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소설은 에마가 죽고나서 조금 더 진행된 후 끝나게 됨. 약제사가 훈장 받는 결말로. 약제사는 소설의 가장 중심 흐름에서 중요한 인물은 아니지만 이상하리만치 비중이 많음.
생각해보면 에마가 온갖 불륜을 저지르며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거에 비해 이 약제사의 저속한 행동들은 사소한 실수 정도로 넘어가게 됨. 다른 비슷한 인물들도 많음. 보바리 집에 계속 찾아오는 상인이라던가. 에마 이상으로 속물적이고 이기적이며 비난 받아야 할 인물들은 많은데 이상하게 소설을 읽은 사람 중에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음.
플로베르가 노린 것인가. 소설을 읽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주변 인물들은 냅두고 에마만을 붙잡은 채 비난하는 독자들을 미리 상정하고 소설을 쓴건가. 소설 속 모두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에만 정신 팔린채로 주위를 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행동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결국 에마는 운이 없었을 뿐이 아닌가.
그렇다면 《마담 보바리》라는 소설은 일상의 부각과 더불어 자기 생각 안으로 끊임없이 매몰되는 태도를 드러내려는 의도에서 탄생했을지도 모르겠다.
마담 보바리의 의의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스타일임. 실제 사건을 모델로 해서 신문기사 찌라시에나 나올 법한, 유부녀가 불륜을 거듭하다가 빚에 몰려 자살한다는 치정 사건을 어떻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집필할 수 있을 것인가, 플로베르는 극한까지 도전해 본 것이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지. 플로베르 이후로 문학의 화두는 무엇을 쓸 것인가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로 옮겨 가기 시작하고 이게 모더니즘을 낳게 되는 것임. 그래서 플로베르를 모더니즘의 아버지로 보기도 함. 횽이 밑에 쓴 마담 보바리 감상문도 읽어 봤는데 도움이 되라고 남겨 봄
모더니즘이 플로베르 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도 있네 ㄷㄷ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거의 뭐 돈키호테에서 산초는 맨날 두들겨 맞는데 멀쩡한거 보니 비현실적이다라는 비판이랑 뭐가 다르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