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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반열에 들었음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이 서서히 찾지 않는 소설들이 있다. 그러한 현상의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 또는 당시에는 새로운 소설로서(또는 시간이 지나고 재발견되면서) 그 가치가 인정받았으나 후대의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베껴지고 재사용되면서 더 이상 신선하지 않아서.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작품의 선구자적 모습은 잊혀지고 평가가 깍이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마련이다. 《마담 보바리》 또한 그러한 류에 속한 소설 중 하나가 아닐까.

이전에 《마담 보바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라면 '더럽게 재미없는 소설'이 전부였다. 주위 친구들부터 시작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사실주의 소설이어서 실감나는 묘사가 인상 깊긴 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지루하기 그지없다. 고전이라는 의의말고는 큰 의미가 없는 듯."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고 추천을 받는다해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나 오웰의 책에 비하면 우선순위가 밀리는 작품이었다.

사실 그 평가 그대로 《마담 보바리》의 플롯은 뛰어나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특히 온갖 반전과 트릭에 중독된 현대 독자들이 보기엔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자그마한 불륜 사건 정도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나 이야기라는 요소는 소설 평가의 가장 뒤에 위치해야한다는 입장에서(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의 문장을 보려하지 않고 그 뒤에 펼쳐진 파편적인 스토리라인만 따라가는 것은 난 문제있는 감상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보면서 줄거리만 정리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마담 보바리》가 가진 플롯의 약점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담 보바리》는 사실주의 문학이다. 그럼에도, 플로베르의 글쓰기는 발자크의 서술적 글쓰기와 큰 차이가 난다. 등장인물들과 사건을 부각시키기 위해 발자크가 묘사에 공을 들였다면 플로베르의 묘사는 사건과 인물을 세밀하고 기다란 문단 속에 용해시켜버린다. 소설의 모든 요소들이 일상이라는 단순하고 가벼운 개념에 종속되는 것이다. 엠마가 불륜을 저지르고 빚을 탕감하기 위해 몸부림친다해도 새들은 지저귀고 바람은 불어온다. 소설 속 장면들은 연극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소설적인 장면이 된다.

계속해서 발자크와 비교해보자. 《고리오 영감》에서는 모든 인물이 행동을 하고 대사를 내뱉는다. 이들은 조용히 있을 틈이 없다. 반면, 《마담 보바리》에서는 대사의 비중이 극도로 적어진다. 사건은 단순한 문장으로 끝나버리는 대신 그 주위를 둘러싼 환경의 조용한 변화가 독자에게 다가온다. 플로베르의 세밀한 환경 묘사는 소설에 불필요한 문장들이 아니라 소설의 일상성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마담 보바리》는 소설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뛰어난 성취를 한 작품이다. 플로베르 이후 작가들은 자신들의 소설들에서 인위성을 지우고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부각하는데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흐름은 후대 소설들의 가장 주요한 경향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조류가 몇십년이 지난 현재 여전히 강세이고 거의 진리에 가깝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불만이긴 하나 선구자로서 그러한 미래까지 전부 어찌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뭐 누군가는 이 글보고 아닌데! 보바리 쓉꿀잼이었는데! 할 수도 있겠지만 난 내 주위 사람들 의견만 생각하고 쓴거니 딴지 안받을겨. 여담이지만 이거 여름에 읽는게 지리는거 같다. 소설 분위기상 계속 여름인 듯한 느낌을 받아서(뭐 실제로는 몇 해가 지나지만) 더운 여름날 매미소리 들으면서 읽으니 문장에 계속 몰입되더라. 스토리는 그저 그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