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수식이나 감정적인 묘사를 배제하는 문체를 미니멀리즘이라고 한다. 카버는 이 간결한 문체를 한 층 더 극한으로 몰고간다. 그는 필요한 문장들만을 남기고 모든 문장을 빼 버린 듯 하다. 등장인물들은 단순히 사건을 관찰하고 기술한다. 감정표현은 극도로 절제된다. 이따금 다른 작가였다면 내질렀을 탄성이나 독백 또한 꾹 눌러 삼킨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은 소설이라기 보다도 기록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나 카버의 글쓰기는 단순히 그런 형식미에서 끝나지 않는다. 선물이 수취인에게 주는 감동이 그 포장지에 크게 좌우되는 것처럼, 문장은 그 내용에 크게 영향을 준다. 카버는 극도로 건조하고 감정이 절제된 문장들로 주제를 구현하고 감동을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오히려 그런 문장을 사용했기 때문에 감동이 더 극대화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굴레>에서 베티네 가족에 대한 마지의 연민은, 할리에 대한 소심한 반항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만약 마지가 시종일관 베티네 가족이 방랑하는 것이나 베티가 남편에게 끌려다니는 것에 대해 떠들었다면, 그 감동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베티네 가족이 떠돌아 다니는 것에 대한 연민을 증폭시켜 놓은 다음에, 마지가 굴레를 발견하며 떠올리는 생각은 베티네 가족에 대한 연민을 굴레에 메여 이리저리 떠돌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효과적으로 연결시킨다.
표제작 <대성당>에서는 맹인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나'가 맹인과 같이 대성당을 그리는 과정에서 맹인을 이해하고 연대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써 놓는다. 아내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맹인에게서 못마땅함을 느끼던 '나'가 결국 맹인을 위해 대성당을 그리며 맹인과 하나가 되어 맹인에 대한 진정한 앎을 얻게되는 과정을 담백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는 필연적으로 나오는 말이 아닐까 싶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결이 다른 감동인데, 생각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생일날 교통사고를 당한 아이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이는 결국 죽는다. 그리고 그 아이의 부모는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던 빵집에서 구1원을 찾는 이야기다. 감정이 절제되던 문장이 조금만 그 절제력을 놓아도 어마어마하게 감정이 증폭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편이 아닌가 싶다. 빵집 사장의 계속된 전화로 긴장감을 고조해서 그 긴장감을 그대로 감동으로 승화시키는 이 단편은, 카버의 문체와 작품의 구조가 아주 잘 맞아 떨어지는 한 예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문장으로 카버는 감동만을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깃털들>에서는 음험한 조롱이, <열>에서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기회와 체념의 정서가, <내가 전화를 거는 곳>에서는 멀쩡한 가정을 부숴놓고 남의 가정을 보고 다시 가정을 탐하는 남자의 이기심을 묘사한다. <보존>처럼 끝도 없이 암울한 단편도 있다.
극도로 절제된 문장으로 우울에서 연민, 조롱에서 이해 등 여러 정서와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데 성공한 카버는 선물에 맞지 않는 포장지로 독자에게 적절한 정서를 전달하는데 성공한 듯 보인다. 그가 택한 소재들과 문체가 잘 조응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탁월한 표현력을 평가절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말 대단한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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