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0aa8d922eaed0aa360b6e9f829e22534f01d7140b88c315516df88b739099ddd231bc5940f3c0a664843af621bd5641893a7aafcb27153b3a390ea22244b42a337c321f65fafa47ee6

(구이도 레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 비장함보다 육체미가 부각되는 그림 속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화자와 작가의 이상이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생애, 특히 그의 죽음은 불쾌하리만치 엽기적이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정말로 아름답다. 그의 삶과 그의 예술 사이의 괴리는 오직 미시마 유키오, 아니 히라오카 기미타케의 인격적인 본모습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일찍이 미시마는 자신을 해석하는 데 보탬이 될 자전적인 작품을 내놓았으니, 그것이 그가 스물네 살에 쓴 「가면의 고백」이다.


읽으면서 여러모로 충격을 받았다. 동성애에 관한 탐닉적인 묘사가 (불쾌하기도 했지만) 금서를 읽는듯한 스릴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자신의 성향에 대해 논리적인 설명을 찾으려 애썼던 흔적이 돋보인다는 점이었다. 스물네 살에 이런 성찰이라, 문득 나는 스물네 살에 뭐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생애와는 별개로 천재 예술가는 떡잎부터 달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면의 고백」의 화자와 실제 미시마 유키오는 엄연히는 다른 인물이라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둘은 별개일지 몰라도 화자가 미시마 자신으로부터 나온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화자와 저자를 일일이 구분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 그냥 '미시마'로 통칭하려 한다.


미시마는 연약한 아이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그는 강렬하게 타오르는 생명력을 동경했던 것 같다. 특히 병약한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던 육체미에 대한 집착이 컸다. 다부진 몸은 그만큼 굳건한 생명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장렬하게 소진하는 열정 또한 그의 이상이었다. 병으로 인해 누구의 위해도 없이 스스로 쇠락해가는 몸은 비참하고 장렬하게 죽는 모습을 동경하게 만들었다. 물론 일반인의 기준으로 볼 때 미시마의 콤플렉스는 병적이다. 주변에 그런 생각을 하는 녀석이 있다면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일반인이 될 수 없던' 조건을 타고난 미시마에게는 정말 간절한 바람이었을 따름이다. 그래서 미시마는 일반인을 닮기 위해 또래들, 특히 남성성을 (좋지 않은 의미로도) 보여주는 또래들을 모방한다. "여기서는 내가 한 사람의 사내아이기를 누구도 말하지 않는 가운데 요구하고 있었다. 마음과는 동떨어진 연기가 시작되었다. 남의 눈에 연기로 비치는 것이 나로서는 본질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고, 남의 눈에 자연스러운 나로 비치는 것이 곧 연기라는 메커니즘을 그 무렵부터 나는 희미하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의 이상이 철학적인 차원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생명력이 결여된 남성으로서 그는 생명력이 풍족한 남성을 이상으로 여겼다. 그런데 마음뿐만 아니라 몸 또한 거기에 맞춰져서, 성욕까지 건장한 남성을 향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미시마는 모순을 떠안게 된다. 일반적인 남성들을 닮고 싶어서 행동은 분에 맞지도 않는 마초스러운 것을 추구하는데, 정작 정욕은 남성을 향하기 때문에 도무지 일반적인 남성들과 같아질 수 없게 된 것이다. 즉 일반인을 따라 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나니 오히려 가면 아래의 맨얼굴은 점점 일반인과 멀어졌다. 바다에서 우수에 찬 마음으로 씨를 뿌리는 장면은 「가면의 고백」의 수많은 기괴한 환상들 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음험하고 불쾌한 장면이지만, 미시마 본인에게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방황하며 배출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니고 싶다는 격렬하고도 불가능한 욕망.'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사회적인 수완을 통해 극복되는 듯 보였다. 단순히 터프한 태도를 연기했을 뿐이지만 거기서 동경이 따라오니, 미시마 자신마저도 연기로 만든 자아와 실제 자아를 혼동하게 된 것이다. "우월감의 일부는 자기도취가 되어 나 자신이 남들보다 한발 앞섰다고 생각하는 명정(酩酊) 상태가 되고, 이 명정이 다른 부분보다 발 빠르게 깨어나면 다른 부분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성급하게 모든 것을 깨어난 의식으로 계산하는 실수를 범하기 때문에, '나는 남보다 앞서 있다'라는 명정 상태는 '아, 나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사람이야'라는 겸허함으로 수정되고, 그것이 오산인 덕분에 '그렇고말고, 모든 점에서 나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인간이야'라는 식으로 부연된다. 마지막에는 '다른 애들도 분명 다 그럴 거야'라는 억지스러운 결론이 나오고, 착란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의식이 여기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이리하여 나의 자기 암시가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꿈은 없다. 소노코와의, 연애라고 부를 수나 있을지 모를 실험적인 로맨스는, 결국 기만의 연쇄를 완전히 박살냈다. 결국 미시마는 사랑이, 특히 몸의 열정이 소노코를 포함한 여성들에게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편 전쟁통에서 많은 '일반적인 남자들'이 희생되는 와중에 미시마는 병약한 몸 때문에 징집을 피한다. 그러나 미시마는 죽음을 향해 스스로 나아가는 군대를 동경해왔음에도 복무 부적합 판정이 내려지자 미소를 참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내심 그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남성의 비장미를 추구하던 그의 철학을 몸과 감정이 배신하는 순간이었다. "고통은 이렇게 고하는 것이었다. '너는 인간이 아니다. 너는 남과 섞일 수 없는 몸이다. 너는 인간이 될 수 없는 기묘하고 서글픈 생물이다.'"


「가면의 고백」은 다소 미묘하게 끝난다. 이상과 현실의 극복할 수 없는 괴리를 찾은 미시마, 그리고 미시마와의 못다 한 로맨스를 아쉬워하며 일탈을 내심 그리면서도 죄악감에 어쩔 줄 모르는 소노코가 나온다. 마치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의 결말을 연상시켰다. 길을 잃었다는 것만 나올 뿐, 앞으로 길이 어디로 향할지 암시조차 없다. 하기야 없는 게 당연하다. 스물네 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의 갈피를 이제 잡은 사람이 어찌 앞을 내다볼 수 있겠는가.


나는 처음에 미시마를 역시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읽을수록 오히려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나도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했고, 운동신경이 너무도 부족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신체의 부족은 몸보다 마음에 더 많은 고생을 시켰던 것 같다. 체육시간에 축구 팀을 짤 때 마지막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다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위바위보에서 패한 주장에게 마지못해 손가락질을 받을 때, 군대에서 남들은 가뿐히 하는 동작을 해내지 못할 때, 남들을 보며 내가 얼마나 '내가 나 자신이 아니기를' 바랐는지…… 그래서 남들처럼 행동하려고 중학교 때는 일부러 또래 남자애들이 쓰는 다양한 욕을 주워듣고 따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입만 거칠어졌을 뿐, 심성은 여전히 겁이 많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이런 내 모습을 확실히 혐오하기도 했다. 미시마는 몸까지 극단으로 나아가서 문제가 됐을 뿐, 나와 근본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평범한 이상과 비범한 자아 사이의 투쟁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며, 누구도 책임져줄 수 없다. 남들과 닮는 것에도 나름의 각오가 필요하다. 차라리 가면을 벗고 솔직해지라는 조언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말은 쉽다. 결국 남들과는 다른 외계인으로 평생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디 쉬울까. 결국 사람들과 살려면 내가 아니어야 하는데, 그러길 바랄수록 오히려 남들과 다른 자신을 더욱 뚜렷이 발견하게 된다. 슬픈 쳇바퀴다.


미시마는 정작 시간이 지난 뒤에 보디빌딩에 심취하고 언행도 실제로 강해진 듯 보인다. 어딘가 웃기기는 하지만 아무튼 적당히 근육이 붙은 채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따라 한 화보를 찍기도 했고... 이걸 보면 언젠가는 길이 열린다는 뜻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시마가 최후에 선택한 비이성적인 죽음은 결국 영웅적인 남성이 되고 싶었던 갈망을 극단적으로 실현한 꼴에 불과했다. 어쩌면 미시마는 보디빌딩과는 별개로 변치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단 군에서 나왔으니 이제 체력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낄 일은 그다지 없다. 살은 많이 빼야 하겠지만. 하지만 이미 인간관계가 좁을 대로 좁아서 나는 지금까지도 나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심심치 않게 느끼고는 한다. 나도 언젠가는 미시마처럼 아예 변신을 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다만 남들을 모사한 가면과 닮고 싶어 얼굴에 칼을 댈까 고민하는 일은 평생토록 할 것 같다.


「가면의 고백」을 통해 미시마를 이해하려 했는데, 오히려 나를 돌아보게 됐다. 자신의 부족함에 질려 자신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었던 것이 나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좀 얻었다. 어쩌면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세상 자체가 가면무도회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것도 공상일 뿐, 나는 만인이 어떻다고 말할 수 있는 표준적인 인간이 절대 아니다. 그냥 내 삶을 살며 내 삶에 괴로워하고 내 삶 위에 꿈을 덮는, 초라한 남자일 뿐이다. 참으로 씁쓸한 발견이다. 어쩌면 미시마의 다음 작품에서 나는 다시금 나를 발견하고 무언가 길을 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