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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삶과 문학은 분리할 수 없는 존재다. 작품과 작가는 따로 봐야 한다는 분리론자들조차 작가의 삶과 작품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그 정도가 심해, 작가와 작품을 분리하는 순간, 그것은 불완전해진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여긴다.


 작품의 주인공은 거장이다. 하지만 실질적 주인공은 악마들이며, 그것도 부정한다면 마르가리타나 빌라도다. 거장 자체의 비중은 굉장히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장과 불가코프를, 빌라도를 엮는 순간, 거장은 실질적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불가코프의 삶을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불가코프의 삶은 위태로웠다. 그는 백위군으로 참전해 입지가 좁았고, 계속해서 살아남았음에도, 스탈린의 체제 속에서 그의 작품들은 검열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 속에서도 비밀리에 쓴 소설이 거장과 마르가리타다. 그는 출판하지 못했고 그저 가슴속에 묻어 두었을 뿐이다. 이는 작가의 생매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빌리도는 작품에서 중간중간 나오는 거장 소설 속 인물이다. 그는 예슈아가 아무 죄가 없음을 알고 있었으나 그를 사형시켰다. 그는 그것을 후회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그저 달만을 바라볼 뿐. 거장은 자신의 소설이 걸작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설은 소련의 정서에 맞지 않아 무시를 당했고, 그는 소설을 불태우고야 만다. 그는 신고를 당해, 정신병원에서 달을 바라볼 수 있을 뿐.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거장과 불가코프는 자신의 죄 없는 작품을 죽여 버렸다. 빌라도는 죄 없는 예슈아 하노츠리를 죽였다. 거장과 빌라도는 달을 바라본다. 이것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볼란드와 그의 무리는 이런 소설의 인물들을 해결해줄 열쇠다. 다만 그들은 신도 아니며(오히려 악마다!), 선하지도 않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존재이기에, 비로소 그들을 구1원할 수 있다. 그들은 불가코프의 염원을 말한다.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마르가리타는 거장과 볼란드를 잇는 열쇠다. 그녀는 볼란드를 통해 거장을, 그의 소설을 구1원한다. 다만 이는 그녀가 마녀가 되어야만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도스토옙스키적인 눈물겨운 구1원 서사가 아닌 것이다. 이는 어쩌면 불가코프의 냉소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소설은 이런 판타지가 아니고서야 이룰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웃음. 하지만 그럼에도 불가코프는 원고를 계속해서 썼다. 그 조그만 희망에 기대며. 결국 자신의 소설 속 거장이 구1원받고, 빌라도가 구1원받는 것처럼. 그리고 불가코프의 사후, 그의 소설이 불태워지지 않고, 비밀리에 유통되기 시작한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살아남아 불가코프의 희망을 이룬 것이다. 베헤못이 도스토옙스키는 불멸이라 했던가?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이 기억되는 한, 그의 소설은 불타지 않고, 불가코프는 불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