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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출간 예정이라고 한 뒤로 반년 넘게 출간 안 해서 애타가지고 출간되고 거의 바로 삼ㅋㅋ
첫 수록작인 <마장전> 읽어봤는데 너무 내 취향이었어
이게 박지원의 인간관계 철학이 담긴 10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소설인데 표현 맘에 드는 것도 많았고 생각해볼 만한 구절도 많았어
박지원 입문 이걸로 했는데 시작이 좋다

귀에 대고 소곤거리는 말은 올바른 말이 아니고, 남에게 누설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며 당부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우정 깊은 친구가 아니며, 우정이 깊으니 얕으니 따지는 말을 하는 이는 알찬 친구가 아니다. (11p)

군자는 세력과 명예와 이익 세 가지를 숨기고 입 밖에 꺼내지 않아. 그런 지가 꽤 오래야. 내가 일부러 그런 진실을 숨기고 말했건만 너는 잘도 알아차렸구나. 너는 남과 사귈 때 남이 잘하는 점을 칭찬하지 말아. 잘한다고 이미 알려진 것을 칭찬하면 심드렁하게 여겨 칭찬하는 효과가 없어. 아직 하지 못한 일을 일깨워 주지도 말아. 곧 하려고 했던 일을 말하면 그 사람은 맥이 확 풀려.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는 누군가를 제일 잘한다고 칭찬해선 안 돼. 제일이란 말은 그 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뜻이라 좌중이 썰렁해지며 다들 기운이 꺾여 버리거든.
그러니 친구 사이에서 처신하는 데도 기술이 있어. 남을 칭찬하려거든 먼저 드러내 놓고 질책부터 하고, 친근함을 표현하려거든 노여움을 먼저 표현해야 해. 남과 친해지려거든 옴짝달싹 않고 선 채로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부끄러움을 타는 듯이 되돌아서. 남에게 내 말을 믿도록 하려거든 먼저 의심을 품도록 한 다음 기다려. 용맹한 대장부는 슬픔이 많고, 아름다운 여인은 눈물이 많아. 영웅은 울기를 잘하기 때문에 사람을 움직이지. 무릇 이 다섯 가지 기술은 군자의 은밀한 권모술수이자 영원불변한 처세의 법칙이지. (14~15p)

잘한 일을 두고 떠벌려 칭찬한 다음 질책하면 그보다 더한 칭찬이 없어. 노여움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고, 깊은 정은 꾸지람에서 나오는 거야. 집안사람에게는 가끔 지나치게 엄해도 나쁘지 않아. 더할 나위 없이 친한 사람에게 거리를 한결 더 둬 보면 그보다 더 친해질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더할 나위 없이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의심을 품도록 해 본다면 그보다 더 믿을만하고 가까워질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술은 거나해지고 밤은 깊어서 너나없이 모두 졸고 있을 때 말없이 바라보면서 남은 술기운을 빌려 구슬픈 속내를 드러내면 가엾게 여기며 공감하지 않을 친구가 없어. 그러니 친구를 사귐에는 상대를 이해하는 것보다 귀한 게 없고, 우정의 즐거움에는 상대와 마음을 나누는 것보다 나은 게 없어. 토라진 사람의 화난 마음을 풀고, 불평불만이 쌓인 자의 원한을 누그러뜨리는 데는 눈물보다 빠른 게 없지. (15p)

사람과 사람이 사귀는 일에는 둘 사이를 가로막는 틈이 있다. 연나라와 월나라처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여 틈이 있지는 않고, 산과 들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고 하여 틈이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무릎을 바짝 대고 앉거나 한 자리에 붙어 앉았다고 하여 친밀한 사이도 아니고, 어깨를 툭툭 치거나 소매를 바짝 붙잡고 다닌다고 하여 뜻이 잘 맞는 사이도 아니다. 친밀한 사이에도 틈은 있다. (17p)

진여와 장이는 둘 사이가 너무도 친밀하여 작은 틈도 없었다. 그러나 둘 사이에 틈이 한 번 벌어지자 아무도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틈을 좁힐 수 없었다. 그러니 소중히 여길 것도 틈이고, 두려워할 것도 틈이 아닐까? 아첨도 틈을 비집고 들어가 비위를 맞추고, 참소도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사이를 떼어 놓는다. 그러니 남과 잘 사귀는 사람은 먼저 그 틈을 잘 활용하고, 남과 잘 사귀지 못하는 사람은 그 틈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 (18~19p)

남의 뜻에 영합하고 아첨하는 데도 기술이 있다. 자세를 가다듬고 외모를 단정하게 하여 점잖게 말하며, 명예와 이익에 초연하고 교유를 맺을 뜻이 없는 투로 자연스럽게 아첨하는 것이 최상의 아첨이다. 그다음은 간곡하게 바른말로 심경을 밝히고 그 틈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뜻을 전달하는 것이 버금가는 아첨이다. 말발굽이 뚫어지도록 찾아가고 방석이 닳도록 모시고서 무슨 말을 하나 입술만 쳐다보고 낯빛의 동향을 살피면서 무슨 말을 하든 좋은 말이라 치켜세우고 무슨 짓을 하든 잘했다고 칭송한다. 상대방은 처음 듣고는 기뻐하나 오래 들으면 도리어 싫증을 내고, 싫증을 내다가 비루하게 여기고, 끝에 가서는 자기를 가지고 논다고 의심하니 이것이 가장 나쁜 아첨이다. (20p)

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