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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초여름의 미국에서는 독특한 인사법이 유행 중이었다.



"오늘도 조 디마지오가 안타를 쳤나요?"



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 인사법이었다.



당대 최고를 다투던 야구선수, 뉴욕 양키스의 조 디마지오가 연속 경기 안타 기록을 갱신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특이한 인사는, 누군가에겐 선망과 흥분을 담은 것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겐 질시와 분노를 담은 것이었다.



문득 떠올린 일화였다.



나는 독서갤에 똑같은 내용의 글을 남기곤 했다.



올해에는 하루키가 노벨상을 받을까요?



그럼 그 글의 댓글에는 여러 감정들이 담겨 올라왔다.



누군가는 체념을 담아 그만 포기하라고 했다.



누군가는 조롱을 담아 아직도 그런 럭키야설 작가를 빠냐고 비웃었다.



누군가는 바랜 희망을 담아 언젠가는 받겠지, 하며 서글프게 웃었다.



그런 댓글을 읽을 때 마다, 나는 내가 왜 매일 이러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루키는 쓰라는 장편은 안 쓰고 달리기나 하고, 언론들은 그를 조롱하듯이 매년 노벨상 만년후보 운운하는데



톨스토이랑 보르헤스도 지들 맘에 안 든다고 거른 노벨문학상에, 왜 그렇게 매달리냐고.



그러다 위의 일화가 떠올랐다.



누군가 선망의 감정을 담아 질문했을 때,



누군가 질시의 감정을 담아 질문했을 때.



서로 의도는 달랐고, 그에 따른 답변도 달랐겠지만,



그들의 대화 속에서 조 디마지오는 위대한 야구선수였다.



그래, 중요한것은 대답이 아니다. 거기에 담긴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루키의 작품들을 기억하고, 하루키의 위대함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댓글에서, 그리고 게시글에서 하루키는 영원히 기억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림원에게 유기당한 무관딱이 아니라 추억속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질문할 수밖에 없다.




올해에는 하루키가 노벨상을 받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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