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글 못 쓰는 겁쟁이들에게, 이리와서 연필로 고래를 낚아보자꾸나.
고래가 어떤 의미인지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제목만으로 막연한 확신을 갖기에는 충분했다. 더구나 내가 그런 겁쟁이기에... 그래서 정말 고래를 잡아볼 작정으로 비장하게 책을 펼쳤더니 왠걸, 갑자기 앉은키가 30센티는 낮아진 자리에서 어리둥절해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갔더니 아예 초등학교 교실에 끌어앉혀진 것이다. 멀미 기운이 잔잔하게 들썩이는 배 갑판보단 훨씬 안정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이렇게 진행해요?"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자연스레 소개를 마치고 교탁으로 가 서 있었다. 그는 선생님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부드럽게 내려다보았고, 또 나를 향해서는 한쪽 눈을 살짝 찡긋했다. '일단 같이 들어봐요.' 하고 말하는 듯이.
글쓰기 레슨은 대략 이런 느낌으로 시작됐다. 정작 나는 다 커서 굳은 머리 그대로였기에 떡잎들이 파릇한 땅에 냅다 꽃힌 나무가 된 꼴이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수업을 참관하는 느낌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 공간은 실제로 그가 수업을 했던 교실의 기억이 재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2001년에 다카하시는 NHK 방송국의 권유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어서오세요, 선배님>이라는 프로그램은 이름 그대로 자신이 졸업한 초등학교를 찾아가서 어린 후배들에게 재능을 전수해주자는 취지의 활동이라고 한다. 당시의 일은 본인에게 꽤나 의의가 컸던지 책에서 거의 메인으로 다뤄지고 있었다.
사실 분량으로 미루어 보면 메인이라기보단 조금 긴 서론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교실에 들어가기에 앞서 소설이 뭔지에 대해 여러 차례 곱씹긴 하지만 그래봐야 전체 분량에서 겨우 4분의 1 정도를 할애하는 데서 그친다.
그렇다. 이 책은 소설 작가 지망생에게 쓰여진 글쓰기 레슨이였다.
딱히 소설을 염두에 두지 않았더라도 몇 장 넘기는 사이에 글을 써 보고픈 충동이 들게 하는 게 작법서가 가진 매력이다. 하지만 기본기를 갖추기 전까지 섣불리 글을 쓰면 안 된다는 건 거의 모든 작법서에서 공통으로 당부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 책에서는 유독 그걸 힘주어 강조하는 느낌이 들었다.
대략 간추리면 이런 느낌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예, 압니다. 아마 글을 써 볼만큼 써 봤겠죠. 조급한 그 마음도 잘 알아요. 충분히 걸작을 써낼 역량을 갖췄다면 처음부터 이 책을 보지 않았겠죠. 그러나 잠시 머리를 비워봐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글을 써 봅시다. 소설 쓰기는 동시에 탐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서두르지는 맙시다. 그럴수록 첫 행은 몹시 신중해야만 합니다. 느리게, 또 늦게...
물흐르듯 술술 읽다 보면 책의 제목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연필로 고래를 낚자던 당신은 왜 이놈이 다리가 달렸다는 걸 먼저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물론 이걸로 글을 써보라는 과제를 준 건 아니지만 반면교사로써 보여주는 예시가 있었다. 있지도 않은 '고래 다리'를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얽매여서 서론을 홀랑 소모해버린, 실재하는 한 소설의 얘기였다.
그간 여러 번 습작을 해봤지만 소설에서 서론이란 예나 지금이나 다루기 힘든 부분이었다. 기왕 쓰는 김에 잘 쓰자, 또 잘 쓰는 김에 독창적으로 써보자는 욕심이 강할수록 오히려 집중력이 흔들리기 쉬웠다. 그 틈을 비집고 원래 의도와는 하등 상관없는 잡생각이 의식의 흐름인 척 끼어들어 깽판을 치는 게 작가가 말하는 '고래 다리'였던 것 같다. 애초에 고래의 전후 진화 과정을 다루는 글이었다면 모를까.
아무튼 저 뒷표지에 나열된 레슨 중에 4번째는 낚시라고 보면 된다. 글쓰다가 지치면 '고래 다리'같은 엉뚱한 잡생각에 잠시 머리를 환기하라고는 하지만 정말 진지하게 몰두해보란 말 따위는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뭐, 이것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몇 번쯤 해 볼만한 경험이겠지만...
하지만 잡생각인 듯 무수히 지나가는 의식의 흐름에서 발상의 전환은 꼭 붙잡아야 한다. 저자는 이것을 '공을 붙잡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왜 하필 공을 붙잡는다고 표현할까? 단순히 저자의 스포츠 취향이 문학에 반영된 것 뿐일까? 아직 버리지 않고 모셔둔 책 띠지에는 그가 예전에 쓴 야구 소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는 글이 있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라는 제목인, 완전히 야구에 훌렁 빠진 소설인데 이 작품으로 그는 제1회 미시마 유키오상도 수상했다고 한다.
프로필에 의하면 그는 어릴때부터 열정적인 문학 소년이었지만 대학 시절 학생 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됐던 후유증으로 실어증을 앓는 불운한 과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덕에 "나는 이 컵이 좋아"라는 문장을 재활 운동삼아 매일 쓰면서 후유증을 극복하고, 그 길로 작가의 길을 걸어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종이에 "나는 이 컵이 좋아"라고 매일 썼다는 그 행동은 마치 혼자서 벽에 공을 던졌다 받는 연습같았다. 그렇게 팔과 어깨에 든든하게 힘을 길러 이제는 세상 어딘가에서 힘껏 날아오는 공을 거뜬히 받아낼 수 있게 된 거고. 그 때의 느낌을 소중히 여기고 있기 때문에 '공을 잡는다'는 표현이 우러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영감(䰱感)에 대한 표현이 신선한 것과는 별개로 이렇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기만의 느낌을 확보했다는 게 나로서는 부럽게 느껴졌다.
앞으로 몇 번이고 정독할 책이지만 글쓰기를 키우는 방법으로 롤모델을 모방하는 건 아무래도 제일 어려운 문제로 남을 것 같다. 참고로 저자는 다자이 오사무와 요시다 겐이치라는 작가를 동경해서 이들의 작품에서 문체를 배웠다고 한다. 나는 일본 문학에 영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쪽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들이라면 저자의 글쓰는 스타일이 어떨지 대충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뒷편에는 각종 일본 작가와 대표작에 대한 작가의 견해가 짤막하게 몇 장 쓰여있는데, 혹시나 롤모델을 찾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모방 리스트인 셈이다. 작가 지망생이거나 일문학에 흥미가 있다면 한 번쯤 들여다볼만 하다고 생각된다.
이거 실용적인 내용도 많이 있음? 아니면 여타 작법서처럼 작가가 되기 위한 자세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거임? 본문만 봤을 때는 후자 같긴 하다만
후자에 가깝다고 보면 됨
ㄱㅅ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