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20세기 러시아 작가는 이 목록 참고하면 된다는 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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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스탈린 동지께선 러시아와 인류를 생각하여 많은 일을 하였지만, 그 중에서 문화에서도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셨다. 불합리하고 악독한 반동들에게 벌을 주시며 권선징악을 행하시고, 후대의 연구자들의 과로사를 염려하여 연구거리를 줄여주는 스탈린 동지의 자애로운 업적을 살펴보자.


막심 고리키 –

<어머니> 등으로 소비에트의 인민의 우상으로 자리 잡은 고리키 동무는 스탈린 동무의 친구였으나 불행히도 말년의 그는 종종 스탈린 동지에 대한 불합리한 의심과 비판을 하곤 하였다.

어느 날 고리키 동무는 예고도 없이 죽었고, 그의 아들도 뒤따르듯 죽었다.

스탈린 동무께서 고리키 동무를 암살했다는 헛소문이 돌지만, 고리키를 화장한 재를 담은 항아리를 직접 운반하며 눈물을 흘리신 스탈린 동무께서 그럴 리가 없으시다.


마야코프스키와 미래주의자들 –

마야코프스키와 미래주의자들은 초기 소비에트를 위하여 문화적으로 많은 기여를 하고, 선전물에도 도움을 주었으나 불행히도 그들은 점점 반항적이게 되었고, 소련의 미래를 위하여 이들에 대한 결단이 필요했다.


다행히 마야코프스키 동무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두려움 속에 불행히도 자살을 하였고, 스탈린 동무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자애롭게도 마야코프스키를 죽은 신으로 만들어 소련 선전활동에 쓰이도록 배려해주셨다.


물론 남은 미래주의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스탈린 동무께서만 알고 계신다.


다닐 하름스와 오베리우 –

러시아 미래주의의 후세대이자 러시아-아방가르드의 마지막으로 불리는 하름스와 그가 조직한 단체 <오베리우>는 부조리극의 효시 등 시대를 앞선 실험을 선보였지만, 불행하게도 이들 모두 반동이었고, 자신들의 선배 미래주의자들을 따라갔다.


예브게니 자먀찐 -

<우리들>로 오늘날 유명한 자마야틴은 불행하게도 소련의 적이었으며 당은 그에게 무자비한 비난을 퍼부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자마야틴은 스탈린 동무에게 직접 제발 러시아를 떠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고, 자애로운 스탈린 동무는 그 부탁을 들어주셨다.


러시아를 황급히 떠난 자마야틴은 반동분자답게 가난 속에서 죽었다.


조지아 상징주의 시인들 –

스탈린 동무께서는 비록 조지아 출신이시지만, 혈통에 연연하지 않고 소비에트를 위하여 온 생애를 바치셨다. 그러나 불경하게도 조지아 시인들은 조지아라는 작은 것에 연연하며 조지아 문학이란 걸 부흥하려고 노력하였다.

스탈린 동무께서는 공명정대하게 혈연에 연연하지 않고, 이들을 모조리 숙청함으로서 조지아 문학의 뿌리를 갈아엎으셨다.


이디쉬 문학 정화 –

소비에트의 인민들은 오직 러시아와 소비에트의 문학을 해야 한다. 동유럽 유대인들이 쓰이는 이디쉬어로 시를 쓰는 불순분자 유대계 시인들을 모조리 총살하고, 숙청함으로서 스탈린 동무께서는 이디쉬 문학을 완전히 끝장내고, 승리하셨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

<체벤구르>, <구덩이> 등으로 오늘날 높게 평가받는 플라토노프 동무는 불경하게도 노동이라는 존재마저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규정할 정도로 공산주의자 중의 공산주의자였지만, 이는 그가 트로츠키주의자였음을 의미했다. 스탈린 동무께서는 그의 사상과 작품을 불경하다고 규정하셨고, 인민을 위하여 그를 탄압하였다.


덤으로 그의 십대 아들을 반역자로 규정하여 굴라그 관광을 시켜주셨고, 플라토노프는 만신창이로 돌아온 아들을 돌보느라 글도 제대로 못 쓰다가 죽었다.


이사크 바벨 –

오데사의 톨스토이로 불리던 재능 받는 작가였지만, 불행하게도 바벨은 반동분자였고, 거기에 고위 당 간부의 아내와 불륜 관계였다. 이러한 부도덕한 종자를 용서할 수 없는 스탈린 동무께선 대숙청 때 그를 총살하도록 명하셨다.


보리스 필냐크 -

<벌거벗은 해> 등으로 촉망받던 작가였으나 그는 불경하게도 소비에트의 현실을 왜곡하여 전달하였고, 이에 노하신 스탈린 동무께서는 그에게 총살을 선사하여 다시는 거짓을 쓸 수 없게 만드셨다.


바실리 그로스만 -

<삶과 운명> 등 스탈린 시기의 러시아, 2차대전 시기의 러시아 등을 언론인이자 작가로서 생생하게 다룬 것으로 오늘날 유명하지만, 사실 그로스만은 소비에트의 유대인 정책 취재 등을 왜곡하는 반동분자이자 스탈린 동무의 업적을 폄훼하는 거짓말쟁이였다.

스탈린 동무께서 그에게 침묵을 명하자, 그로스만 동무는 스탈린 동무 사후에나 말을 할 수 있었다.


미하일 불가코프 –

불가코프 동무를 스탈린 동무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셨고, 그의 반동 희극도 즐기셨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공적으로 스탈린 동무께선 불가코프 동무에게 침묵을 명했고, 다행히 불가코프 동무는 이를 지켰다.


친절한 스탈린 동무는 침묵의 대가로 그에게 극장 자리까지 주셨지만, 불경하게도 불가코프 동무는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몰래 쓰며 스탈린 동무의 은혜를 배반하였다. 배은망덕한 놈!


러시아 시인 4대장 – 오늘날 20세기 러시아의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4인방은 공교롭게도 크고 작게 스탈린 동무과 인연이 있었다.


마리아 츠베타예바 –

츠베타예바 동무는 불경하게도 외국에서 생활하며 릴케 등 반동분자와 교류하였지만, 끝내 소비에트로 귀환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반동이었고, 스탈린 동무께선 비밀경찰로 그저 그녀를 감시하며 그녀의 친구들을 하나하나 숙청하며 압박만 하였다.

이상하게도 이를 견디지 못하고, 두려워하던 츠베타예바 동무는 불행하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물론 그녀가 죽은 날, KGB 요원들이 그녀의 집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야사일 것이다. 스탈린 동무께선 죄가 없으시다.


안나 아흐마토바 –

아흐마토바 동무 역시 반동분자였지만, 스탈린 동무께선 친절하게도 그저 그녀에게 20년간 침묵할 것을 명하셨고, 그녀의 첫 번째 남편과 아들에게 무료 굴라그 관광을 시켜주셨다.

하지만 이러한 친절과 달리, 아흐마토바는 이를 다루는 연작시 <레퀴엠>을 쓰며 그 친절을 배반하였다.


오시프 만젤쉬땀(만델스탐) -

만델스탐은 매우 비겁한 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촉망받던 시인이지만, 어느 날 스탈린 동무를 조롱하는 뒷담화-시를 친구들에게 낭독하였다. 하지만 스탈린 동무는 모든 걸 알고 계시고, 만델스탐은 노동으로 교화되기 위하여 굴라그로 끌려간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스탈린 동무는 친절하게도 그를 ‘살려만 둘 것’이라고 명하셨으나 이상하게도 굴라그를 갔다, 돌아 왔다하는 생활을 반복하던 만델스탐은 어느 날 굴라그에서 죽어버렸다. 그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


그의 아내 나데쥬다가 남긴 회고록 또한 오늘날 유명하지만, 스탈린 동무에 대한 왜곡으로 가득하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파스테르나크 동무는 사실 가장 특이한 경우다. 만델스탐의 숙청이 결정된 직후, 스탈린 동무께선 다른 반동분자가 있는지 살피기 위하여 여러 면담을 하고 있었고, 거기엔 만델스탐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던 파스테르나크도 포함되었다.


스탈린 동무께선 만델스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스테르나크에게 물었고, 무슨 대답을 하든 숙청각이 잡혔다고 생각한 파스테르나크는 차라리 대답을 피하기 위하여 그 순간 두뇌를 풀가동하였고, 어쩌다가 자신이 평소 스탈린과 이야기해보고 싶은 이야기를 불쑥 꺼내들었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고, 저는 지금 동무와 삶과 죽음에 대하여 토의해보고 싶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스탈린 동무는 말없이 그를 쳐다보다가 돌아가라고 명하였고, 파스테르나크는 ‘구름 위에서 걸어 다니는 이상한 놈’이지만 혁명엔 무해한 괴짜로 치부하며 자애롭게 그를 숙청명단에서 지워주셨다.


하지만 이 만남에서 모든 운을 쏟은 파스테르나크는 스탈린 동무의 뒤를 이은 흐르쇼프의 치하에서 <닥터 지바고>를 쓴 혐의로 당의 탄압을 피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