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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구.원죽음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둘러싼 논쟁 중 하나는 해당 소설이 기독교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의 여부다어떤 이에게이 소설은 정교회 신앙이 역설적으로 드러난 러시아 정교 소설로 평가된다마태오가 거장을 두고 빛 속으로 올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다만 평안이 주어질 뿐이라고 말한 것은사탄의 복음서를 쓴 거장의 잘못에 내려진 신의 판결이다따라서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얻은 평안은 기만적인 행복이라는 것이다반면어떤 이에게 이 소설은 그 자체로 반기독교적인 면모를 보이는 글으로 역설적인 해석을 덧붙일 여지도 없는 소설이다두 입장 모두에서거장의 소설은 예수와 복음을 왜곡하는 소설으로 해석된다.

 

분명 예슈아 하노츠리와 마태오 복음서와 빌라도에 관한 서술을 볼 때불가코프는 기독교에 호의를 가진 사람일 수는 있어도 진심으로 기독교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예슈아는 공포가 어른거리는 눈으로 빌라도의 매질을 두려워하는 기색을 내보이며자신이 하지 않은 말을 적고 있는 마태오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어조의 말을 내뱉는다마태오는 예슈아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그를 숭배하기는 하나 이미 예슈아의 말을 곡해하고 있다빌라도는 예슈아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덜어보려 유다를 암살한다요약하자면거장의 소설은 의도적으로 복음을 왜곡하고 있다그런 면에서 작중에 삽입된 소설을 사탄의 복음서라고 평가한 일부 정교회 학자들의 평가는 얼핏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비기독교인의 시선에서 해당 소설을 바라본다면거장의 소설은 진부할 수 있는 복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 된다복음서에 얼마나 충실하느냐의 문제를 떠나 거장의 소설을 바라본다면예수 그리스도의 무고함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복음서와 달리거장의 소설은 해당 사건의 관점을 비틀어 예슈아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여야 했던 빌라도의 죄책감을 다루고 있다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히 무결함을 증명하는 성서는 아닐 수 있어도 무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관점을 설파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적어도거장은 소설 속에서나마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볼란드가 악마라는 사실을 믿는다거장의 미약한 믿음과 구.원의 실마리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결론적으로불가코프는 종교를 탄압하던 당대 소련의 기조에도 불구하고 빌라도와 예수와 악마를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했다거장과 그 연인에게 평안을 선사하는 결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암시했다어쩌면그는 종교를 통한 사후의 구.원이 아니라면이 세상에서 살아서 구.원을 받는 길은 너무나도 좁은 문에 불과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산 사람은 불행하다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죽어서 영원한 사랑의 안식을 찾았지만마녀와 동행하기를 거부한 니콜라이 이바노비치는 매년 만월이 오면 달을 보며 울부짖는다그런 측면에서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산 자들의 비극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오며

 

나는 어째서 불가코프의 작품을 분석하는 글에 불가코프를 위한 헌사라는 부제를 붙였는가헌사란 작가가 어떤 책을 다른 사람에게 바치는 의미를 담은 글이다그렇다면불가코프는 거장의 이야기를 통해 누구를 위로하고 누구에게 이 책을 바치고 있는가의심할 여지 없이헌정의 대상은 바로 불가코프 자신이다.

 

물론모든 책은 작가 자신을 위한 헌사이다하지만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거장에게는 불가코프의 상()이 과다하게 투영되어 있다마치소설 전체가 거장 즉 그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느낄 만큼그런 면에서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과 공통의 동기를 가지고 있다자신의 진가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시대에서후대의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고 또 알아주기를 호소하는 것이다후자의 책이 자서전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거장과 마르가리타』 역시 후대의 독자에게 남기는 불가코프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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