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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독후감



   “그리고 그녀가 불안과 허위와 슬픔과 악으로 가득 찬 책을 읽을 때 그 옆에서 빛을 비추던 촛불 하나가 어느 때보다 밝은 빛으로 확 타오르더니, 이전에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모든 것을 그녀 앞에 비춰보이고는 탁1탁 소리를 내며 점점 흐릿해지다가 영원히 꺼지고 말았다…”


  레빈의 집에 초대된 소설가 톨스토이가 7부로 구성된 그의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어내고서는 레빈의 응접실에는 적막이 흘렀다. 모두 그 내용을 숨죽이며, 연민에 휩싸인 표정으로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소설이 끝났음에도 그들의 감정적 동요는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멋진 소설이군요, 톨스토이 선생!” 그 때 스테판 아르키지치가 큰소리로 유쾌하게 외쳤다. 그 목소리는 고요하던 밤중에 번쩍이는 천둥번개처럼 모두의 귀에 충격을 안겨줬다.

  “저는 이 소설이 우리 러시아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특히 초반의 기차 사고와 마지막에 안나*가 기차에 달려드는 장면의 대조, 그리고 니콜라이의 죽음과 키티의 출산의 대조가 정말 완벽한 건축적 균형감을 갖고 있군요!”


(*안나 카레니나와 카1레1닌, 브론스키는 이 응접실에 있는 스테판 오블론스키, 세르게이 이바니치, 콘스탄친 레빈과는 달리 톨스토이의 창작 인물이다.)


  “그렇게” 세르게이 이바니치가 미간을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에게는 오블론스키의 단순한 탐미적 접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이 이야기가 분명 도덕적 숭고함과 철학적인 깊이를 가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의 부도덕은 파멸을 맞을 수 밖에 없었던거지. 나는 물론 자유사상가로서 그들의 행실을 단죄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지만, 그들의 행실에는 어떤 조심스럽지 못한 면이 있어.”

  “하지만” 레빈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 그녀를 파멸로 이끈 것은 그녀 스스로의 행실 탓이라고만 할 수는 없어. 그것은 그녀의 천성적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야. 오히려 이성.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파멸로 이끄는 어떤 이성이 그녀를 끌고 갈 수 밖에 없었던 거야.”

레빈은 안나를 단순히 부도덕한 인간으로 매도하는 세르게이의 오만함에 화가 났다. 따라서 그는 그의 형에게 반박하며 끓어오르는 적의를 숨길 수 없었다.


“나도 물론 그녀에게 연민을 느껴. 하지만 어째서 그녀가 이성적이었다는 거지?”

세르게이 이바니치는 동생의 적의에 당황하며 말했다. “그녀는 질투와 의심, 집착,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이끌려서 행동했어.”


  “물론 맞아. 그녀는 분명 감정적이었어. 나는 그녀가 이성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야. 그보다는 그녀의 생명과 유리된 어떤 이성과 관념이 그녀를 그런 죽음의 감정에 이끌리게 만든거야. 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봐. 그녀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그녀는 사랑을 원했어. 정확히는 사랑이란 관념을 원했지. 그 사랑에는 생명이 없었어. 마치 그녀가 죽고 난 이후라면 그 사랑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추론했던거야. 하지만 사랑은 살아있음을 조건으로 한단걸 몰랐을 뿐이지.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바치더라도, 아니 목숨을 바침으로써 그 대가로 그 사랑을 받겠다고 추론했을 뿐이야. 또 그녀가 브론스키를 붙잡기 위해서 얼마나 전략적이었는지. 그런 것은 감정으로만 할 수 있었던게 아니야. 오히려 그녀의 지나친 추론 능력이 그녀를 몹쓸 불안감과 질투에 휩싸이게 한 거지.”


  “이성, 관념, 생각. 이런 것은 삶을 벗어나 무한한 세계로 뻗어나가지. 이성은 그 이성을 발휘하는 주체가 죽고 난 이후에 대한 상상 마저도 허용하거든. 그가 죽고나면 그 이성도 쓸모없는 것이 되는데도 말이야. 이제 너의 말이 조금 이해가 될 것 같군.” 철학에 조예가 깊은 세르게이는 이제야 이해가 됐다는 듯이 끄덕이며, 여러 철학자의 이름을 들먹였다. “저희가 생각한 것이 맞나요, 톨스토이 선생?”


  톨스토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만 어깨만 들썩였다. 그는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것은 독자가 생각하기 나름이죠.”


  “카1레1닌은 또 어떻고. 그는 이성적인 사람이야. 그는 안나가 불륜을 한 것을 고백하고 나서도 체면 치레와 자신의 사회적 위1상만을 신경 썼어. 그런 점은 브론스키도 마찬가지였지. 그들 모두 자신의 성공, 사회적 이상,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모든 것들의 실재적 조건인 삶과 사랑을 잊었어.”


  “아! 안나 카레니나! 그녀가 너무 불쌍해라!” 스테판 아르키지치가 비꼬듯 말했다. “그녀는 단지 상념에 이끌려갔을 뿐이로구나!”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수 없어, 스테판” 레빈이 열 띤 어조로 스테판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말했다. “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해. 내가 스비야슈스키와 농민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걸 기억해? 물론 스비야슈스키는 농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어. 그러나 그는 농민을 직접 마주하지 않았어. 나는 그 점이 화가 났던 거야. 그의 농민에 대한 사랑에는 현실이 없었어. 반면 나는 많은 노동을 농민들과 함께 했어. 난 거기서 그들의 게으름도 보았고, 귀족에 대한 적의도 보았지. 때론 그들을 증오하기도 했지만 난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 마저도 껴안고 농민들을 사랑했어.”


  레빈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 소설도 그래! 난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로는 안나의 이기적인 행태를 혐오하기도 했어. 또한 카1레1닌이 그녀의 불륜을 용서할 때, 나는 어떤 종교적인 숭고함 마저 느꼈지. 그는 다만 그 종교적인 용서, 그렇게 직접적으로 닥쳐온 신성을 그의 이성으로 버티지 못했던거야. 심지어 브론스키는 안나를 진심으로 사랑했어. 그리고 카1레1닌의 용서에 어떤 숭고함을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할 정도였지. 현실적이라는건 이런거야. 그 현실성을 바탕으로 나는 이 소설 속 인물인 안나와 카1레1닌, 브론스키를 혐오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거지. 진정 현실적인 사랑은 부정성을 포함하는 사랑이야.”


  “‘하지만 형에게는 사랑을 하는 데 필요한 약점이 없어.’ 형님이 바렌카와의 데이트가 잘 안되는 거 같길래 코스챠가 저에게 이렇게 얘기했죠.” 계단에서 이 이야기를 엿들은 키티가 장난기 어린 말투로 얘기하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오는 겁니까?” 세르게이가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카1레1닌이 그에게 닥쳐온 신성을 버티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는 리디야 이바노브나를 만나고 종교적으로 회심했는걸.” 세르게이가 이어서 레빈에게 반박했다.


  “하지만 그의 신앙은 여전히 이성적이야. 그는 자신의 믿음을 심판하는 척도를 스스로 갖고 있었어. 이를테면 ‘나는 그녀를 용서했으니 이미 그리스도교인 적인 일을 행했다.’고 생각해버린거지. 그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생각했다고 하잖아, ‘그리고 자신은 가장 완전한 믿음을 갖고 있기에 자신의 영혼에는 더 이상 죄가 없고 자신은 이 지상에서 이미 완전한 구1원을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불가능하고 모순된 점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는 그의 이성이 만들어 낸 가상의 구1원에 매달려 있었어.”


  레빈이 말을 이었다. “가장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와 우둔한 자들에게는 나타내셨도다... 내가 진정한 삶과 죽음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됐던 순간이 있었어. 한번은 나의 형 니콜라이의 죽음의 순간이었고, 또 다른 한번은 키티의 출산 때였지.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키티가 학문과 사랑에,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런 것들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집안일과 같은 현실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지는 걸 못마땅하게 느꼈어. 하지만 그가 나의 형 니콜라이를 간호할 때, 그녀는 그의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욕창에 걸린 몸을 단한번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지. 그녀는 그저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현실적인 일들을 수행했던거야. 그녀는 나처럼 단지 추상적으로 삶과 죽음을 이해하지 않았어. 그녀는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어. 그 때 니콜라이 형은, 평소에는 그렇게 악의에 찬 표정으로 신을 부정하던 형이 “오, 주여” 라고 외치는 거야. 나는 그 때 그 형이 외쳤던 “오, 주여”라는 표현에서 ‘형이 종교로 회귀한 것은 똑같은 사상의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병을 고치고 싶은 광기 어린 희망에서 나온 일시적이고 이기적인 것임’을 알았어.


  그리고 나는 그것을 키티가 출산하는 날 얼마나 절실히 느꼈는지 몰라.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여, 용서하소서, 그리고 도와주소서.’라고 몇번을 속으로 외쳤는지. 바로 그 때 깨달은 거야. 신성은 바로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것을. 그것은 내가 이성으로 이해하고자 할 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벗어난 고통스러운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는 것을…”


  “그 슬픔이든, 이 기쁨이든 다 똑같이 삶의 일상적인 조건을 벗어나 있었고, 그것들은 마치 숭고한 무언가가 엿보이는, 일상 속의 틈새와도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똑같이 괴롭고 고통스럽게 시작되었으며, 영혼은 그 숭고한 것을 직관할 때와 똑같이 불가해한 방식으로 예전에는 결코 파악할 수 없었던 경지까지, 이미 이성이 쫓아갈 수 없는 곳까지 솟아 올랐다…” 톨스토이가 레빈의 이야기를 듣고는 감명 받은 듯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저는 이렇게 썼었죠.”


  레빈의 응접실에서 이루어진 톨스토이의 새로운 작품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토론은 새벽 두시까지 이어졌다. 톨스토이는 다음날 아침에 그의 영지인 야스나야 폴라냐로 돌아갔다. 그는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에 흥분하며 레빈에게 편지를 썼다.


“저의 비천한 작품에 대한 당신의 해석에서 영감을 얻어

지금 그 소설의 에필로그 격인 8부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지혜에 감복하였고, 또한 감사드립니다.

-톨스토이”


레빈은 그에게 답장했다.


“그래서 브론스키는 어떻게 되나요? – 레빈”


“그는 슬라브 민족의 해방 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 톨스토이”


‘그렇다면 그 역시 스스로 죽으러 가는 꼴이군…’ 레빈은 그 편지를 받고 이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