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모든 책들이 그렇지만 특히 철학책에선 더 그런듯


나는 철학자들을 세가지 부류로 나눔


1) 다루는 주제가 넓고 문제의식이 매우 도저한 경우, 흔히 우리가 대철학자라고 부르는 자들(플라톤, 아퀴나스, 스피노자, 데카르트, 흄,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등)


2) 1에 비해 조금은 얕은 자들, 주로 1의 아이디어에 많이 기대어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는 자들(후설, 로자 룩셈부르크, 루카치, 아감벤, 지젝, 들뢰즈 등)


3) 1과 2에 비해 문제의식이 꽤 얕은 자들, 지식 소개사라는 느낌이 슬슬 드는 자들(이진경, 리처드 커니, 한병철, 그 외 철학 입문서를 쓰는 많은 사람들)


내가 한 번이라도 저서를 읽어보았거나 이들을 다루는 논문이나 입문서를 읽어본 사람들만 다루고 있어서 예시가 편향되어있음은 감안해주시길.


(철학자 예시가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서로 갈릴 수 있을듯 함. 특히 2번에서. 예컨대 후설은 충분히 1번에 들어갈 수 있지 않나라고 물어볼 수도 있을듯. 나는 칸트의 문제의식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생각은 못했음. 여튼 이건 의견이 갈리는 문제)


3번 부류의 책들은 그의 문체가 난해하지 않은 이상 크게 어렵다는 생각은 안 듦. 철학의 용어와 문제틀에 어느정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래도 슐술 읽히는 편.


2번부터 슬슬 괴팍한 스타일이 나오는데, 아감벤 같은 인간은 기이할 정도로 방대한 지식때문에 종종 이 인간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 까먹음. 그렇지만 계속 읽다보면 어느정도 패턴이 보임. 얘네는 초반에 좀 골머리 썩히지만 나중에는 그래도 속도를 내서 읽는게 가능.


문제는 1번인데, 여기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어렵고 읽더라도 그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 읽어도 결국 명언 외우기에서 못벗어남. 책 어느 구절을 캡쳐해서 카톡프사에 올리지만 실은 뭔소리인지 자기도 모름(내 이야기임)


예컨대 헤겔 정신현상학을 배경지식이 좀 얕은 상태에서 읽었었는데, 거의 3쪽 읽는데 1시간이 걸림. 이 짓거리를 6개월 정도 하니 1권을 다뗌. 2권은 읽을 엄두가 안 남.


근데 다 읽은 지금에서도 정신현상학이 무슨 이야기냐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냐하면 그것도 아님. 도대체 즉자적 의식이 대타적 의식과 대자적 의식을 거쳐 즉자대자적의식으로 나아간다는게 무슨의미냐 물으면 모르겠음. 그 과정을 책을 인용해가며 설명하는 건 가능하더라도, 왜 헤겔이 그런 이야기를 써내려갔는지 완전히 이해하지못함.


결국 나는 헤겔을 인용할 때 2번의 철학가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음.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쓴 이뽈리뜨나 수많은 헤겔 논문 없이 내가 헤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건 거의 불가능함.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나는 1번을 이해하지 못한 거임. 그게 아마도 현재의 내 수준인듯.


1번의 철학자들 다수가 실제로는 거의 제대로 이해되지 못 함. 철학과 전공생 불러놔도 헛소리하는 경우가 태반이거나 2번 혹은 3번 철학자들의 견해를 교묘하게 자기식대로 바꿔서 이야기함.


대철학자의 책을 빨리 읽는다고 좋아할 필요도 없고, 느리게 읽는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음. 루소의 에밀에 영특한 어린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옴.


"나의 꼬마박사가 그토록 잘 이야기해주었지만, 여러 표지를 보아 그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심하며 저녁식사를 마친 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정원을 한 바퀴 산책하러 나갔다. 나는 아주 편안하게 그에게 질문했는데, 그가 누구보다도 알렉산드로스의 그 격찬받는 용기에 감탄하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가 그 용기를 어디서 보았는지 아는가? 망설임도 싫은 내색도 전혀 보이지 않고 그 쓰디쓴 탕약을 단숨에 마신 용기에서였다. 2주일 전 너무도 힘들게 약을 먹어야 했던 그 불쌍한 아이의 입(197)에는 아직도 그 약의 쓰디쓴 뒷맛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죽음과 독살은 그의 마음에 오로지 불쾌한 것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센나(senna) 외의 고약한 독약을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영웅의 꿋꿋함에 깊은 인상을 받은 어린 마음은 이다음에 약을 마실 때에는 알렉산드로스처럼 마셔야겠다고 굳게 결심했음을 말해두어야겠다. 아이가 분명 이해하지 못할 설명을 그만둔 뒤, 나는 그가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고 치켜세워 주었다. 그러고 난 뒤, 나는 아이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나 선생들의 그 큰 지혜에 웃음 지으며 그곳에서 돌아왔다.
아이의 입에서 왕이니 제국이니 전쟁이니 정복이니 혁명이니 법이니 하는 말이 나오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말들에 명확한 관념을 부여하는 일이 문제가 될 때면, 채소 재배자 로베르와의 이야기와 이 모든 설명 사이의 거리는 너무도 멀 것이다."



누군가가 속독으로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는다고, 어려운 철학책을 일주일만에 다 읽었다고 자랑할 때마다 저 꼬마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면 조금 위안이 될 거임.