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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독서량 자체가 떨어졌는데

이와 더불어 본의 아니게 철학.이론서 독서 비중이 높아져서...
읽었던 것도 정리하고 상기도 할겸...


참고로 존나게 주관적인 글임

만국의 철스퍼거들이여 진정하라




1. 메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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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철학계의 슈퍼?스타 사변적 실재론임

뒤에 신유물론 이야기를 할 거긴 하지만... 메이야수만 좀 따로 분리해서 적음(애초에 신유물론 = 사변적 실재론 = 메이야수는 아니니까)

메이야수 자체를 처음 접한 건 아래 논문임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457449

우연성의 필연성과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 : 퀑탱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의 사변적 실재론을 중심으로우연성의 필연성과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 : 퀑탱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의 사변적 실재론을 중심으로www.kci.go.kr


읽은지 좀 된지라 기억은 흐릿한데

우연과 필연, 실재와 상관에 대한 메이야수의 견해, 사변적 실재론의 견해를 저자가 풀어주고,

말라르메의 시인 '주사위 던지기'에 대한 메이야수의 해석을 풀어놓는 작품이었음

이 논문 읽으면서 평소 우연성 필연성에 상당히 골몰했던 바를 재확인 받는 느낌이었달까


다만 시 해석은 전제 자체가 무너져 버리는 게

한국어로 번역해버리면 말라르메가 촘촘하게 설계한 수학적-수사적 실재성이 유지되지 않고 붕괴해버리기 때문임...

아마 메이야수가 번역이란 개념에 대하여 따로 한 말도 있을 것 같은데...

물론 메이야수는 과학철학적 면모도 있어서 아마 자연을 해석하는 인간의 공통 영역으로서의 수학... 뭐 그런 것도 염두에 뒀겠다만...

적어도 시라는 형식 하에서는 안타깝게도 이 해석이 아주 제한적인 소급만을 가지는 느낌


여튼

책 자체는 의외로 읽을 만함. 흄이 제시한 당구공 사고 실험에서 시작하는데 뻘생각을 좋아한다면 골몰할 만하다.

요지는 우리는 왜 당구공이 움직일 때 그것이 아주 특정한, 예상 가능한 궤적으로 움직인다고 예측할 수 있을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반대로 우리는 당구공이 예측 불가능한 궤도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상상할 수는 없는 걸까?

대충 뭐 이런... 우리에게 명징하게 주어지는 사실에 대한 과학철학적 사고를 수반해서,

항상 우리가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과학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소설과, 우리의 과학 개념에 전혀 적용되지 않는 과학 밖 소설을 나누어 설명


이것도 평소 생각했던 바를 상기시켜서 재밌다는 거임

과학은 기본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장르인데, 또 한편 세계의 다른 면을 상상하게 한단 말임

근데 메이야수의 말에 따르면 종국에 과학소설은 그걸 다시 '우리 세계의 법칙'에 포합시키는 면모가 있음

반면 과학 밖 소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선상 바깥에서 모든 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존의 모든 전제 자체가 유지될 수 없음(전제 자체가 유지될 수 없으면 우린 그걸 어떻게 상상함? << 이게 처음의 형이상학 사고실험을 메이야수가 해명하는 까닭임)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린 과학소설이 아닌 과학 밖 소설을 통하여 기존 과학의 전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과학 바깥의 이질적인 무언가에 대한 상상을 지닐 수 있다는 그런 뉘앙스


근데 솔직히 후반에 
풀어낸 과학 밖 소설에 대한 예시는(메이야수도 약간 암시하듯) 좀 끼워 맞추기 같긴 한데...
요즘은 메이야수가 말한 바가 도리어 과학의 본질 아닐까 생각함(요즘 과학저술서도 깔짝깔짝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듦. 내가 너무 퓨어 문과라 그런 걸 수도 있음)

요지는 과학은 우리가 기존에 가진 상식적인 이해, 당연한 이해를 유지시키고, 세상을 명쾌하게 해설해주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이해가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이해, 심지어는 그 이해를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사실까지를 이해하도록 한다는 것. 이게 요즘 들었던 생각인데 메이야수 뉘앙스가 딱 그 느낌...


조만간 <유한성 이후> 읽을 듯한데, 의외로 수월하게 읽힐 듯한 느낌스



2.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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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슈퍼스타 빡빡이 푸코 아저씨임

참고로 독갤 플차를 충실히, 그리고 유연하게 따라가고 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709292

미셸 푸코 플로우차트 - 1굉장히 긴 루트같이 보이지만, 직접 해보면 그렇게 어렵진 않다고 느낄거임. 특히 2단계의 많은 부분은 발췌독임. 시간이 있는 대학생 새내기라면 이 글을 따라gall.dcinside.com

이거 상당히 유익하니 푸코 공부할 때 참고해보셈


이런 식으로 푸코 철학의 의의? 기도(企圖)?부터 파악하고 보니까,

확실히 푸코를 인용할 때 푸코의 메타사유적인 면은 다소 소거되고 좀 도식적으로 쓰이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게 됨

푸코 철학 요지는 회의주의, 탈주체주의, 총체가 아닌 국지로서의 진 추구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이러한 면모가 우리가 어떤 행동, 사유, 활동, 실천 등을 특정 가치, 즉 대의에 포합하려는 태도를 성찰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음(이 문장을 쓰고 생각해보니 성찰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도 어쩌면 어떤 실용성에 포합하려는 태도인지는 더 생각해봐야겠음)


푸코적으로(푸코주의란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담론, 주체, 권력 등을 다루는 것은 단순히 그것들 '자체'를 논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다루는 것임

그러니까 이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는데 푸코적으로 저 개념들을 재고하려면 상당히 과정적이고 맥락적인 사유가 들어가야 함

이것 없이 푸코의 개념어들만 그대로 빌려오는 건 약간 어불성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


여튼

존 라이크먼의 책 << 이거 상당히 좋은 입문서 맞는 듯

단, 하버마스가 등장하기 전까진

본인은 비판철학 ㅈ도 모르는 놈이라 진짜 후반부에 비판철학이랑 비교해서 읽을 때 좀 힘들었음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 푸코가 성찰하는 계보학, 고고학의 부차적인 맥락까지 쏙쏙 알 수 있어서 이해하는데 아주 수월하며

푸코의 핵심 저서에서는 쉽게 엿볼 수 없는 방법론 및 숨은 의도, 그리고 그 의미까지 선사해주는 책이라 아주 좋다고 봄


그리고 푸코의 맑스

플차에선 들뢰즈와 대담을 특히 중요한 부분으로 꼽고 있고

동일하게 푸코가 푸코 입으로 직접, 자신이 관철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해주는 책이라 아주 귀하다고 할 수 있음


근데 또 하나, 이거 읽으면 도리어 푸코 철학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생기게 됨

대담에서는 대담자인 이태리 맑스주의자 둣치오 뜨롬바도리랑 서로 견지가 너무 달라서 뜨롬바도리가 여러모로 얻어맞는 구도로 나오는데,

뒤에 뜨롬바도리가 '후기'라는 이름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글을 읽으면 뜨롬바도리가 푸코를 어떤 견지에서 비판하는지 보이고, 둘이 사실상 아예 다른 지점에서 얘기하기 때문에 서로 대화가 엇갈린다는 느낌임

물론 푸코가 당시에 상당히 오해되었다는 건 사실인 것 같고,

아마 그에 대한 논파로서 이 글도 가치 있겠지만


뜨롬바도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단순히 '혁명이 멈추지 않는 탓인 걸까? ㅜ.ㅜ 푸코앞에서 신세한탄이나 해야겠다...' << 이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제기된 맑스주의적 논지가 유효하지 않냐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음


그래서 푸코 철학의 전반적인 기조(특히 당시 프랑스 사회와의 상호작용적 기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고,

푸코 철학을 전반적으로 재검토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다


그리고 부록2로 실린 학생들과의 대화도 은근 재밌고

이제 콜레주드프랑스 강연록 읽어야지



3. 레비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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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현대서양철학이 자기들의 철학에 함유된 신학적 사유를 너무 많이 소거시키거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함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빌려오는 방식과 그에 대한 일종의 칭송—신학에서 철학을 구한 어쩌구—도 그렇고...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도 레비나스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하는데...


여튼 레비나스 옹의 세 저작을 읽었고

세 저작 자체가 레비나스 철학의 전반적인 면모를 좀 짚어주는 면이 있음

그래서 기초 탄탄하게 깔고 가는 느낌. 그래서 세 저작에서 이야기되는 것도 좀 비슷함


가장 중요한 전제가 있다면 뭘까? 생각했을 때 역시 주체 개념 자체에 대한 의심 또는 회의, 그리고 그 자리를 타자로 메꾸어 그것 자체를 전복하는 점이 아닐까 싶음

주체성에 대한 비판이 함유되었다는 지점에서 여러모로 다른 철학들과 교집합을 지니고,

그럼에도 최대한 주체를 어떤 객관주의적 면모에서 성찰하는 것보다는 형이상학 방법론으로, 신학적 사유를 섞어서, 타자를 향한 추동성을 위하여 세워진 점

우리가 우리 스스로 부차적인 존재로 격하될 수 있을까? 우린 다른 사람에 대하여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가? 란 전복적 질문 등...

매력적인 부분이 많은 철학자임


뭐랄까 근데 이 저작들만 읽어서는 순수하게 형이상학적이다 라고도 하기 힘든 게 강연이랑 대담집이라 그런지 레비나스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대부분 결국엔 '우리'의 이야기란 말임?

또 근데 형이상학적 틀을 벗어나서 레비나스를 적용하면 이게 정말 그런가? 싶은 부분도 있어서 이런 건 좀 더 생각할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음


다만 신학적 사유가 기초에 자리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적 영향인지, 레비나스가 시사하는, 일종의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성은 다른 철학과는 다른 독보적인 겸허성 마저 느껴질 정도로 생각할 부분이 많은 듯함


내가 아직 본격적인 철학 저서들은 안 읽어봐서 그런지 형이상학적 측면보다는 이쪽에서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세 책은 각각 강연록과 대담집이라 읽는데 비교적 수월하고

특히 필립 네모와 한 대담집인 <윤리와 무한>과 프랑수아 푸아리에와 한 대담집인 <레비나스와의 대화>는 비슷한 부분도 많아서, 하나 정도만 읽어도 무방할 것 같긴 함. 물론 서로 나오지 언급되지 않은 얘기가 나오는 지점도 있어서, 와 난 레비나스를 숭배해야만 해 << 이러면 둘 다 읽어도 괜찮음

<시간과 타자>는 레비나스 읽으면 거의 필독으로 거쳐가는 저서인 것 같고


이젠 진짜 본격적으로 두꺼운 책들 탐독해봐야지...



4. 신유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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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외투라면, 근래의 코드는 바로 신유물론일 것임

철학적인 공통점을 찾기 전에, 먼저 이 철학 전체의 제재나 기획 의도라고 한다면 이 사람들 말로 하면 '지구라는 하이퍼 네트워킹 공간에서 인간의 입지에 대한 탈상관주의적이고 객관적인 고찰' 투박하게 말하면 '지구 ㅈ됐는데 ㅈ간놈들 정신차려' << 이거라고 할 수 있음

이 기후생태적 위기라는 배경, 철학적으로는 '더는 주체 인간이란 개념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라는 기반에 있어야 신유물론이 지들끼리 말놀이하면서 으쌰으쌰 하는 철학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음

문제는 이러한 기도성이 객관성이라는 주관적인 개념 아래 다소 가려진다는 점임


어쨌든

내가 통달해서 이런 말을 한 건 아니고 지금까지 입문서인 <이 책은 신유물론이다> 하나 읽어보고(이 책은 조금 많이 비추천함),

제인 베넷도 읽어보고, 라투르한테 영향 받은(미국에서는 꽤나 영향을 준 듯한) <형식들>이라는 책도 읽고

지금은 레비 브라이언트 <객체들의 민주주의> 읽는 중이라,

사실 라투르나 하먼 같은 더 기반적이고 핵심적인 근본들은 못 읽긴 했는데... 한 번 지금까지 느낀 바만 주절주절 적어봄


신유물론 철학적 기반은 대체로 비슷한데, 일단 한 명만 꼽으라면 들뢰즈라고 할 수 있음

대부분 개념들이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재해석하며 가져왔던 개념(특히 코나투스)들과, 차이, 유동, 창발, 등... 아주 들뢰즈스러운,

왜 뭔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총체적이고 체계적이며 정합적인 '철학!!!'이 아니라, 들뢰즈 특유의 물렁물렁하고 불안불안하고 미끌미끌하고 손에 집히지 않는 'ㅊ~ㅓ~ㄹ~ㅎ~ㅏ~ㄱ'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러한 개념들이 다소 반복적으로 제시되다보니 한편으론 거기서 거기 아닌가하는 느낌마저 들기도 하는데...

또 세세히 들여다보면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는 지점도 있긴 함

음... 일례로, 권세가 가장 큰 두 계파를 제시해보면


일단 라투르파 << 이쪽이 현재로선 권세가 제일 큰 당파 같고, 일반적으로 신유물론 하면 이쪽을 더 가리키는 느낌 같음. 얘네는 아예 독립된 '개체'라는 개념 없이 '행위' 개념, 즉 모든 걸 '역학적인 운동과 영향의 연속'으로만 파악한다. 방법론적으로 형이상학적인 논리 전개보다는 궁극적인 이론 전개를 위한 사례 수집과 적용이 애용되는 듯함 + 미국 실용주의가 다분하게 섞여 있음


그리고 OOO = 객체지향 존재론. 얘넨 위랑 아예 반대인데,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독립적인 실체가 있는 객체로 파악한다. 방법론적으로 형이상학적인 사고 방식을 따라가는 논리 철학스러운 면모를 자주 선보이는 듯함


이렇듯 이 둘만 대충 붙여봐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걸, 아니 둘이 아예 대립적이라는 걸 알 수 있음

또 한편 이렇게 보니까 그냥 신유물론 자체가 노근본 용어 같기도 함


여튼

난 개인적으론 맨 앞에 설명한 메이야수 등 사변적 실재론하고 하먼 위시한 OOO가 차라리 가장 낫다고 생각하고,

미국에서 실용주의적으로 차용한 신유물론은 너무 미국 철학 특유의 안이한 시선이 묻어 나온다고 해야 하나

그런 부분이 있어서 선뜻 추천하기가 어려움


그래서 읽은 책들도 좀 추천하기 어려운데, <생동하는 물질>에 대해 조금 끄적여보면,

제인 베넷의 이론은 생기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보통 신유물론 하면 라투르 다음으로 거론되기도 하는 이론가임

논지는 이러함. 우리는 '생명'이라는 개념에 대해 재고 해야 하며, 우리와 접촉하는 사물은 모두가 우리에게 일련의 능동적인 영향을 끼친다.


읽어보고 감상은 실용주의가 가끔 사실이랑 자의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일부러 구분하지 않는데, 베넷 책이 좀 그런 느낌이 듦.

그러니까, 정말로 우리가 직시하는 현실, 또는 촘촘한 추구를 통해 제시하는 진실과, 우리가 앞으로 그렇게 해야 할 것, 우리에게 앞으로 그렇게 인식되어야 할 것을 일부러 구분하지 않음


근데 또 재밌는 건 베넷이 다른 이론들을 빌려오며 오독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임

안에서 제시되는 이론들을 해석하는 걸 보면, 베넷이 상당히 꼼꼼하게 그것들을 검토하고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근데 문제는 이게 맨앞에서 설명한 신유물론의 기도성에 의해 소위 말하는 선택과 집중을 거치면서, 신유물론 자체가 '인간의 자의성 개념을 소거하기 위해 인간이 자의적으로 깎은 딜레마적인 결과물'이 되어버림


신유물론 자체가 이걸 감안하고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함


뭔가 쓰다 보니 신유물론 까는 글 비슷하게 됐는데, 결론은

1. 신유물론? 한 번 정도는 공들여 읽어볼만 함.

2. 그치만 솔직히 철학적인 부분만을 따지자면 아주 애매할 수 있음. 그 부분에 대해선 더 생각을 해봐야 함

3. 단, 사변적 실재론은 제외. 메이야수나 하먼 등이 선사하는 사유는 제법 가치가 있다고 생각함(이런 상반된 철학 사조를 신유물론 하나로 묶는 것도 참 요상함)




여튼

좀 더 옛날에 읽은 책들도 써두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서 여기서 이만 줄임

다 쓰고 보니까 뭔가 겉도는 책들만 읽은 느낌이네...

하나씩 하나씩 좀 더 깊게 파고들어봐야겠다


다들 모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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