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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쳐-오타쿠 문화에 상당한 시간을 사용한 독자로서는 반가운 이름들이 여럿 나와 흥미롭게 읽은 책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독자가 아니라면 흥미를 끌지 못할만한 글.

전후 일본의 시대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브컬쳐에 녹아들어있던 당시 일본인들의 사고를 파악하는 방식은 흥미롭지만, tv란 공통된 미디어를 사용하던 과거와 다르게오늘날 심하게 확대된 서브컬쳐의 상업성과 파편화는 이런 분석이 과거의 유물 발굴 정도에만 한정됨을 느낀다.

전후의 로봇 애니메이션(마징가z부터 야마토나 건담)에서 부터 점프와 러브코미디 만화-라이트노벨-아이돌 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살펴보면 대개 일본의 성장곡선과 그 궤를 같이하는데, 전후-성장-버블-잃어버린 10년-현재라는 시기에서 각각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그 시기 일본 사회의 불안이나 소망을 담은 것들이었단 점에선 서브컬쳐와 사회의 연결고리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고, 충분히 유효한 독법이었을 것이다.

아마 이 흐름에서 오늘날 일본의 서브컬쳐 흐름의 최전선은 버츄얼유튜버(VTuber)라 할 수 있을 듯 한데, 이는 사실 기존 아이돌-성우 팬의 연장선상에 있는 존재란 점에서 아직도 아이돌의 시대가 지속되고 있음을 느낌과 동시에, 문화가 현실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극도로 축소된 오늘날, 서브컬쳐가 더욱 파편화되면서도 상업적 접근의 힘이 더욱 강해졌음을 생각하면 서브컬쳐의 분석으로 사회를 보는 독법의 수명이 끝나감을 느낀다.

(귀멸의 칼날 유행은 서브컬쳐라기보단 사실상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나아갔고, 그 감성적 측면에서도 일본 대중 대다수가 공유하는 감수성에 호소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좋았던 과거로의 회귀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책이 10년대 후반에 쓰여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드러나진 않았다.)

특히나 오늘날의 서브컬쳐에서 고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리메이크 작품들의 제작 증가와 고도로 상업화된 거대 기업들의 진입 확대는 더이상 서브컬쳐가 새로운 시대 흐름을 표현하는 문화의 한 종류라기보단, 수많은 상업적 문화의 일부에 가까워졌을 뿐임을 느끼게 한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적 고양 역시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는 쪽에서 오는 것이기에 일종의 되새김질에 가까울 수 있겠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나 역시도 충분히 나이 든 독자이기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