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프랑켄슈타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SF 소설이다. 올해도 곧 있을 할로윈을 맞아 전자책을 결제해서 읽어보았다. 어느덧 세 번째 읽었는데도 여전히 깊은 울림이 느껴지며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생명의 무게, 그리고 책임의 칼날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마성의 작품이다.


옛날에는 프랑켄슈타인을 마냥 소인배로만 보았다. 주변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죽어가고 있음에도 그는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그릇이라면 애당초에 괴물을 만들어서는 안 됐다. 당장 사람이 아이를 낳는 일에도 무한한 책임이 뒤따르는데, 하물며 자기가 창조한 존재에 대해서는 어떻겠는가? 괴물이 "당신 의무를 다해. 그러면 나도 당신과 다른 인간에게 의무를 다하지."라고 제안했을 때 나는 프랑켄슈타인보다 괴물이 더 이성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괴물의 처지가 불쌍한 것도 사실이거니와, 스스로의 사적인 호기심이 일으킨 결과가 두려워 어쩔줄 모르는 프랑켄슈타인이 한심해보였던 것이다.


지금은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나의 평가가 다소 누그러졌다. 아무튼 인류 문명의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은 호기심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이를 극한으로 밀고 나갔고 성공하기까지 했으니, 어떻게 보면 인류 전체에서도 가장 성공한 인물인 셈이다. 그 성공이 원치 않은 결과로 이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짝을 만들어주지 않았던 이유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괴물이 이성을 가졌다고 해봐야 괴물은 타자다. 프랑켄슈타인이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개별적인 이성을 가진 존재다. 그런 판국에 괴물이 하는 모든 말을 선뜻 믿을 수 있을까? 더구나 짝을 만든다는 것은 마치 생태계 교란종의 번식을 허용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 선택으로 프랑켄슈타인의 가족은 지킬 수 있어도 인류 전체를 위협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결말부를 보면 괴물의 제안이 거짓말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괴물은 복수심의 광기에 잠식당한 존재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동정심과 동경이 탑재된 생물이었던 것 같다. 이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알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프랑켄슈타인의 대응은 답답하기는 해도 나름대로 정당한 것이었다.


"광기에 사로잡혀 이성적인 존재를 만들었고, 힘이 닿는 한 그 존재의 행복과 복지를 보장하려고 했지요. 이게 제 의무였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어요. 인간에 대한 의무 말이에요. 그 의무에는 더 많은 사람의 행복과 불행이 달려 있었으니까요." 프랑켄슈타인 본인이 후반부에 남긴 자평이다. 나는 이 말이 작품의 주제를 관통한다고 본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있다. 지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사회적 기여가 모든 학문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기여만 생각하면 순수 학문을 더럽힐 수도 있다. 하지만 학문을 향유하는 존재는 어찌됐건 인간 자신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정교한 기술들만큼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모순덩어리에 흠이 많은 존재다. 그래서 인간의 선악은 정말 쉽게 뒤집히고는 한다. 발전에는 항상 그림자가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인간이 「프랑켄슈타인」의 부제처럼 '현대의 프로메테우스'가 되려면, 불을 밝히는 능력이 아니라 불을 전해준 대가로 받는 형벌을 감수하는 책임감이 더욱 중요하다. 지식을 가치중립적으로 추구하되, 그것이 일으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국 자연과학도 인간에게 봉사할 운명이므로 윤리학은 자연과학만큼 중요하다. 이를 간과하면 책임 없는 발전이 부모 없는 괴물을 낳고 창조자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일으킬 것이다. 문명과 인류가 올바른 길로 향하려면 앞만 봐서는 안 된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흘리는 것이 없는지, 자신의 발길이 무언가를 짓밟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평면적인 해석이지만, 나는 이게 「프랑켄슈타인」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라 생각한다.


기술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시대다. 어제 나는 수업 시간에 AI 시연을 보았다. '어려운 벽돌깨기 게임을 만들어 줘.'라는 문장 하나만 입력해도 정말로 아무 것도 없는 폴더에서 바로 그럴듯한 게임을 하나 만들어냈다. 보면서 감탄과 동시에 공포가 느껴졌다. 이미 AI가 사람을 대체하여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들었다. 우리는 삶의 터전을 파괴할 존재를 스스로 만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럴 때일수록 「프랑켄슈타인」이 생각난다. 겨우 밥그릇이 뺏길까봐 발전을 막는 것은 우습겠지만, 그 발전이 정작 우리의 건전한 성장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인류가 지식은 깊게, 책임감은 굳게 가져서 지성을 행복하게 사용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