사실 소설 속의 일들은 드라마틱하기 그지 없다. 매일 같은 루틴만 반복하며 이루어지는 우리의 삶과 비교했을 때 소설 속 인물들은 끊임없는 사건의 연속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발자크의 소설들이 사실주의 문학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따지고보면 사실과 제일 동떨어진 소설이 아닌가?
《고리오 영감》의 핵심은 거기에 존재한다. 연극 마냥 과장되고 강조된 장면들은 현실과 동떨어졌으나 독자들에게 최대한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흔히들 《고리오 영감》을 두고 많이 얘기하는 감상 중 하나가 오늘날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인데 이는 무턱대고 현실과 동일하게 쓴다고 지루한 일들까지 포함시켰으면 퇴색되었을 것이다. 겉가지를 쳐내고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면을 그려내어 현실을 예술로 표현하는 것이 발자크 소설이 가지는 미학이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이라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는 도시를 바라보는 주인공이 결심을 내뱉고 도시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는 마치 후속작의 암시를 보여주는 듯하다. 오늘날의 연작 소설, 연재 만화, 영화의 쿠키 영상들이 비슷한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발자크가 문학사의 선구자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보인다.
슬픈게도 현재로서는 해외 서적들의 도움없이 《인간 희극》을 전부 탐독한다는 행위가 불가능하다. 지금 출판된 발자크의 소설들이 10권 조금 안되는 것으로 아는데 90편에 달하는 《인간 희극》전체를 보지 못하고 그 일부분만을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게 괴롭기만하다.
읽다가 포기 했어요. 등장인물 이름도 헤깔리는 데, 백작 공작 후작 지위도 헤깔리고 영감님한테도 감정이입이 잘 안되서.. 하지만 발자크는 워낙 유망하고 갓띵작임은 확실할테죠. 에밀 졸라나 스탈당이나 뭐 다른 프랑스 소설가들이랑 비교해서 어떻게 느끼시나요
졸라는 안봐서 모르겠다. 스탕달이랑 비교는 중간에 적어뒀는데 스탕달이 감정 서술 위주로 간다면 발자크는 묘사+작가 사견 위주로 가는 느낌.
선리플 후감상 하다 걸렸네.. 에밀 졸라는 독서모임 때문에 <돈>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상당히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이었음. 대표작 <인간짐승>은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더라. 추천 함.
거기는 마지막부분이 꿀잼그자첸데 보트랭이 꿀잼파트 책임짐 보트랭개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