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아아 너는 너무 가벼워 껴안을 수가 없어
육십억 인구를 담은 무거운 지구가
저 암흑 천지 속
스쳐가는 행성을 향하여 가볍게 손짓하듯
이별의 가장 무거운 슬픔 속에서 끄집어올린 가장 가벼운 손짓
내장을 가득 담은 내 무거운 슬픔이
널 만나 눈빛만은 그래도 가볍게 흔들어주듯
파르르 떠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깃털 한 닢
못 떠나 못 떠나 바람 공중에 떠오르다
다시 내려앉고 다시 떠오르는
한없는 숨막힘의 머리카락
억울하게 뿌리쳐져 가장 땅 깊은 곳
그곳, 암장의 지옥에 묻힌 내 혼령이
서늘하게 피워올린 헐떡이는 목울대
숨막힌 내 가슴 밖에서 저 혼자 휘날리는 옷고름
팽팽한 밧줄에 묶인 검푸른 죽지
아아, 너는 너무 가벼워 껴안을 수가 없어
핏덩어리 시계
내 가슴속에는 일생을 한번도
쉬지 않고 뚝딱거리는 시계가 있다
피를 먹고 피를 싸는
시계가 있고, 그 시계에서 가지를 뻗은
붉은 줄기가 전신에 퍼져 있다
저 첨탑 위에 시멘트 시계를 둘러싼
줄기만 남은 겨울 담쟁이처럼
나는 너의 시계를 한번도
울려보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도
내 핏덩어리 시계를 건드리지 않았다
참혹한 시계에게도 생각이 있을까
백년은 짧고 하루는 길다고 누가 나에게 가르쳐준 걸까
태양 시계를 쏘아보다 기절한 적도 있지만
바닷속으로 시계를 품은 내 몸통을 던져버린 적도 있지만
어떤 충격도 어떤 사랑도
이 시계를 멈추진 못했다
각기 출발한 시각이 다르므로
각기 가리키는 시각도 다른 우리 식구 셋이
식탁에 둘러앉아 묵묵히 시계에 밥을 먹이고 있다
우리 중 누구도 시계를 풀어
식탁 위에 놓지 않았다, 아직
아아, 안간힘 다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너의 귀에 대고 말해본다
네 시계까지 들리라고, 네 시계를 울리라고
큰 소리로 말해본다
그러나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오후 세시의
뚝딱거리는 말, 정말일까?
우리는 우리의 시계까지 들어가본 적이 없다
시계 밖으로 일진 광풍이 일자
겨울 담쟁이 붉은 줄기들이
우수수 몸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내 눈에 눈물 고인다
잠시만이라도 내 시계 바늘을 멈추어볼 수 있니?
이 바늘 없는 시계를 네 품에 안을 수 있니?
네 가슴속에 귀를 대보면
핏덩어리 시계 저 혼자 쿵쿵 뛰어가는 소리
시간 맞춰 잘도 울린다
火葬
우리 몸 중 물 4분의 3 이상
그것 모두 슬픔
火葬하면 내용 다 증발하고 남는 가루 조금
겨우, 요것이 내 삶의 형식이었더란 말이냐
네가 나의 온 생애를
온 생애의 구조물을
네모난 나무 상자에 담아들고
산에서 강에서
마구 뿌리는구나
마구 뿌리는구나
(내장을 다 꺼내고
박제를 만들 듯
온몸의 물기 다 짜낼 수 있다면
이 무거운 슬픔 사라질까)
내가 달을 비춘다
내가 달을 비춘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향하여
그도 열심으로 달을 비춘다
낮은 곳에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생명 가진 것들이
온몸으로 푸르름 다해
이 낮은 땅에서
저 높은 달을 비춘다
안 보이는 지구 밖
세상에 떠다니는
완벽한 죽음의 얼굴을 향하여
온 생명 다해 빛을 퍼붓는다
머리를 밤하늘 향해 높이 쳐든 채
코끼리 부인의 답장
네가 보내온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코끼리 한 마리 풀어보낸다
얼마나 증오가 깊어야
두 눈동자 사이
미간에서 팔이 돋아나
통나무 둥치 같은 것
마구 감아올리게 되는지
맷돌 같은 어금니로 무시무시한
웃음을 갈아 삼키면서
탱크처럼 아무거나 밟아 터뜨리고
꿈틀거리는 것이면 무엇이건
감아올리게 되는지
얼마나 절망이 깊어야
몇날며칠 머리를 받치고
눈물을 받던
잿빛 베개가
두 귓가에 들러붙어 펄
렁거리게 되는지
네가 보내온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사방에서 날아오는 소문의 화살이
귀찮아 죽겠다는 듯
두 베개를 연신 펄렁거리는
코끼리 한 마리 풀어보낸다
코끼리 발자국 닿을 때마다
글자들이 마구 지워진다
다시 또 얼마나 숨 막고 기다려야
앙다문 입술 밖으로 불현듯
불멸의 상아가 치솟게 되는지
글자들의 숲속에 구멍 뻥뻥 뚫린다
이제 눈물 방울 얼룩진 편지를 찢어버리련다
그리고 창문 열어 코끼리처럼 딱딱하게
들어찬 잿빛 연기도 날려보내련다
아, 그러나 이 뾰족한 상아를 입가에 매단 채
어떻게 거리로 나가지?
비에 갇힌 불쌍한 사랑 기계들
화가가 세필을 흔들어
자꾸만 가는 선을 내리긋듯이
그어서 뭉그러지려는 몸을
자꾸만 일으켜세우듯이
뭉개진 몸은 지워졌다가
또다시 뭉개지네
카페 펄프의 의자는 욕조처럼 좁고
저 사람은 마치 물고기 흉내를 내는 것 같아
입술 밖으로 퐁11퐁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네
저 사람은 마치
비 맞은 개처럼 욕조마다 붙은
전화기를 붙잡고 혼자 짖고 있네
전화기는 붉은 낙태아처럼 말이 없고
나 전화기를 치마 속에 감추고 싶네
나는 내 앞에 있으면 좋을
사람에게 말을 거네
—한번만 다시 생각해봐요
더러운 걸레 같은 내 혀로
있으면 좋을 그 사람의
젖은 머리를 닦네
탐조등은 한번씩 우리 머리를 쓰다듬고
나는 이제 몽유병자처럼
두 손을 쳐들고
물로 만든 철조망을 향해
걸어나가네
쇠줄에 묶인 개처럼
저 불쌍한 사랑 기계들
아직도 짖고 있네
참혹
그날도 여전히 백지 위에 도장은 빵빵 찍혔고 그날도 여전히 술잔은 채워졌다 비워졌고 여자들은 치마를 끌
어내렸고 이 손 좀 치워요 소리질렀고 그날도 여전히 차창을 열고 그는 침을 칙 뱉었고 의자는 빙빙 돌았고
색색가지 넥타이들은 깃발처럼 펄럭였고 9시 뉴스는 59벌의 흰 와이셔츠를 보여줬고 구두 닦는 아이들은
구두에 침을 퉤퉤 뱉어 광을 내었고
그녀는 적군의 아기를 가진 그녀는 낮잠만 자는 그녀는 배가 자꾸만 불러오는 그녀는 가슴이 커져오는 그녀
는 아무도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녀는 슈퍼마켓에 갈 수도 없고 극장에 갈 수
도 없고 반상회에 갈 수도 없는 그녀는 머리를 깎인 그녀는 조리돌림을 당한 그녀는 아무도 집에 오지 않는
나날을 견딘 그녀는 만삭이 되어 눈동자만 누우처럼 커다래진 그녀는 아기가 나오려 하자 25층 꼭대기로 올
라간 그녀는
누우 한 마리 25층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동물의 세계 카메라는 사자에 쫓기는 누우 한 마리를 쫓아간다
누우는 새끼를 낳다 사자떼에 쫓기고 말았다 어미의 몸 속에서 머리와 앞다리 두 개를 내놓던 새끼 누우는 태
어나다 말고 놀라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스스로 죽은 새끼를 자궁에서 끌어내지 못하는 누우는, 손이 없는
누우는 죽은 새끼를 반은 자궁 속에, 반은 몸 밖에 매단 채 온 들판을 헤매다닌다 이 죽은 새끼를 꺼내주세요
가다간 쓰러지고 다시 쓰러진다 땡볕의 들판은 죽은 새끼를 금방 썩게 한다 이미 누우떼들은 강을 건너간 지
오래, 혼자 남은 어미 누우의 눈이 점점 커진다
아직 날개 환상통 같은 시집은 안 읽어봄
전체적으로 어려운데 느낌있는 시 몇 개만 뽑음
날개 어느 시집에 들어있음??
나의 우파샤니드 서울
마지막 느낌 좋다
이런 느낌 좋으면 이연주 ㄱ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