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오늘날 희랍 철학자들의 대표격이자, 더 나아가 철학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철학자들의 대표답게 아테네에서 분탕질하다가 결국 영차 당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어째서 죽임을 당했을까? 그리고 그가 그리도 유명한 까닭은 무엇일까?
기원전 469년, 소크라테스는 석공 소프로니스코스의 아들로 태어난다.
크산티페와도 결혼하고 424년의 델리온 전투에서 중무장보병으로 참여한 것을 보면, 나름대로 잘 먹으면서 살고 있었다.
분명 모든 게 괜찮았었다.
"너는 「인력」을 믿나?"
그의 친구 카이레폰이 델포이 신전에 가, 이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마법의 소라고동님,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예요?"
"······소크라테스."
이 질문에 소크라테스는 뭔가 오류가 있는 것이라 여기며, 똑똑하다고 알려진 사람을 찾아가 논박을 한다.
하지만 그들도 '시시하긴' 마찬가지였고, 결국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그 인물임을 받아들이고, 무료로 신의 뜻에 따라 좋은 말씀을 전하게 된다.
결국 원래도 거덜난 얼굴에 이어, 거덜나는 집안..!
사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젊었을 적에 자연철학 공부하고, 지금도 프로디코스나 아스파시아, 콘노스 등한테서 강의도 듣는 등, 원래부터 싹수가 노랬었다.
암튼 소크라테스는 이제 아테네의 분탕으로써, 분탕질을 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이에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평소 아니꼬왔던 꼰대들이 논박을 당하는 모습에 반하며, 그를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그가 보였던 정의(正義, 定義) 사랑꾼으로서의 모습에 젊은이들은 감회되고, 이를 따라하기에 이른다.
안 그래도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문에 짜증나 죽겠는데, 분탕 소크라테스와 그의 패거리의 등장은 아테네 시민을 빡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스파르타에 호의적이고, 신령스러운 게 말을 건다는 사이비에다, 분탕들을 양산하고, 알키비아데스와 크리티아스 등의 호감 스택으로 인해 멜레토스 등에게 기소를 당한다.
그래도 이걸로 사람 다는 건 좀 그랬는지 아테네인들은 벌금형으로 시마이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갑자기 소크라테스가 그새를 못 참고 분탕질을 한다.
대충 비유하자면 자신은 현충원에 묻힐 자격이 있으며, 국가유공금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발언에 아테네인들은 괘씸죄로 독당근즙을 먹는 사형을 내린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전해진다.
크세노폰은 그가 사형을 택한 이유가 늙어서 오락가락하기 전, 죽으려 한 것이라 설명하고, 플라톤은 그가 정의 사랑꾼으로서의 모습을 보인 것이라 설명한다.
암튼 결국 399년, 소크라테스는 독당근즙을 마시고 죽는다.
이에 많은 제자들이 분개했고, 급기야 플라톤은 아테네에 학을 떼고 아테네를 떠나기에 이른다.
제자들이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그를 그리워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런데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사람들 중에서 덕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모두 덕을 돌보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셨던 그분을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무엇보다도 그리워한다.
또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에게 헌정하며, 파이돈을 이렇게 마무리짓는다:
이게, 에케크라테스, 우리 동료인 그 사내의 끝이었습니다. 우리가 겪어 본 그 당시 사람들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유달리 가장 현명하며 가장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그 사람 말입니다.
아테네인들의 사형에도 불구히고, 제자들에 의해 소크라테스의 의지는 계속해서 이어진다.(계속?)
이런 소크라테스의 삶과 사상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지금 당장 소피스트 단편 선집 사야겠지?
오류 지적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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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보고 독갤에서 분탕치기로 했다
2편은 플라톤의 암컷노예타락 이야기임?
한 이틀뒤에 실베에서 볼거 같군
글 너무 재밌네요 특히 첫짤은 씹 ㅋㅋㅋ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아... - dc App
독당근(강하다)
재미있어요 유익해요 더써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